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트래커 = 이태희 기자
‘골프장 재벌’로 유명한 박순석 신안그룹 회장이 신안그룹 계열 바로저축은행 한 곳에만 무려 2776억원의 개인예금을 해두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바로저축은행은 작년 전국 79개 저축은행들 중 두 번째로 많은 824억원의 영업적자를 냈다. 부동산PF 등 부동산 관련 대출들을 너무 많이 해줬다가 부실이 많이 생긴 탓이다.
신안그룹의 다른 계열사들도 작년에 줄줄이 적자에 빠지거나 흑자규모가 급감하는 등 영업성적들이 신통치 않았다.
21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스템과 저축은행중앙회 공시포털 등에 따르면 박 회장이 바로저축은행에 맡긴 개인예금 잔액은 작년 말 기준 2776억원으로, 전년 말 2369억원에 비해 1년 사이에 17% 가량 늘어났다.
작년 말 바로저축은행의 전체 예수금 잔액은 1조9841억원이었다. 박 회장 개인 예금이 전체 은행 예금의 14%에 달한다. 이 거액예금에서 생긴 박 회장의 이자수입만 작년 한해 121억원에 달했다. 2023년 이자수입은 104억원이었다.
박 회장은 또 개인 빌딩인 서울 강남구 삼성역 인근 신안빌딩 일부 사무실을 바로저축은행에 빌려줘 작년 한해 4.58억원의 임대수입도 챙겼다. 임차보증금이 113억원에 달하는 사무실이다.
재벌총수들이 자신의 개인 예금을 계열 금융회사나 일반 금융기관들에 분산해 맡기는 경우는 많지만 이처럼 한 계열 금융회사에 집중적으로 3천억원에 가까운 예금을 맡기는 경우는 보기 드문 사례다. 기왕 예금으로 도와주려면 화끈하게 계열 저축은행을 도와주자는 취지인 것으로 추정된다.
박 회장은 10여년 전 이 저축은행 대출을 지인에게 알선해주고 거액 커미션을 받았다가 알선수재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은 적도 있다. 개인적 악연이 있는 계열 저축은행인데도 계속 애정을 보내고 있는 셈이다.
총수가 이처럼 무한 애정을 보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바로저축은행은 작년에 사상 최대규모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이자수익 등 영업수익이 1427억원인데 비해 이자비용 등 영업비용은 2252억원에 달하면서 작년 영업손익은 824억원 적자를 기록, 전국 79개 저축은행들 중 페퍼저축은행(1223억원 적자) 다음으로 많은 적자를 냈다.
2023년 바로저축은행의 영업적자는 101억원이었다. 이 저축은행의 당기손익도 2023년 33억원 흑자에서 작년에는 622억원 적자로, 적자전환했다.
바로저축은행은 작년 말 자산 2.21조원 정도인 중규모 저축은행이다. 이런 저축은행이 대형 저축은행들보다 훨씬 많은 적자를 낸 것이다.
이처럼 이 저축은행의 작년 영업손실이 다른 저축은행들 대비 유독 급증한 것은 이자비용은 2023년 747억원에서 작년 718억원으로 줄었는데도 불구하고 같은 기간 대손상각비가 315억원에서 990억원으로 3배 가량 늘었기 때문이다.
대손상각비란 빌려준 대출채권이 사실상 떼인 상태가 될 때 미리 쌓아두는 대손충당금 신규전입액을 말한다. 이 액수만큼 비용이 늘어나기 때문에 영업이익을 까먹게 된다. 그만큼 대출 부실이 작년에 급증했다는 뜻이다.
실제 부실채권을 뜻하는 고정이하자산비율을 보면 2023년 말 10.66%에서 작년 말 17.38%로 크게 상승했다. 연체율은 같은 기간 12.95%에서 11.99%로 약간 줄었지만 실제 충당금을 많이 쌓아야하는 고정이하비율은 크게 높아진 것이다.
작년 말 전국 주요 저축은행들의 고정이하자산비율을 보면 상상인(26.9%), 부산 솔브레인(26.2%), 상상인플러스(23.59%) 저축은행 순으로 높고, 바로저축은행은 11위 정도다.
그런데도 바로저축은행의 대손상각비와 영업손실 규모가 상대적으로 더 큰 것은 부동산경기 침체 장기화로 부실이 많이 발생하고 있는 부동산관련 대출 비중이 다른 저축은행들에 비해 높기 때문으로 보인다.
작년 말 바로저축은행의 총대출잔액 1조7231억원 중 부동산 관련 대출은 모두 7901억원으로 전체 대출의 46%에 달한다. 이 중 특히 문제가 많다는 부동산PF대출 1935억원의 고정이하자산 비율은 4.7%에 불과했다. 금융당국의 독려에 따라 부동산PF 부실대출채권들을 많이 정리한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나머지 건설업 대출과 부동산및임대업 대출의 고정이하비율은 각각 59%, 30%에 달했다. 부동산PF 부문만 우선 정리했을 뿐 나머지 부동산 부문 부실은 아직 제대로 정리하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매각-상각 등으로 정리한 부실채권들에서도 손실이 많이 생겨 전체 영업손실 확대에 일조했다.
바로저축은행은 자산건전성 제고를 목적으로 작년 모두 839억원의 부실성 대출채권들을 매각했다. 2023년 매각 규모는 40억원에 불과했었다. 하지만 값을 제대로 못받고 급히 매각한 탓인지 여기서 대출채권 매각손실이 80억원(23년 0)이나 생겼다. 이 손실도 전체 영업손실 확대로 이어졌다.
한편 작년 영업실적이 크게 나빠지자 바로저축은행은 작년 75억원의 유상증자를 실시했다. 비상장기업이라 기존 주주들이 모든 증자 부담을 떠안았을 것으로 보인다.
작년 말 기준 바로저축은행의 주요 주주들은 신안그룹 모기업 격인 신안(41.26%), 그린씨앤에프대부(29.23%), 박순석 회장(8.17%), 박 회장 장남인 박훈 사장(6.51%), 신안캐피탈(5.08%) 등이다.
바로저축은행이 대규모 적자를 내자 지분을 많이 갖고 있는 신안, 그린씨앤에프대부, 신안캐피탈 등도 지분 만큼 지분법손실을 떠안으면서 일제히 영업실적이 악화됐다.
박 회장이 지분 100%를 갖고있는 신안은 작년 영업손실이 11억원에 그친데 비해 당기순손실은 281억원에 달했다. 바로저축은행 때문에 입은 지분법손실이 331억원에 달한 때문이었다. 2023년 27억원의 당기순익을 냈던 신안은 작년 이 때문에 적자전환했다.
그린씨앤에프대부도 작년 매출 113억원에 비슷한 이유로 당기순손실이 83억원에 달했다. 다른 신안그룹 계열사들도 작년 영업성적들이 대부분 썩 좋지 못했다.
신안캐피탈은 매출 3074만원에 16억원의 영업손실(당기손익은 14억원 흑자)을 입었고, 신안관광(-50억원), 신안레저(-62억원) 등도 모두 적자였다. 특히 호텔리베라청담을 갖고있는 신안관광은 결손과 완전자본잠식 상태에까지 빠져있다.
그룹 최대 상장 주력기업인 휴스틸도 비슷하다. 지난 3년 동안 매출이 계속 감소하고 있고, 연결 영업이익도 2022년 2892억원에서 23년 1232억원, 작년 171억원 등으로 급감 추세를 보였다.
결국 올 1분기 영업손익과 당기손익은 각각 4.67억원 적자 및 24억원 적자로, 모두 분기 적자로 바뀌었다.
다른 작은 계열사들도 리베라CC 운영업체인 관악과 화장품업체인 신안코스메틱, 바로자산운용 정도를 제외하면 대부분 영업적자이거나 실적 악화에 시달렸다.
박순석 회장도 실적 악화 때문에 자기 지분이 많은 신안 등에서 작년에는 배당을 거의 못 챙겼고, 휴스틸에서만 20.89억원의 배당금을 받았다. 23년 연말배당 34.82억원보다 많이 줄었다.
금융계의 한 관계자는 “최근 몇 년간 철강과 건설경기 부진 때문에 박 회장의 배당이나 연봉 수입도 많이 줄었을 것”이라며 “과거에 누적된 각종 개인 소득들이 아직 워낙 많아 이처럼 거액예금을 한곳에 맡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