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트래커 = 이태희 기자
작년 14개 부동산신탁회사들 중 신한자산신탁 등 6개사가 대규모 적자에 빠지는 등 부동산신탁업계의 수익성과 재무상태가 급격히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부동산신탁업계는 저축은행, 캐피탈업계 등과 함께 부동산PF 부실에 여전히 시달리고 있는 대표적 업권들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작년부터 ‘부동산신탁사발 금융위기설’이 한때 나돌았던 적도 있다. 작년과 올해 초에는 여러 부동산신탁사들의 신용등급이 연쇄 강등되기도 했다.
2일 금융통계정보시스템과 한국신용평가(이하 한신평)에 따르면 작년 적자(당기순손실)규모가 가장 컸던 부동산신탁사는 신한금융지주 소속 신한자산신탁으로 3206억원에 달했다.
다음으로 적자 규모가 큰 곳은 교보자산신탁(2409억원), 무궁화자산신탁(1198억원), KB부동산신탁(1133억원), 코리아자산신탁(192억원), 대신자산신탁(191억원) 등의 순이다.
하나자산신탁(588억원 흑자), 코람코자산신탁(360억원 흑자), 대한토지신탁(279억원 흑자), 한국토지신탁(279억원 흑자), 한국자산신탁(165억원 흑자), 한국투자부동산신탁(119억원 흑자), 신영부동산신탁(86억원 흑자), 우리자산신탁(18억원 흑자) 등 8개사는 흑자는 유지했으나 흑자 규모가 전년보다 대부분 많이 줄었다.
14개사 합산 당기손익은 6434억원 적자로, 2023년 2358억원 흑자에서 적자 전환했다. 14개사 합산순익은 2022년에만 해도 6457억원에 달했었다. 불과 2년 만에 대규모 적자에 빠진 것이다.
14개 부동산신탁사들의 2024년 당기손익(한신평 정리)
재무구조도 크게 악화되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부동산신탁사 합산 부채비율은 2022년말까지만 해도 35%에 그쳤으나 23년 말에는 52%, 작년 말 81% 등으로 크게 높아지고 있다.
특히 작년에 신한-KB-교보신탁 등이 대규모 적자에 빠진 것은 책임준공형(책준형) 리스크 현실화에 따른 대손비용 반영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한신평은 분석했다. 대손비용 급증에다 업계 전반적으로 수주가 감소하며 신탁보수도 줄어들면서 적자가 눈덩이처럼 커졌다.
책준형 토지신탁이란 시공사(건설사)가 부담하는 책임준공의무를 부동산신탁사도 함께 보증하는 형태의 토지신탁사업을 말한다.
부진한 부동산 경기와 공사비 상승, 참여하는 건설사의 낮은 신용도 등으로 시공사가 기한 내 준공을 하지 못하는 사례가 늘면서 신탁사가 신탁계정대출금(신탁계정대)을 투입해 책임준공 의무를 이행하는 사례들이 작년에 급증했다.
부동산신탁업계의 합산 순익 추이(한신평 정리)
신탁사까지도 책임준공 의무를 미이행, 손해배상 책임을 지게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신한자산신탁의 경우 작년 말 기준 책준형 관리형 토지신탁 손해배상소송이 모두 10건, 2686억에 달한다. 하자 손해배상이나 분양금 반환청구 등으로 피소된 소송들도 693건, 4805억원에 이른다.
신한자산신탁의 책준형 사업장 37곳의 금융기관 부동산PF 대출잔액은 작년 말 2조525억원 규모다. 이중 7건 3908억원은 시공사 책임준공의무 미이행 사업장, 9건 3524억원은 신한자산신탁의 책임준공기한이 이미 지나간 사업장들이다. 전 사업장의 3분의1 가량이 위험 상태에 들어가 있다.
이런 영향으로 2023년 170억원 수준이던 신한자산신탁의 대출채권관련손실(대손충당금 등 대손상각비)은 작년 2062억원으로 10배 이상 커졌다. 이 때문에 영업비용(3511억원)이 영업수익(1006억원)을 크게 웃돌면서 대규모 적자를 냈다.
책임준공확약에 따른 기타충당부채 전입액 부담이 급증하면서 기타영업비용도 23년 197억원에서 작년 1009억원, 영업외비용도 같은 기간 7.9억원에서 618억원으로 각각 급증했다.
이 회사는 자본보강을 위해 작년 1천억원의 유상증자와 1500억원의 신종자본증권을 긴급히 발행해야 했다. 모두 100% 모기업 신한금융지주가 떠안았다. 그랬는데도 자본총계는 23년 말 3779억원에서 작년 말 3040억원으로 줄었다. 자본 보강이 없었다면 부채비율은 더 치솟았을 것이다.
교보나 KB부동산신탁 등도 상황은 비슷하다. 교보자산신탁의 대손충당금 신규전입 등 대손상각비는 2023년 942억원에서 작년 2577억원, 같은 기간 충당부채전입 등 기타영업비용은 57억원에서 1245억원으로 각각 급증했다.
KB부동산신탁의 신용손실충당금 전입액도 2023년 1331억원에 이어 작년에도 978억원으로, 여전히 과다했다. 두 회사 역시 작년 모기업으로부터 유상증자나 신종자본증권 인수 등의 지원을 받아 자본을 긴급 보강했다.
은행 등 대주단은 부동산PF 리스크가 커지면 신규 투자속도 조절이 가능하다. 그러나 부동산신탁사들은 신규 수주가 중단되어도 기존 사업장에 대해 부족한 자금을 대여할 책임이 있거나(차입형), 책준의무 관련 추가 공사비를 투입(책준형)해야하는 우발부채들을 보유하고 있다.
이 때문에 2024년말 전 금융권의 총 부동산PF 익스포져(위험노출액)가 2023년 말 대비 12.5% 감소했는데도, 부동산신탁사 익스포져(신탁계정대 합산기준)는 2023년 말 대비 59%나 급증했다고 한신평은 설명했다. 2022년 하반기 이후 신탁계정대는 약 3.5배나 급증했다.
그 결과 2024년 하반기 이후 부동산신탁업권 전체 신탁계정대 합산금액은 7.7조원으로, 자기자본 합산금액 5.8조원을 훨씬 상회하고 있다.
신한자산신탁의 경우 신탁계정대는 2023년 말 2095억원에서 작년 말 6951억원으로 3배 이상 크게 늘었다. 자본총계 3040억원의 2배가 넘는 규모다.
또 작년 말 신한자산신탁 신탁계정대에는 무려 2270억원(23년말 209억원)의 대손충당금이 설정돼 있다. 떼일 가능성이 높은 부실대출이 작년에 급증한 것으로 추정된다.
신한자산신탁은 신한금융지주가 2022년 아시아자산신탁을 인수, 이름을 바꾼 회사다. 대형 금융지주 산하 부동산신탁사가 왜 이렇게 많은 부실을 안고 있는지는 정확히 알기 어렵다. 아시아자산신탁 때 있었던 무리한 확대경영의 부작용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한신평은 14개사 중 한신평이 신용등급을 보유하고 있는 7개사를 대상으로 부실화 스트레스테스트를 벌인 결과 책준형 비중이 높은 금융계 부동산신탁사의 양적 부담이 높으며 재무대응력은 업체별로 차별화된다고 밝혔다.
또 올들어 중소형 건설사 신용사건이 증가함에 따라 신탁사 재무부담이 높아지는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어 모니터링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한신평은 최근 일부 건설업체의 회생절차 신청 등 연이은 신용사건 발생으로 자금력이 부족한 부동산신탁사에 대한 우려가 증폭되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