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씨앤이 시멘트 공장 현장
더트래커 = 이태희 기자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지난 몇 년간 국내 건설현장에서는 건자재값 폭등이 최대 이슈였다. 여기에 인건비까지 크게 오르며 건설업체들마다 아우성을 질렀다.
건설업체들의 신규 공사수주 기피현상이 확산하면서 재건축-재개발을 비롯한 전국의 웬만한 건설현장들이 사실상 올스톱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안그래도 고금리와 부동산PF 자금경색 등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던 건설경기는 올들어 더 악화 상태로 치닫고 있다.
건설현장에 돈을 대준 많은 금융회사들까지 곳곳에서 부실 급증으로 시달리고 있다. 여기에 내수경기 침체가 더 심각해지면서 경제위기설까지 거론하는 전문가들도 적지 않다. 건설현장 분위기는 올들어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다.
그래도 작년부터 약간 달라진 점은 다행히 상당수 건자재 가격들이 안정세로 돌아섰다는 점이다. 철근 값은 계속 크게 떨어지고 있고, 모래-자갈 시세 등도 적어도 폭등세는 멈추었다.
하지만 시멘트와 시멘트가 주원료인 레미콘 가격 및 인건비 등 만은 아직 고공행진을 멈추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건설 현장은 마비상태를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시멘트값 고공행진이 주범이다. 레미콘업체들은 시멘트값만 조금 안정시켜주면 레미콘 가격도 떨어질 수 있다고 아우성이지만 시멘트업체들은 마이동풍이다.
시멘트업체들은 “우리도 원가가 계속 올라 시멘트가격을 계속 올리지 않을 수 없다”고 맞서고 있다고 한다. 작년 건설교통부와 물가당국 등이 여러차례 중재와 협조 요청을 했지만 시멘트업체들은 끄덕도 않는 상태인 것으로 알려진다.
시멘트업계의 주장은 맞는 것일까? 시멘트 제조원가는 정말로 계속 오르고 있는 것일까? 때마침 최근 공시된 시멘트업계 1위 업체 쌍용씨앤이 사업보고서를 토대로 이 주장의 타당성을 한번 분석해보기로 한다.
쌍용씨앤이 시멘트제품가격 추이
우선 시멘트값을 작년까지 계속 크게 올린 것은 사실이었다. 쌍용씨앤이의 전 시멘트제품 내수 평균가격은 2022년 톤당 76652원에서 23년 88323원, 작년 94933원 등으로 가파른 오름세를 지속했다.
2023년 상승률이 15.2%, 작년은 7.48%에 각각 달했다. 2021년 이후 작년 말까지 시멘트업계 전체의 시멘트 가격 평균 누적인상률은 42%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슬래그시맨트와 슬래그파우더 가격 동향도 비슷하다.
하지만 쌍용씨앤이의 시멘트 수출가격을 보면 2023년까지 오르다 작년에는 크게 내렸다. 톤당 평균수출가격은 2022년 58510원, 23년 63121원, 작년 44483원씩이다. 작년 하락폭이 30%에 달한다.
수출시장 개척 때문에 2중 가격제를 쓰는지는 알 수 없지만 쌍용씨앤이의 설명이 필요한 대목이다. 어떤 설명을 붙일지는 모르나 이해가 잘 안되는 대목임은 분명하다.
수출가격 문제는 그렇다 치더라도 쌍용씨앤이가 시멘트 주원재료라고 공시한 품목들의 가격 동향을 봐도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구석들이 한두개가 아니다.
쌍용씨앤이는 시멘트의 원재료로 석회석(고품위), 석고, 슬래그, 규석 등 4가지를 들었다. 쌍용씨앤이가 작년에 매입한 원재료 매입총액 대비 비중은 석고가 29.7%로 가장 크고, 다음은 석회석(28%), 슬래그(13%), 규석(12%) 순이다.
쌍용씨앤이 시멘트 주요 원재료 현황
쌍용씨앤이 사업보고서의 주요 원재료가격 변동추이에 따르면 이중 석회석 가격은 작년에도 계속 올랐다. 가격 상승률이 2023년 16.8%에 이어 작년에도 17.4%에 달했다.
반면 나머지 3개 품목은 전혀 그렇지 않다. 원재료 매입비중이 가장 큰 석고의 경우 평균 매입가격이 2022년 톤당 45001원에서 23년 39667원, 작년 39081원 등 계속 내림세다. 2022년 대비 석고 가격 누적하락율은 13.1%에 달한다.
슬래그와 규석도 2023년까지는 올랐지만 작년에는 모두 하락했다. 작년 하락율은 슬래그 1.4%, 규석 1.5% 등으로, 비록 하락율이 크지는 않지만 적어도 상승세가 멈춘 것은 사실이다.
이들 외 실제 시멘트 제조원가의 30%에 달한다는 유연탄 가격도 2023년 이후 확실히 안정세를 지속하고 있다. 전기 가격도 이젠 오름세라고 보기 어렵다.
쌍용씨앤이 주요 시멘트 원재료 가격추이
4대 주원재료 중 3개가 작년에 모두 하락하고, 유연탄-전기 가격 등도 하향안정세인 만큼 쌍용씨앤이의 전체 원재료비용도 하락하지 않을 수 없다. 통상 기업들은 사업보고서 비용난에 원재료비 항목을 두고 있는데, 쌍용씨앤이는 이를 가급적 숨기려는 듯 ‘원재료비’가 들어간 항목을 두지 않고 있다.
여러 정황상 ‘재고자산의 매입 및 변동 등’이란 항목에 원재료비가 포함된 것으로 추정할 수 밖에 없었다. 다른 비용 항목들은 원재료비와 전혀 관련없는 항목들이기 때문이다.
‘재고자산매입및변동 등’은 2023년 5308억원(연결)에서 작년 3925억으로 무려 26%나 급감했다. 건설경기 침체로 작년 시멘트 제조 및 출하량이 감소한데다 대부분 원재료비 가격도 떨어지면서 원재료비나 재고자산 매입 비용 등이 크게 준 것으로 추정된다. 아무튼 원재료비가 작년에 많이 줄었다는 점은 확실하다.
다른 원가인 운반비도 작년에 8.8%나 줄었다. 반면 인건비인 종업원급여(+7.87%)와 전기세와 유연탄 등 에너지비용인 동력비(+2.8%)만 약간 늘었다. 이 두 항목의 상승폭은 크기 않아 쌍용씨앤이의 전체 비용(연결)은 2023년 1조6853억원에서 작년 1조5056억원으로 10.6%나 줄었다.
시멘트 원재료비와 인건비 등이 작년에도 폭등했다면 이런 수치가 나올 수 없다. 누가봐도 전체 제조원가(비용)는 많이 하락했다고 볼 수 있다. 쌍용씨앤이 전체 매출 중 시멘트 사업의 비중이 82%에 달하기 때문에 이런 원가 동향은 곧 시멘트 원가 동향이라고 해석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
이를 반영, 매출에서 매출원가가 차지하는 비중을 뜻하는 매출원가율은 2023년 80.5%에서 작년 78.7%로 1.8%p나 떨어졌다. 작년 매출 감소율(9.3%)에 비해 매출원가 감소율(11.3%)이 더 컸다.
매출보다 매출원가가 더 많이 떨어졌으니 영업이익이 더 늘어나고 영업이익률은 올라가는게 당연하다. 쌍용씨앤이의 작년 매출이 줄었는데도 연결 영업이익은 23년 1841억원에서 작년 1901억원으로 오히려 증가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률도 9.8%에서 11.2%로 껑충 뛰었다.
쌍용씨앤이 사업보고서도 “(매출 감소에도 불구하고) 유연탄 등 원재료비 안정화 덕에 영업이익률이 개선됐다”고 분명히 설명하고 있다.
쌍용씨앤이 비용의 성격별 분류
IB업계의 한 관계자는 “1위 업체인 쌍용시앤이 사업보고서로 볼 때 건자재값과 인건비 폭등 때문에 시멘트값을 계속 올리지 않을 수 없다는 쌍용씨앤이와 시멘트업계의 주장이 얼마나 과장되고 잘못됐는지 뚜렷이 보여주는 숫자들”이라고 지적했다.
작년 정부도 건설경기 침체 타개를 위한 공사원가 줄이기 방안의 하나로 시멘트업계에 시멘트값 인하 압력을 여러차례 가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업계 내 일부 시멘트회사들 사이에서 “시멘트업계가 너무 욕을 먹으니 조금이라도 협조해야 하는게 아니냐”는 얘기도 적지 않게 나왔다고 한다.
하지만 선두 업체인 쌍용씨앤이부터가 강경한 입장이어서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일부 건설업계 관계자들은 말한다.
시멘트업계는 또 시멘트값을 못내리는 이유 중 하나로 환경투자 부담을 든다. 그러나 쌍용씨앤이 사업보고서를 보면 환경투자도 이미 작년 이전에 대규모 투자는 일단락된 상태다.
작년 상장폐지로 쌍용씨앤이 지분 100%를 갖게 된 사모펀드 한앤코로서는 이제 좋은 값을 받고 쌍용씨앤이를 매각을 하든가,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배당을 최대한 받아 투자금 회수를 최대한 서두르는게 당면한 최대 목표일 것이다.
그런 한앤코와 쌍용씨앤이에게 배당재원인 순익을 확 줄일 시멘트값 인하는 말도 안되는 얘기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건설경기 침체와 시멘트 출하량 감소, 환경투자 부담 심화 같은 핑곗거리들을 계속 갖다 붙이는 지도 모른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건설경기 및 내수 부양이라는 공익을 위한 시멘트값 안정화에도 사모펀드가 최대의 걸림돌 또는 방해 요인이 될 수 있다는 또 하나의 사례가 아닌가 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