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앤에프 회사 전경. 사진=엘앤에프

더트래커 = 임백향 기자

전기차 시장 둔화가 이차전지 업계를 강타하는 가운데, 양극재 기업 엘앤에프가 유동성 위기에 직면했다. 지난해 말 IMM크레딧솔루션(ICS)과의 전환사채(CB) 재발행 이후 불과 6개월 만에 조기상환 요청을 받은 데 이어, 부채비율은 367%까지 치솟았다. 이에 따라 엘앤에프는 3000억원 규모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 발행을 추진하며 생존을 위한 자금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사태의 발단은 2021년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엘앤에프는 전기차 배터리 시장 성장에 발맞춰 시설 및 운영 자금을 마련하고자 ICS로부터 1000억원 규모의 전환사채(CB)를 유치했다. 전환가액 18만6802원, 표면이자율·만기이자율 모두 0%인 조건으로 발행된 이른바 ‘빵빵채권’이었다. 주가 상승을 통한 자본차익을 기대한 투자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차전지 업황이 꺾이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엘앤에프 주가는 고점 대비 큰 폭으로 하락했고, ICS는 보통주 전환을 통한 차익 실현이 어려워졌다. 결국 지난해 12월, 엘앤에프는 기존 ICS의 채권을 소각하고 조건을 변경해 같은 금액의 CB를 재발행했다. 전환가액은 10만3974원으로 낮아졌고, 만기이자율은 2%로 상향됐다. 투자자 보호를 위한 조건이었다.

문제는 이후 엘앤에프의 재무 지표가 더 악화되며, 재발행 CB에 명시된 풋옵션 트리거가 작동했다는 점이다. ICS는 약정된 2차 조기상환청구기간(2025년 4월 11일~5월 12일)에 맞춰 권리를 행사했고, 엘앤에프는 오는 7월 10일까지 1000억원 원금을 상환해야 한다. 양측 협의에 따라 이자는 면제됐지만, 엘앤에프로선 상당한 현금 유출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다.

엘앤에프는 올해 1분기 말 개별 기준 2885억원의 현금성 자산을 보유 중이다. 당장 ICS가 들고 있는 CB 상환은 가능하지만, 전체 유동성의 3분의 1이 한꺼번에 빠져나가면 유동성 긴장도가 크게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엘앤에프 2025. 1분기보고서. 자료=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2025년 1분기 회사의 자산총계는 2조7936억원, 부채총계는 2조1821억원으로 집계됐다. 자본총계는 6114억원으로, 이전 분기(7220억원) 대비 1100억원 넘게 줄었다. 부채비율은 작년 말 287%에서 올해 1분기 말 367%로 급등했다. 올해 1분기 순손실이 1098억원에 달했기 때문이다.

이익잉여금은 회계상 조정으로 증가했다. 지난 3월 정기주총에서 자본준비금 4776억원을 이익잉여금으로 전환하기로 결의하며, 이 계정은 마이너스(-)207억원에서 3469억원으로 회복됐다. 하지만 이는 자본계정 간 이동일 뿐 실제 손익 개선을 뜻하지는 않는다.

이에 따라 엘앤에프는 조기상환 자금을 보전하고 추가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3000억원 규모의 BW 발행을 추진하고 있다. 작년 하반기부터 미래에셋증권을 주관사로 선정하고 추진해온 2500억원 규모의 영구 CB 발행이 투자자 모집에 어려워지며 무산된 만큼, 이번 자금 조달이 실패할 경우 타격은 더 커질 수 있다. 지난해 8월 당시 회사는 미래에셋증권과 협의가 마무리되는 대로 관련 내용을 공시할 예정이었다.

2024년 8월 23일 엘앤에프 영구 CB 발행 뉴스 기사. 자료=네이버 뉴스

BW는 워런트 분리 발행이 가능하고, 투자자가 주가 변동성에 따른 위험을 줄일 수 있어 CB보다 선호되는 방식이다. 엘앤에프는 복수의 증권사들과 협의 중이며, 시장 반응에 따라 조달 규모 확대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엘앤에프의 실적 부진은 자금시장 신뢰를 회복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회사는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 1조9075억원, 영업손실 5587억원을 기록했고, 올해 1분기에도 3648억원의 매출과 1403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전방 산업의 재고조정이 마무리되며 출하량은 다소 회복세지만, 리튬 가격 하락의 역래깅 효과가 여전히 실적을 짓누르고 있다.

업계에서는 엘앤에프의 이번 BW 발행이 사실상 ‘마지막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다른 채권자들이 ICS처럼 풋옵션을 행사할 경우, 자금 유출이 연쇄적으로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전기차 산업이 잠시 주춤하고 있지만, 이차전지 기업의 체력은 그 공백기를 버틸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엘앤에프의 이번 자금조달이 단기 유동성 방어를 넘어, 장기 생존 전략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