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트래커 = 이태희 기자
안그래도 경기 악화에다 미국 관세 부담, 조기 대선 등으로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는 금융-자본시장에 ‘홈플러스 사태’에 이어 이번에는 롯데손해보험 후순위채 콜옵션행사 무산 논란이 터져 적지않은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두 건 모두 사모펀드가 최대주주인 곳이어서 더 논란의 대상이다. 계속 방치하다간 자칫 새 금융위기의 도화선이 되는게 아니냐는 우려도 없지 않다.
후순위사채란 기업이 도산할 때 기업채무 변제순서가 후순위라는 조건을 달고 발행되는 회사채를 말한다. 후순위이고, 또 만기도 보통 10년 이상으로 길어 발행금리가 일반 회사채보다 높다. 후순위에 긴 만기라는 점 때문에 부채가 아닌 자본으로 인정받는 확률도 높다.
이런 점들 때문에 BIS자기자본비율이나 지급여력기준 등을 맞춰야 하는 금융회사들이나 보험사들이 신종자본증권과 함께 자주 발행한다.
후순위채나 신종자본증권 발행기업들은 또 발행 5년 후 쯤 콜옵션을 행사해 사채원리금을 전액 중도 상환해버리는 콜옵션 조건도 보통 붙인다. 만기 절반 가량이 지나 만기가 가까워 올수록 자본으로 인정받는 비율이 계속 떨어지는데다 투자자들의 관심도 끌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후순위채나 신종자본증권 모두 정식 만기는 길지만 통상 5년 쯤 되면 원리금을 중도상환받을 수 있도록 하는 콜옵션이 일종의 투자업계 불문율 또는 관행처럼 되어 버렸다. 콜옵션을 믿고 투자하는 투자자들이 대부분일 정도다.
만약 콜옵션 행사를 안하고 만기까지 가겠다고 발행 기업이 버틴다면 난리가 날 수 밖에 없다. 2022년 말 레고랜드사태 직후 흥국생명이 신종자본증권 콜옵션 행사를 안했다가 혼쭐이 난 것도 이 때문이다.
2009년 글로벌금융위기 때에는 우리은행의 후순위채 콜옵션 행사 연기로 큰 파문과 논란이 발생한 적이 있다.
롯데손보의 경우 지난 2020년 5월 발행한 만기 10년, 900억원 규모의 후순위채 콜옵션 기한이 지난 8일 도래했는데도 아직 콜옵션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
행사를 안하는게 아니라 못하고 있다고 보는게 맞다. 행사를 하려고 했으나 금융감독원이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이 문제 삼은 건 롯데손보의 지급여력비율(K-ICS·킥스)이다. 지급여력비율은 유사시 보험가입자들이 무더기로 보험금 환급을 요구했을 경우 그 감당 능력을 나타내는 지표다.
현행 보험업 감독 규정에 따르면 후순위채 콜옵션 행사는 킥스 비율이 150%가 넘어야 가능하다. 롯데손보의 작년 말 킥스 비율은 154.6%이지만 올들어 계속 떨어져 지난 3월 말 킥스 비율은 150%에 현저히 미달한다고 금감원은 최근 밝혔다.
무·저해지 상품의 해지율에 대해 당국 가이드라인인 원칙모형을 적용하면 작년 말 기준으로도 127.4%에 불과하다.
이에 대해 롯데손보는 지난 2월 신규 후순위채를 발행해 기존 채권 상환을 준비하려 했지만 당시 금감원이 조건을 강화한 탓에 발행을 철회했고, 이 때문에 킥스 비율이 더 떨어지게 된 것이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반면 금감원은 당시 롯데손보가 지난해 가결산 수치를 내부적으로 산출했음에도 작년 3분기 실적으로만 증권신고서를 냈고, 투자 위험도 기재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번에도 콜옵션 만기 도래로 롯데손보가 콜옵션을 행사하려하자 금감원은 또 제동을 걸었다. 제동에도 불구하고 롯데손보는 콜옵션 행사를 강행한다고 발표했으나 이번에는 한국예탁결제원이 금감원 지시라며 행사를 막았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롯데손보가 지급여력비율 저하로 조기상환 요건을 미충족함에도 일방적으로 조기상환을 추진하는 것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다”며 “법규에 따라 필요 사항을 엄정하게 조치하라”는 이례적인 지시까지 내렸다.
이 사건 전부터도 “킥스비율 150%는 현 여건상 무리”라는 보험업계 민원이 많이 일자 금감원은 오는 3분기부터 이 비율을 130% 정도로 완화하는 방안을 현재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롯데손보의 경우도 이런 상황을 감안, 금감원이 조건을 붙여 승인을 해주는 방법도 있다.
그런데도 금감원이 롯데손보에 대한 강경 방침을 굽히지 않자 다른 배경이 있는게 아니냐는 관측들도 적지 않다.
한 금융계 관계자는 “사모펀드 MBK파트너스가 홈플러스를 저 모양으로 만든 후 사모펀드가 대주주인 기업이나 금융회사들에 대해 금융당국의 시각이 더 깐깐해진게 아니냐는 얘기들이 많다”고 말했다.
롯데손보의 현재 최대주주는 토종 사모펀드 JKL파트너스다. 이 사모펀드는 2019년 롯데그룹에 7484억원을 주고 지분 77%를 확보했다. 롯데그룹은 당시 지주사 조건을 맞추려고 롯데카드도 1조3810억원에 MBK파트너스에 매각한 바 있다.
롯데손보는 사모 방식의 후순위채를 발행해 12일 중으로 콜옵션 행사대금을 끝까지 맞추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금감원이 사모 후순위채 발행에도 제동을 가하면 마땅한 방법이 없다.
금감원이 롯데손보의 사모 후순위채는 허가할지, 또 전반적인 방침이 이번 주 중에 바뀔지도 관심의 대상이다.
5월부터 2026년말까지 콜옵션 시기가 도래하는 국내 보험사들의 자본성증권
지난주 말까지 국내 채권시장을 비롯한 금융시장은 롯데손보의 콜옵션 행사 연기 또는 무산으로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투자자들이 관련 채권을 속속 매도하면서 후순위채 시장 금리는 상승하고 가격은 하락했다.
롯데손보보다 신용등급이 낮거나 킥스비율이 낮은 보험사들의 후순위채나 신종자본증권 등에도 매도세가 가세하면서 영향을 받고 있다. 원인이 무엇이든 투자자들의 신뢰를 한번 잃게 되면 관련 기업들의 자금조달 환경은 전반적으로 어려워질 수 있다.
한국기업평가(이하 한기평)는 지난 8일 보고서에서 “이번 후순위채 조기상환 지연사태 이후 롯데손보의 자본관리 부담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다른 보험사가 발행하는 자본성 증권 투자수요에도 부정적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또 “조기상환 요건 충족 실패 가능성에 대한 투자자들의 경각심이 높아지며 옥석가리기가 진행될 것”이라며 “킥스비율이 낮은 보험사의 경우 투자수요 부진으로 목표 물량 만큼 발행하지 못하거나 높은 금리를 부담해야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한기평에 따르면 롯데손보의 기발행 자본성 증권 중 앞으로 콜옵션 시점이 도래하는 물량은 2026년 12월 460억원, 2027년9월 1400억원 등이다. 연내 조기 상환이슈 해당물량은 더 없으나 시장에서의 평판 저하로 자본성증권 신규 발행을 통한 자본확충이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점이 상당한 부담이라고 한기평은 지적했다.
할인율 산출기준 등 제도 강화가 지속되고 있고, 경과조치 효과의 점진적 소멸로 경상적인 자본관리 부담이 존재해 대체 자본확충 수단이 확보되지 않은 경우 킥스비율 하락이 지속될 것이라고도 예상했다.
금리 부담 등으로 과거 흥국생명 등이 콜옵션 행사 연기를 한 적은 있지만 요건 미충족에 따른 금융당국의 승인 거절로 조기상환이 지연된 것은 이번이 또 처음 있는 일이다.
후순위채 등 자본성 증권이 예정된 시점에 조기상환되려면 자금확보 및 유동성관리 뿐아니라 킥스비율 등 재무건전성의 안정적 관리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점이 이번 사태 이후 보험업계에 재각인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한기평은 이번 사태로 킥스비율이 낮은 보험사들의 발행여건이 악화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기평 자료에 따르면 내년까지 콜옵션 행사기일이 도래하는 보험사들 중 롯데손보 못지 않게 작년 말 킥스비율이 낮은 곳은 푸본현대생명(157.3%), 동양생명(155.5%), 현대해상화재(157%) 등이 있다.
롯데손보의 재무건전성이 이같이 악화되도록 사실상 방치한 대주주 사모펀드에 대한 비판들도 적지 않다.
실제 대주주가 유상증자나 사모 후순위채 혹은 신종자본증권 인수 등에 적극 참여해주면 킥스비율이나 자본적정성 문제 등이 깨끗이 해결될 수 있다. 하지만 대주주 JKL파트너스는 2019년 인수 이후 단 한번도 그러지 않았다.
롯데손보는 2020년 이후 유상증자를 단 한 차례도 하지 않았다. 대신 2020년 896억원, 22년 1385억원, 23년 1493억원, 작년 4282억원씩의 후순위채를 계속 발행, 적자 등으로 줄어드는 자기자본을 보강해왔다. 신종자본증권도 2021년 454억원을 발행했다.
후순위채 등의 발행때 JKL파트너스가 참여했다는 기록도 없다. 대신 JKL파트너스가 롯데손보 지분 관리 등을 위해 만든 특수목적법인 빅튜라유한회사는 작년 말 현재 481억원을 롯데손보에서 빌려 쓰고 있다. 반면 투자금 회수를 위한 배당은 2019년 이후 롯데손보에서 전혀 받지 않고 있다.
그 대신 인수 4년 후인 2023년 9월부터 엑시트(재매각) 움직임은 보였다. 롯데손보가 시장에 나오자 눈길은 우리-신한-하나금융 등 3대 금융지주와 교보생명 등에 온통 쏠렸다. 이들 모두 적당한 크기의 손보사가 없어 고심 중이었고, 인수 여력도 충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장 급하다는 우리금융지주부터가 작년 6월말 롯데손보 매각 본입찰에 나타나지 않았다. 급해진 JKL파트너스는 작년 7월 중순부터 아예 상시매각 체제로 전환한다고 선언했다. 우선협상대상자 선정같은 절차를 없애고 누구든 적당한 가격만 제시하면 바로 팔겠다고 것이었다.
그런데도 그 이후 지금까지 매각 협상이나 타결 소식은 전혀 들리지 않고 있다. 우리금융은 물론 다른 금융지주사들이나 교보생명도 롯데손보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는 입장들이다. 그러면서 이들 모두가 내세우는 이유는 ‘너무 비싸다’는 것이었다.
물건은 탐나지만 지급여력비율 외에도 수익성, 영업실적, 고비용구조 등 여러 면에서 2조원대는 너무 비싸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진다. JKL파트너스가 정확히 밝히고 있지는 않지만 희망 매각가는 2조원대로 전해진다.
IB업계의 한 관계자는 “인수 후 지난 6년 동안 사모펀드가 롯데손보의 자본 보강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또 너무 비싼 가격을 고집하다보니 엑시트도 여의치 않아 이런 상황이 온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