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분당 페퍼저축은행 본사

[편집자주] 저축은행 업계에 작년은 2011년 ‘저축은행사태’ 이후 최악의 한해였다. 부동산에 이어 실물경기 침체까지 겹치며 부실 급증으로 실적이 역대급으로 악화됐기 때문이다. 다행히 작년 하반기부터는 차츰 안정세로 돌아서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부실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저축은행들도 적지 않다. 최근 공시가 끝난 전국 79개 저축은행들의 작년 재무제표를 바탕으로 저축은행 업계의 현 상황을 차례로 진단해본다.

더트래커 = 이태희 기자

글로벌 대형 사모펀드인 KKR그룹이 최대주주인 페퍼저축은행은 기존의 토종 저축은행들과는 확연히 다른 자산 포트폴리오와 영업스타일을 갖고 있다.

저금리시대 때 대부분의 저축은행들이 부실만 안생기면 고수익이 보장되는 부동산PF대출 등 부동산대출 영업에 사실상 올인할 때 페퍼는 오히려 소상공인이나 자영업자 등 개인대출 비중을 더 늘렸다. 작년 말 기준 총대출 2조2801억원 중 부동산관련 대출잔액은 3779억원으로, 16.6%에 불과한 것도 이 때문이다.

2013년 한국 진출 초기부터 틈새 대출시장을 적극 공략했다고 한다. 데이터기반 신용평가 모델을 갖추고 차별화된 예적금, 중금리 개인신용대출을 중심으로 주택담보·사업자·소상공인·자동차 대출 등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제시했다. 2022년 말 자산기준 저축은행업계 3위까지 오를 정도로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했던 것도 이런 영업방식 덕이었다.

페퍼저축은행의 대출-자산-예금 감소추이(저축은행중앙회 공시포털)

그러나 고금리 시대로 접어들고, 그 여파로 실물경기와 부동산경기가 극도의 침체에 빠지면서 페퍼의 틈새대출 영업신화는 2023년부터 크게 금이 가기 시작했다. 소상공인이나 자영업자, 영세민 대출 등에서 부실이 급증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부동산PF대출 부실까지 겹쳐 2023년부터 페퍼는 고속성장 신화의 주인공에서 ‘업계 최대 부실’,‘업계 최대 영업적자’ 등의 오명을 뒤집어쓰며 급전직하하는 신세가 되었다.

하지만 위기탈출 방식도 남달랐다. 다른 어느 저축은행보다도 먼저 과감히 부실대출을 매각-상각 등의 방법으로 정리하고, 고금리 예금 등도 과감히 줄였다. 그 결과 2022년 말 6.26조원에 달했던 자산총액은 작년 말 2.89조원으로, 2년 사이에 절반 밑으로 크게 줄었다.

작년 1년 동안 대출은 37%, 예금은 40%, 자산은 39%씩 줄었다. 전국 79개 저축은행들 중 34개가 작년 한해 대출-예금-자산을 모두 줄였지만 감소 폭이 페퍼보다 큰 곳은 없다.

페퍼저축은행의 자산건전성

이런 부실자산 정리 덕분에 전체 자산의 고정이하비율은 2023년 말 12.86%에서 작년 말 14.18%로, 소폭 상승하는데 그쳤다. 대손상각비(대손충당금신규전입)도 23년 1697억원에서 작년 874억원으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 2023년에 선제적으로 충당금을 많이 쌓고 부실을 과감히 정리한 결과다.

영업적자도 23년 1391억원에서 작년 1223억원으로 약간 줄었다. 하지만 이 역시 아직 업계 최대 영업적자 규모다. 부실정리에 어느 저축은행보다다 과감했지만 그 유탄과 후유증 역시 아직 심대하다고 볼 수 있다.

실물경기와 건설경기 침체가 조속히 회복되지 않고 장기화할 경우도 문제다. 언제까지 부실을 계속 정리하면서, 언제까지 몸집을 계속 줄여야만 하는가의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한 저축은행업계 관계자는 “몸집 줄이기는 이제 어느 정도 된 만큼 영업방식이나 자산포트폴리오를 재점검, 웬만한 불황에도 흔들리지 않는 체질 개선이 시급해 보인다”고 말했다.

페퍼저축은행의 부동산대출 현황

자영업자나 영세민 신용대출 부실 정리에 총력을 기울이다보니 정작 부동산금융 부문 부실은 아직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것도 이 저축은행의 과제다. 작년 말 기준 이 저축은행의 부동산PF대출 연체율은 22.8%, 건설업 및 부동산업대출 연체율도 각각 26%, 20%수준에 달하고 있다.

경남 창원 소재 소형 저축은행인 SNT저축은행은 최평규 SNT그룹 회장이 지분 100%를 갖고있는 개인 저축은행이란 점과 그럼에도 부실채권비율이 전국 최하위권일 만큼 유난히 높다는 점 때문에 종종 화제가 되었던 저축은행이다.

2023년 말 23.16%까지 올랐던 이 저축은행의 고정이하자산비율은 작년 말 18.22%로 많이 떨어졌다. 부실채권을 대거 정리한 결과로 보인다. 대출-예금-자산도 모두 증가세로 돌아섰다. 최 회장도 개인예금 158억원을 맡기는 등 이 저축은행 살리기에 일조했다.

하지만 부실채권 정리과정에서 충당금을 대거 쌓다보니 대손상각비는 2023년 40억원에서 작년 154억원으로 크게 늘었다. 이 때문에 같은 기간 영업적자는 30억원에서 129억원으로 오히려 더 커졌다.

SNT그룹 최평규 회장

총대출잔액 1431억원 중 부동산관련대출이 766억원으로, 부동산금융 비중이 53.5%에 달하는 점도 해결 과제다. 특히 부동산대출 중 부동산PF대출은 연체율이 0.28%인 반면 건설업 및 부동산업 연체율은 각각 44%, 24%에 달한다.

다른 많은 저축은행들처럼 이 저축은행도 당국의 강한 압박 때문에 부동산PF 부문 부실에만 우선 집중한 것으로 보인다. ‘보여주기식 정리’만 한게 아닌가하는 의혹을 던져주고 있다.

일본 오릭스그룹 계열인 OSB저축은행은 부실 정리가 이미 사실상 후반 단계인 다른 많은 저축은행들과 달리 고정이하자산비율이 계속 가파르게 치솟고 이 때문에 대손상각비가 더 늘어나며 영업적자도 더 커지는 케이스다.

고정이하비율은 2023년 말 10.58%에서 작년 말 17.58%로 급등했고, 대손상각비도 같은 기간 737억원에서 899억원으로 더 늘었다. 같은 기간 영업적자는 341억원에서 441억원으로 더 커졌다. 대출-예금-자산은 모두 뒤늦게 감소로 돌아섰다.

또 전 대출의 49%가 부동산관련대출일 정도로 부동산 비중도 아직 너무 과다하다. 부동산 각 부문의 고정이하자산비율도 부동산PF대출이 12.3%, 건설업이 26.8%, 부동산업이 32.7%에 각각 달한다.

본격적인 부실 정리나 구조조정이 시작되기 전인 2023년이나 작년 초 전국 많은 저축은행들에서 낯이 익던 모습이다. 당국이 작년부터 부실대출 심사강화로 압박하자 사실상 숨겨둔 부실 등이 대거 드러나며 뒤늦게 본격적인 부실 정리에 들어가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OSB저축은행의 자산건전성(저축은행중앙회 공시포털)

작년 말 부실채권비율이 계속 치솟고, 대손상각비와 영업실적이 더 악화하면서 부동산PF대출 부실비율까지 높은 저축은행들이라면 대부분 이와 유사한 케이스들이라고 볼 수 있다. OK, 우리금융, IBK, 부천 영진, 전주 삼호,파주 안국, 대전 오투, 통영 조흥저축은행 등이 이런 범주안에 들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상상인, 구미 라온저축은행과 함께 이미 적기시정조치를 받은 파주 안국저축은행의 경우 고정이하자산비율은 2023년 말 15.62%에서 작년 말 16.03%로 약간 밖에 안올라 상승세에 어느 정도 제동은 걸렸다. 대출-예금-자산도 모두 많이 줄었다.

하지만 대손상각비는 23년 108억원에서 작년 275억원으로 2배 이상 급증했다. 이 때문에 같은 기간 영업적자도 94억원에서 273억원으로 커졌다. 부동산대출 비중도 46%로 여전히 높다. 부동산PF대출-건설업대출-부동산업대출의 연체율 역시 각 24%, 18%, 30%에 달할 정도로 여전히 높다.

다만 23년 40억원, 작년 50억원 등 계속 유상증자는 하고 있다. 올해 더 분발하지 않으면 더 과중한 제재가 가해질 수도 있다.

대구 MS저축은행 재무상태표

SK증권 자회사인 대구 MS저축은행은 고정이하자산비율은 23년 말 11.85%에서 작년 말 15.2%로 약간 오르는데 그쳤지만 대손상각비는 23년 130억원에서 작년 308억원으로 급증했다. 이 때문에 같은 기간 영업적자도 110억원에서 324억원으로 더 커졌다.

또 부동산PF대출 부실은 어느 정도 정리, 고정이하비율이 한자릿수로 안정세이지만 작년 말 부동산업대출의 고정이하비율은 무려 70%에 달한다. 520억원 중 연체가 없는 정상대출은 47억원에 불과할 정도다. 건설업대출의 연체율도 아직 27%에 이른다.

이렇게 부실과 적자가 지속되다보니 누적결손은 2023년 말 50억원에서 작년 말 373억원으로 더 확대되었다. 또 작년 말 자본금 800억원에 자본총게 455억원으로, 자본잠식 상태에도 처음 빠졌다.

MS처럼 결손이거나 자본잠식에 빠진 저축은행들이 한둘이 아니다. 당장에 대형 금융지주사 소속인 KB,우리금융,NH저축은행들부터가 여기에 속한다. 이중 KB와 NH저축은행은 재작년까지 부실과 적자에 허덕이다 작년 실적이 크게 호전되면서 모두 흑자 전환했다. 부동산대출 부실부담은 여전하지만 전체 대손상각비가 크게 줄면서 흑자전환에 성공한 것이다.

하지만 나머지 우리금융저축은행과 IBK,부산 솔브레인,포항 대아, 한화, HB, 부산 우리, 광주 동양저축은행 등은 결손이나 자본잠식 상태에 아직 부실 부담이 커 실적호전도 이루어내지 못하고 있다. 하나금융지주 소속 하나저축은행과 전주 삼호저축은행은 아직 결손이나 자본잠식 상태는 아니지만 그 직전 상황까지 가 있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