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트래커 = 이태희 기자
작년 6월 부동산PF 관련 부실 급증 등으로 메리츠금융그룹 등으로부터 6천억원이 넘는 긴급지원을 받았던 메리츠캐피탈이 1년 만에 다시 부실성 여신이 크게 늘면서 또 다시 모기업 메리츠증권 등으로부터 유상증자 등 긴급 수혈을 받는 상태에 놓였다.
기존의 부동산PF 부실 누적에다 이번에는 올 초 법정관리를 신청한 홈플러스에 빌려준 기업대출 2808억원이 몇 달째 이자를 못받으면서 ‘고정’자산으로 분류된 때문이다. 홈플러스에는 모기업 메리츠증권 등 메리츠금융 3사가 모두 1조2천억원이나 대출해주고 있어 메리츠금융그룹 전체가 현재 고심에 빠져 있기도 하다.
13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과 나이스신용평가(이하 나신평)에 따르면 메리츠캐피탈은 지난 9일 500억원 유상증자 결정을 발표했다. 납입 예정일은 오는 17일로, 메리츠캐피탈 지분 100%를 갖고있는 모기업 메리츠증권이 500억원 전액 납입을 책임진다.
메리츠증권이 메리츠캐피탈에 또 다시 500억원을 긴급 지원하는 셈이다. 메리츠캐피탈은 이와 함께 재무구조개선을 위해 신종자본증권 발행도 계획하고 있다고 나신평은 밝혔다. 이 증권도 메리츠금융지주나 메리츠증권이 전액 인수해줄 것으로 예상된다.
메리츠증권 등이 이처럼 1년 만에 다시 메리츠캐피탈 긴급 지원에 나서는 것은 그동안 다소 안정되었던 메리츠캐피탈의 자산건전성이 홈플러스 회생절차 신청을 계기로 다시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나신평에 따르면 지난 1분기(1~3월) 중 홈플러스 기업여신 2808억원의 고정자산 분류와 일부 본PF대출의 고정이하자산 분류로 인해 사실상 부실성 자산으로 분류되는 메리츠캐피탈의 고정이하자산은 지난 3월 말 기준 모두 6710억원, 요주의이하자산은 1조320억원에 각각 달하고 있다.
이에 따라 2023년 말 4.4%에서 작년 말 3.3%로 떨어졌던 이 회사의 고정이하자산비율은 지난 3월 말 9.7%로 다시 크게 높아졌다. 연체율도 작년 말 3.4%에서 지난 3월 말 5.6%로 상승했다.
나신평은 최근 부실 재급증의 주요 원인인 홈플러스 기업여신의 경우 홈플러스 62개 점포를 담보로 한 LTV(Loan-to-value) 25% 내외 수준의 신탁 1종 수익권을 보유한 점을 고려하면 궁극적인 회수 가능성은 양호한 것으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담보권 실행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제약여건 등 불확실성이 상존하고, 회수지연으로 인해 영업자산의 운용효율성이 당분간 저하되는 점이 문제라고 나신평은 지적했다. 기업회생절차 종료로든, 홈플러스 매각으로든 궁극적으로 대출 원리금을 상환받을 가능성은 높지만 언제 이것이 가능할지 알 수 없고, 그때까지의 운전자금 부담 등도 상당하다는 설명이다.
이런 상황 하에서 메리츠증권으로부터의 500억원 유상증자와 신종자본증권 발행 계획은 메리츠캐피탈의 재무안정성 저하 우려를 일단 낮춰줄 전망이라고 나신평은 밝혔다. 메리츠증권 입장에서도 500억원은 큰 부담은 아니다.
다만 2022년 하반기 이후 시장금리 상승 및 부동산 경기 하락 등으로 메리츠캐피탈의 자산건전성이 빠르게 저하되면서, 자회사인 메리츠캐피탈에 대한 재무 지원이 지속되고 있는 점은 메리츠증권 신용도에 부담 요인이라고 나신평은 지적했다.
작년 6월 1차 지원 때 메리츠증권은 메리츠캐피탈 유상증자에 2천억원을 출자하고, 원금 기준 3천억원 이상의 메리츠캐피탈 부실대출자산을 매입해준 바 있다.
나신평은 또 메리츠금융그룹 전체도 사업포트폴리오 중 부동산금융 비중이 큰데다 홈플러스 기업여신처럼 여러 계열사가 공동대출해주는 경우 특정 차주 부실화에 따른 동반 부실위험이 존재한다고 밝혔다.
실제 2023년 5월 홈플러스의 인수금융 리파이낸싱(재융자) 당시 메리츠금융은 단독 주선사로 나서 1조2천억원을 홈플러스에 대출해줬다. 메리츠증권이 6551억원, 메리츠캐피탈과 메리츠화재가 각각 2808억원씩, 메리츠금융 3사가 동원되었다.
홈플러스 회생절차 개시 이후 이 메리츠 3사는 몇 달째 이자를 못받고 있다. 그래서 모두 해당 대출을 ‘고정’으로 분류했다. 그 결과 메리츠증권의 고정이하자산비율도 작년 말 3.4%에서 지난 3월 말 6.5%로 크게 높아졌다. 회수 가능성이 높다지만 적어도 장부상으로는 부실성 여신이 크게 늘어난 것으로 되어있다는 얘기다.
메리츠 3사는 대출 당시 담보로 홈플러스 점포 62곳의 부동산신탁수익권 1순위를 홈플러스 측으로부터 제공받았다. 담보가치만 4조8천억~5조원에 이른다. 1순위여서 이론상으는 회생절차에 관계없이 언제든 담보권 행사도 가능하다.
이에 메리츠 3사도 떼일 가능성이 거의 없고, 언젠가는 받을 수 있는 돈으로 판단해 대손충당금도 별로 쌓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 때문에 부실성여신이라 볼 수 있는 고정이하자산비율은 크게 높아졌는데도 충당금커버리지비율은 메리츠증권의 경우 작년 말 70.8%에서 지난 3월 말 40.1%로 크게 하락하는 현상이 빚어지기도 했다.
회생법원 지명 조사위원인 삼일PwC 회계법인은 지난 12일 법원에 제출한 조사보고서에서 홈플러스의 청산가치가 3.7조원인 반면 계속가치는 2.5조원에 그친다고 밝혔다. 경제논리로만 보면 기업 회생보다는 청산이 더 바람직하다는 내용의 조사보고서였다.
하지만 홈플러스를 청산해버릴 경우 그 파장은 엄청나다. 메리츠 3사 같은 홈플러스 채권자들이야 담보권 행사로 빌려준 돈을 되찾을 수 있겠지만 수십만명에 달할 수도 있는 홈플러스 종업원들과 납품업자 및 입접업체 종사자들의 일자리가 대거 사라질 수 있다. MBK파트너스와 투자자 등 홈플러스 주주들의 투자금도 모두 날아갈 수 있다.
이때문인지는 몰라도 현재 홈플러스와 MBK파트너스는 회생 인가 전 홈플러스 매각에 곧 착수하겠다는 방침을 대외적으로 밝히고 있다. 도저히 청산은 어렵고 최후 방법으로 새 주인을 또 찾아보겠다는 얘기다. 단 매각하려면 선순위채권자 메리츠의 동의를 받아야한다.
메리츠는 지금이라도 당장 담보권 행사를 할 수 있지만 현재 담보권 행사도, 매각 반대도 모두 하기 어려운 입장인 것으로 알려진다. 홈플러스 노조가 벌써부터 담보권 행사 등에 극렬히 반대하고 있고, 법원도 매각 강제인가 가능성이 높은데다 새 정부 눈치도 봐야하기 때문이다.
현재로선 법원 보호 하에서 홈플러스와 MBK파트너스가 구조조정과 매각을 한꺼번에 진행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하지만 매각이 지지부진하고 장기화할 경우 문제가 또 복잡해질 가능성이 있다.
IB업계의 한 관계자는 “메리츠 입장에선 당장 담보권 행사가 가능한데도 여러 여건상 그렇게 못하고, 이자까지 몇 달 이상 못받고 있는데다 장부상 재무상태는 악화되는 상황이 억울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며 “이런 상태가 장기화할수록 더 곤욕일 것”이라고 말했다.
메리츠캐피탈은 카드사나 캐피탈사들 중에서도 유달리 높은 초고금리 영업으로 유명한 곳이다. 여신금융협회 공시정보포털에 따르면 지난달 20일 게시된, 신용카드 및 캐피탈사들의 5월 신용대출 평균금리가 가장 높은 곳은 메리츠캐피탈로, 19.57%에 달했다.
메리츠캐피탈 다음으로 높은 곳은 오케이캐피탈(18.88%), JB우리캐피탈(18.18%),한국캐피탈(16.49%), 우리금융캐피탈(15.68%) 등의 순이다. 작년 15%대였던 카드사들의 신용대출 평균금리는 모두 14%대 이하로 떨어져있다.
법정최고금리에 거의 근접한 19%대 신용대출 평균금리는 메리츠캐피탈이 전 신용카드 및 캐피탈사들 중 유일하다. 다른 곳들과의 평균금리 격차도 크다. 고금리를 목표로 위험을 다소 감수하고 저신용자 가계대출과 부동산PF 대출 등을 많이 늘렸다가 부실과 손실도 많이 입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워낙 고금리 영업구조여서 부실이 많이 생기더라도 적자는 잘 나지 않는 구조다. 이런 부실위험에도 메리츠캐피탈은 작년은 물론 올 1분기에도 영업적자는 내지 않았다.
이번 홈플러스 대출금리도 당초 알려진 연 8%가 아니라 최고 연 14% 초고금리인 것으로 알려진다. 조기상환하지 않을수록 금리가 높아지도록 설계됐다고 한다. 선순위 채권자치고 이례적으로 높은 악성 금리구조라는 비판이 적지 않다.
IB업계의 다른 관계자는 “메리츠금융 계열사들은 과거부터 다른 금융사들이 잘 거들떠 보지 않은 한계기업이나 자금위기 기업에 접근해 이중삼중 안전장치의 고금리 영업을 잘 하는 것으로 유명했다”면서 “큰 손실없이 잘 빠져나오는 노하우도 대단한 곳”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런 면에서 본다면 이번 홈플러스 대규모 대출은 너무 고리대금업식 영업 재미에 푹 빠져있다가 원숭이가 잠시 나무에서 떨어진 꼴”이라고 비유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