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트래커 = 이태희 기자
작년 한때 ‘반짝’했던 부엌가구 국내 1위 업체 한샘의 영업실적이 올들어 다시 고꾸라지고 있다.
15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한샘의 올 1분기(1~3월) 연결기준 매출은 4434억원으로, 전년동기 4859억원에 비해 8.7%나 줄었다. 영업이익도 2024년 1분기 130억원에서 올 1분기 64억원으로 50%, 또 같은 기간 당기순익은 485억원에서 96억원으로 80%씩 각각 감소했다.
경쟁업체인 현대리바트도 올 1분기 매출은 13.3% 감소했지만 영업이익과 당기순익은 모두 40%씩 늘었다. 현대리바트와 다소 다른 움직임이다.
1986년 이후 한샘은 줄곧 국내 부엌가구시장 1위를 달리던 업체다. 2021년11월 토종 사모펀드 IMM프라이빗에쿼티(PE)에 매각되기 전까지는 적자도 한번 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인수하자말자 매출은 줄기 시작했고, 2022년에는 첫 영업적자까지 기록했다. 2021년 2조2312억원까지 늘었던 연결 매출은 22년 2조9억원, 23년 1조9669억원, 24년 1조9084억원 등 3년 동안 계속 줄었다. 올 1분기까지 매출 감소세는 이어지고 있다.
영업손익은 2021년 693억원 흑자에서 22년 217억원 적자로 떨어졌다가 23년 19억원 흑자로 다시 흑자 반전했다. 작년에는 312억원 흑자로 흑자폭이 다시 커지는가 했으나 올 1분기 다시 흑자가 급감한 것이다.
한샘이 이렇게 계속 비틀거리고 있는 최대 원인은 최근 수년간 계속 부진했던 국내 건설경기와 인테리어 업황 때문이다. 고금리 지속 등으로 부동산 거래가 급감하면서 인테리어 수요도 크게 줄었다.
경쟁업체들인 현대리바트, LX하우시스, 신세계까사 등도 모두 비슷한 처지다. 최대 경쟁업체 현대리바트의 영업손익도 2021년 202억원 흑자(연결)에서 22년과 23년 각각 279억원 및 198억원의 적자를 냈다. 작년에는 240억원 흑자로 돌아선 것도 한샘과 비슷하다.
하지만 양사 간에는 뚜렷한 차이점들도 있다. 우선 앞에서 언급했듯 현대리바트는 올들어서도 계속 흑자규모가 늘어나는데 비해 한샘은 흑자 폭이 확 줄었다.
더 차이가 나는 것은 매출이다. 한샘이 계속 줄고 있는데 비해 현대리바트는 2021년 1조4066억원, 22년 1조4957억원, 23년 1조5857억원, 24년 1조8707억원 등으로 계속 늘고 있다. 한샘을 거의 따라 잡았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대리바트는 현대백화점 그룹에 인수된 이후 일시적 적자가 나더라도 다각화 투자나 M&A 등으로 확장기조를 계속하고 있는데 비해 한샘은 신규 다각화투자 등은 최대한 억제한 채 경비절감과 조직 및 인력 축소 등으로 대응하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 한샘 제3, 4공장의 부엌, 수납, 서재 등 가구제조 생산능력(별도기준)은 2021년 4733억원에서 작년 3696억원으로 3년 동안 22%나 줄었다. 평균 가동율도 21년 67.6%에서 작년 65.2%로 떨어졌다. 현대리바트의 77%와 차이가 많이 난다.
업황이 계속 좋지 않아 생산능력이나 대리점을 줄인 것으로 보이지만 ‘불황기 돈 안되고 비용이 드는 것은 무조건 줄인다’는 사모펀드 속성과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한샘이 최근 3년간 연결 매출, 영업이익, 당기순익 등
양사 간의 더 결정적 차이는 배당금이다. 장사가 잘 안될 때에는 주주배당도 줄이는게 정상이다. 현대리바트는 최근 몇 년간 주주배당을 하지 않다가 이익을 낸 작년 오랜만에 26억원의 배당을 주주들에게 지급했다. 연결 배당성향은 17%에 불과했다.
하지만 한샘은 배당 규모와 횟수부터가 완전히 다르다. IMM에 인수되기 전 2019년과 20년 연말결산배당은 각각 216억원과 224억원 정도씩이었다. 배당성향은 30~40%대였다.
인수 이후 2022년부터는 연말배당 대신 분기중간배당을 주기 시작했는데, 연결 당기손익이 각각 713억원 및 622억원 적자를 냈던 22년과 23년 분기중간배당 합계는 각각 131억원 및 747억원이었다. 적자에 아랑곳하지 않고 배당을 준 것이었다.
1511억원의 당기순익을 냈던 작년 분기배당 합계는 무려 1416억원에 달했다. 연결배당성향이 93.7%에 달했다.
작년 영업이익(312억원)에 비해 당기순익이 컸던 것은 작년 9월 서울 상암동 사옥을 3188억원에 매각, 1359억원의 처분이익을 냈기 때문이다. 영업을 잘해서라기보다 사옥을 팔아 생긴 영업외수익 덕이었다.
사옥을 팔아 생긴 돈을 회사 투자 등에 쓰기 보다 배당 지급에 대부분 투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회사는 어려운데 이렇게 과배당을 지급한 결과 지분 35.4%로, 최대주주인 IMM PE는 지난 3년간 모두 1139억원을 배당으로 받아간 걸로 추정된다. 투자금을 이 정도 회수했다고 보면 된다.
IMM PE는 2021년 11월 조창걸 전 한샘 명예회장 등이 보유하던 최대주주 지분 27.7%를 주당 22만2550원, 모두 1조4513억원에 인수했다. 롯데그룹도 전략적투자자(SI) 자격으로 3천억원을 투자했다.
IMM PE측 인수자금 1조1500억원 중 3500억원은 사모펀드 투자자들이 투자한 자기자본이고, 나머지 8천억원 가량은 은행 등에서 빌린 인수금융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수 당시 한샘 주가는 10만원 안팎이어서 당시에도 2배 이상 고평가 논란이 있었다. 그만큼 IMM과 롯데가 한샘의 성장성을 지나치게 높게 평가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인수하자말자 실적 악화와 함께 주가도 하릴없이 떨어지기만 했다. 현재 주가는 4만원대에 불과하다. 인수가보다 주가가 워낙 떨어져 지금은 엑시트를 하고 싶어도 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IMM PE의 기업평가능력이 도마 위에 오를 만한 대표적 사례라 볼 수 있다.
주가가 계속 떨어지니 은행 등 인수금융 대주단에 담보로 제공한 한샘 지분가치도 같이 떨어지는 문제가 생겼다. 대주단으로선 당연히 추가담보를 내놓든지, 아니면 자사주 매입 등으로 주가를 방어하라고 압력을 가했다.
대주단은 또 IMM에게는 공개매수로 한샘 지분율을 더 높이라고도 요구했다. 2023년3월 IMM측이 1천억원을 들여 진행한 공개매수의 목적은 ‘대주단 담보 추가제공’으로 되어있다.
영업악화로 현금이 줄어들던 한샘도 피같은 보유 현금을 투입, 자사주를 사들일 수 밖에 없었다. 한샘이 2021년11월부터 22년7월까지 모두 3차례에 걸쳐 자사주 매입을 위해 투입한 회사자금은 모두 1082억원에 달했다. 인수 전부터 안그래도 높았던 한샘의 자사주 비율이 29.46%까지 치솟은 이유다.
한샘은 자사주를 매입하는 이유로, 주가안정 및 주주가치 제고라고 했지만 사모펀드 대주주와 인수금융 대주단의 압력 때문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자사주는 또 의결권이나 배당도 없기 때문에 사모펀드 대주주들은 높은 자사주 비율 덕에 자기 지분율 이상으로 배당을 더 받을 수도 있다.
과다한 배당 자체가 무리한 인수금융의 부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인수금융 이자부터 내려면 배당을 요구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사모펀드의 과다한 인수금융이 없었다면 한샘으로선 이렇게 무리한 배당지급이나 자사주매입 부담을 지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 홈플러스를 인수한 MBK파트너스 사례와 비슷한 경우라고 볼 수 있다.
차이라면 MBK가 인수금융 부담을 줄이려고 알짜 점포를 주로 매각했다면 IMM은 배당이나 자사주 카드를 주로 사용했다는 점 정도다. 홈플러스가 기업회생절차까지 간 반면 한샘은 아직 그 정도까지는 안갔다는 점도 차이라면 차이다.
IMM PE 인수 이후 지난 3년 간 한샘의 각종 경영지표 변화를 보면 그 멀쩡하던 한샘이 얼마나 망가졌는지를 쉽게 알아볼 수 있다.
매출이나 영업이익 등 영업실적이 얼마나 악화되었는지는 앞에서 설명했다. 인수 전 최소 3~4%대는 유지하던 영업이익률은 작년 1.6%로 떨어졌다.
인수 당시 10만원 안팎이던 주가가 현재 4만원대로 떨어지는 바람에 시가총액도 2조8천억원대에서 지난 14일 종가기준으로 9872억원으로, 거의 3분의1 토막이 나있는 상태다.
매출채권, 단기대여금, 미수금, 선급금 등에 대한 대손충당금 설정율은 2021년 5.09%에 그쳤으나 작년에는 17.1%까지 치솟았다. 각종 부실 우려도 크게 높아졌다는 뜻이다.
재무상태도 크게 안좋아졌다. 21년 100.5%이던 부채비율은 작년 204.4%로 두 배이상 뛰었고, 같은 기간 차입금의존도도 4.3%에서 36.6%로 크게 높아졌다.
실적 악화로 현금은 줄어드는데 배당이나 자사주 부담은 져야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실제 2021년 말 1177억원(연결)에 달했던 기말 현금및현금성자산은 작년 말 597억원으로 크게 줄었다.
고용이나 임금지표들도 대부분 악화됐다. 정규직은 2021년 2491명에서 작년 1975명으로, 20%나 감소한 반면 기간제 직원들은 같은 기간 49명에서 66명으로 35%나 늘었다. 같은 기간 임직원 1인당 연간 평균급여액은 6천만원에서 5700만원으로 오히려 줄었다.
같은 기간 정규직 숫자와 1인당 평균급여액을 16% 가량 늘린 현대리바트 등과도 많이 대비된다. 업황악화를 이유로, 비용절감과 구조조정에 주로 몰두한 탓으로 추정된다.
사모펀드의 기업 인수가 무조건 문제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은행 등이 거들떠 보지도 않는 자금위기 기업에 긴급자금을 수혈, 멀쩡하게 살려낸 사례들도 많다.
또 사모펀드가 인수한 기업에는 오너 일가가 회사 재산을 사실상 빼돌리는 사익편취나 오너리스크 같은 것도 찾아보기 어렵다. 우량 사모펀드들은 제대로 된 기업구조조정도 거뜬히 잘 해내고, 코리아디스카운트 해소 역할도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홈플러스와 MBK 사례처럼 최근으로 올수록 안좋은 사례들이 많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다. 저평가된 기업을 인수해 체질 개선으로 기업가치를 제대로 올리기 보다는 현금과 자산이 많은 기업을 인수한 후 단기간에 투자금 회수에 급급, 결국 껍데기만 남긴다는 지적이 반복되고 있다.
기술력 강화나 기업체질 개선 투자보다는 되팔기(엑시트)가 쉽도록 부채를 줄이고 자산을 매각해 이익을 많이 남기는데 치중하다보니 기업성장에 제약요인 밖에 되지 않는다는 지적들도 적지 않다. 사모펀드의 경영역량이나 모럴해저드도 자주 거론된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지난 3년 동안 한샘 사례도 긍정적 측면들보다 부정적 측면들이 많이 보였던게 사실”이라며 “제2의 홈플러스같은 얘기들을 안들으려면 IMM은 지금부터라도 단순 비용절감 같은 단기처방보다 디지털전환 등 엑시트 전략 자체를 전면 재검토해야할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