더트래커 = 이태희 기자
2차 전지 양극재 업체인 엘앤에프가 3천억원의 BW(신주인수권부사채) 발행을 통해 현재 중국업체들이 독점 중인 리튬인산철(LFP) 양극재 사업 진출을 위한 자금 조달에 나섰지만 금융감독원의 깐깐한 심사 문턱에 걸려 곤욕을 치르고 있다.
지난 한달 동안 벌써 2번이나 증권신고서 수리를 거부당했고, 자발적 정정 포함, 3번째 정정신고서 제출을 요구받고 있다.
15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엘앤에프가 제7회 BW 3천억원 발행을 위해 처음 금융감독원에 증권신고서를 제출한 것은 지난달 16일이다. 표면금리 연 1%, 만기보장수익률 및 조기상환수익률 복리 연3%, 만기 5년에 2년 후부터 풋옵션(조기상환청구권) 행사가 가능한 발행 조건이다. .
납입일은 8월14일이고, 발행 한 달 후부터 만기 1개월 전까지 신주인수권(워런트) 행사가 가능하며 행사가액은 주당 50002원으로 책정됐다. 기존 주주 우선공모 형식이다.
금융감독원은 6월24일 정정신고서 제출을 요구하며 첫 퇴짜를 놓았다. 퇴짜 이유는 관례대로 자세히 밝히지 않았다.
다만 심사결과 증권신고서 형식을 제대로 갖추지 않거나, 증권신고서 중 중요사항에 관해 거짓 기재 또는 표시가 있거나, 중요사항이 기재 또는 표시되지 않은 경우와 중요사항 기재나 표시내용이 불분명해 투자자의 합리적인 투자판단을 저해하거나 투자자에게 중대한 오해를 일으킬 수 있는 경우 정정을 요구한다는 설명문만 덧붙였다.
이런 설명문은 다른 기업의 증권신고서 정정요구 때도 관례적으로 똑같이 붙이는 설명이다. 엘앤에프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무엇이 문제인지는 공개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정정신고서 제출 요구를 받은 후 3개월 이내에 정정신고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해당 증권신고서는 자본시장법 제122조 제6항에 따라 철회된 것으로 간주한다고도 밝혔다.
엘앤에프는 정정을 요구받은지 3일 만인 6월27일 첫 정정신고서를 제출했다. 정정 신고서에는 BW로 조달한 자금 중 2천억원을 LFP 신규법인을 설립하는데 쓰겠다는 등의 자세한 자금조달 목적이 추가됐다. 계속된 설비투자 등에 따른 금융비용 부담과 재무안정성 문제 등도 자세히 추가 기술했다.
이외 정정신고서에 추가로 기술된 다른 내용들 중에 눈길을 끄는 부분이 하나 있다. 바로 “당사가 LFP 타법인출자 관련 이사회 결의 이전에 이번 자금조달을 결정한 이유는 당사가 타법인 출자 후 생산할 LFP 양극재 제품의 수요처인 이차전지 제조업체 고객사의 LFP 배터리 양산 일정이 계획보다 앞당겨진 것에 기인한다”는 설명 부분이다.
이와 관련, “당사와의 MOU 체결 상대 고객사의 이차전지 생산계획에 차질이 없도록 당사 제품을 공급하기 위해서는 2026년 3월부터 시운전에 돌입해 2026년 4분기에는 LFP 양극재 양산에 돌입해야 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는 설명도 추가했다.
원래는 타법인출자 관련 이사회 개최가 2025년 07월 23일로 예정돼 있었다는 설명도 추가했다. 조기에 자금과 우수한 생산시설, 양산능력을 확보, LFP 양극재 제품을 고객사에게 차질없이 공급하기 위해 부득이하게 타법인증권취득 결정 이사회 결의에 앞서 BW 발행 결정 이사회부터 먼저 하게됐다는 설명이다.
LFP 신규법인 설립부터 결정하지 않고, 다짜고짜 BW 발행부터 먼저 결정하는, ‘일의 순서’가 틀렸다는 금융감독원의 강한 질책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자신들의 실수(?)를 정정신고서에서 재빨리 인정한 셈이다.
2024년 삼원계 양극재시장 글로벌 시장점유율
엘앤에프는 이 정정신고서를 제출한지 11일 만인 지난 8일 또 정정(재정정)신고서를 제출했다. 그 중간에 금감원의 정정신고 요구가 또 있었다는 공시는 없었다. 협의 과정에서 정정신고 내용을 더 보완하라는 금감원의 비공식 요구가 있었던가, 아니면 정정신고서를 다시 자발적으로 정정하든가 등 둘 중 하나다.
이 2차 재정정 신고서에서 엘앤에프는 새로 개발하려는 LFP제품이 중국 제품들과 얼마나 차별화되고, 경쟁력이 있는지를 중점 설명하고 있다. LFP 제품들은 현재 중국기업들이 전세계 시장을 100% 장악 중이다.
엘앤에프 등 한국 양극재 기업들의 주력 제품인 NCM(삼원계) 리튬이온 배터리는 높은 에너지 밀도와 가벼운 무게라는 강점을 갖고 있다. 그러나 삼원계 배터리의 주요 소재인 코발트는 전세계적으로 매장량이 극히 적어 배터리 제조사들은 니켈 함량을 늘려 코발트 의존도를 낮추고 있지만 니켈 또한 희귀 금속에 속한다.
그에 비해 LFP(리튬인산철) 소재 배터리는 에너지 밀도가 다소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지만 저렴한 철을 원료로 사용하기 때문에 생산비용이 저렴하다. 여기에다 안정성이 높고 수명이 길다는 장점도 있고, 최근 중국 기업들을 중심으로 단점을 보완한 신기술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어 전기차 전방수요가 감소하는 상황속에서도 LFP 수요만은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작년 말에는 NCM배터리와 LFP배터리의 글로벌 점유율이 역전되기도 했다. 올 4월 누적 기준 전체 양극재 적재량 중 LFP가 차지하는 비중은 56.2%까지 올라갔다고 한다. 안그래도 극심한 불황과 적자에 시달리고 있는 한국 양극재 업체들로선 ‘중국산’이라며 다소 얕보던 LFP를 더 이상 외면할 수 없게 되었다.
엘앤에프나 에코프로비엠 등 한국 양극재 업체들은 현재 모두 LFP 제품 상용화를 위한 연구개발에 몰두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이번 2차 재정정신고서에서 엘앤에프는 자사 LFP 제품 상용화를 위해 왜 별도 법인 설립이 필요한지, 또 중국제품과의 경쟁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는지를 중점 설명했다고 볼 수 있다.
금융감독원이 ‘경제성에 기술력까지 갖춘 중국 제품과의 경쟁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겠는가? 자칫 투자자들의 투자자금만 날리는게 아닌가’라고 계속 의문을 제기하자 그 상세한 답변을 2차 신고서에 많이 집어넣은 것으로 추정된다. 그만큼 금감원의 의구심이 아직 강하다는 증거로 해석할 수도 있다.
지난 10일에는 당초 오는 23일로 예정했었다는 타법인주식및출자증권 취득결정 관련 이사회를 앞당겨 열고, 이를 공시했다. BW 발행으로 들어오는 자금 중 2천억원으로 가칭 ‘엘앤에프엘에프피’라는 별도 법인을 설립하고, 이 회사에 LFP 제품 생산 및 판매를 전담시킨다는 결정이다.
하지만 금감원은 이 공시 하루 뒤인 지난 11일 또 다시 정정신고서 제출을 요구했다. 공식적으론 두 번째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세 번째 정정신고서 제출 요구다. 두 차례의 정정신고서나 신규 법인 설립 결정 이사회 모두 아직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엘앤애프의 두 차례 정정신고서를 보면 LFP사업에 대한 구체적 사업계획들이 깨알같이 잘 나열돼 있다. 외형상 자금조달계획 등에도 크게 무리가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왜 금감원은 왜 이렇게 계속 ‘비토’를 거듭하고 있는 것일까?
글로벌 전체 시장의 양극재 종류별 적재량 점유율
많은 업계 관계자들은 엘앤에프의 심각한 재무상태가 이번 연속 비토의 주 원인이 아닌가 추정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2월 IPO(기업공개) 및 유상증자 주관업무와 관련, 16개 증권사와 간담회에서 유상증자 증권신고서 중점심사 방향을 공개한 바 있다. 앞으로 일반주주 권익 훼손 우려 등 7개 사유에 해당하면 '중점심사 유상증자'로 선정하고, 심사 항목별로 집중심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주식가치 희석화 우려', '일반주주 권익훼손 우려', '재무위험 과다', '주관사의 주의의무 소홀' 등 대분류와 7가지 소분류에 따라 중점심사 유상증자 항목을 선정했다. 공모로 진행되는 주식관련사채(전환사채, 신주인수권부사채 등)의 발행도 중점심사 대상으로 선정될 수 있다고 공개했다.
엘앤에프 BW가 여기에 해당할만한 것은 ‘주식가치 희석화 우려’와 ‘재무위험 과다’정도일 것이다. BW 발행에 소액일반주주들이 따라가지 못하면 지분율이 떨어져 주식가치가 희석화될 수 있다.
하지만 IB업계 관계자들은 실제 금감원이 더 우려하는 부분은 ‘재무위험 과다’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만큼 엘앤에프의 현 재무상황이 심각하기 때문이다.
엘앤에프의 연결기준 매출은 2023년 4조6441억원에서 작년에는 1조9075억원으로 반토막 그 이상으로 심하게 줄었다. 올 1분기 매출도 전년동기 대비 43%나 줄었다. 매출 감소폭부터가 엄청나다.
영업적자는 2023년 2223억원에서 작년에는 5587억원으로, 2배 이상 늘었고, 올 1분기 영업적자도 1403억원에 달했다. 적자 보완과 설비투자 등으로 차입금을 계속 늘리는 바람에 2022년 말 9088억원이었던 총차입금은 지난 3월 말 1조8866억원으로 역시 2배 이상 늘어났다. 2022년 135%에 그쳤던 부채비율도 3월 말 367%로 급등했다.
2022년 213억원에 불과했던 연간 이자비용은 작년 1064억원으로 급증했다.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감당하지 못하게 된 것이 벌써 3년째다. 국내 경쟁 양극재기업들이 대부분 어려운 것은 비슷하지만 대그룹 소속이 아닌 엘엔에프의 재무상황이 상대적으로 더 심각한 편이다.
금융감독원은 포스코퓨처엠 유상증자 때도 모기업 포스코홀딩스가 증자대금의 절반을 부담하겠다고 했는데도 역시 증권신고서 수리를 거부한 적이 있다. 그만큼 업황이나 재무상황이 악화된 기업들에 대해선 과거에 비해 훨씬 깐깐해진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IB업계의 한 관계자는 “금감원으로선 살길을 찾아보겠다는 엘앤에프의 상황을 이해는 하면서도 중국기업이 독점하고 있는 기술에 무모하게 도전했다가 실패했을 경우 생길 투자자나 소액일반주주들의 피해 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간이 급하다는 엘앤에프는 곧 3차 정정신고서를 제출할 것으로 보인다. 엘앤에프 주주토론방 등에는 “엘앤에프와 금감원이 짜고 치는 사실상의 ‘약속 대련’이고, 아마 잘 해결될것”이라는 낙관적 의견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금감원이 여러 이유를 들어 계속 부정적일 경우 엘앤에프는 더 다급해질 수밖에 없다. 케즘(일시적 수요 감소) 장기화에서 살아남으려면 LFP뿐 아니라 뭐라도 계속 시도해야 하는데, 다른 마땅한 자금조달 방안들은 별로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