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펀드 운용사 한앤컴퍼니(한앤코) 로고
더트래커 = 이태희 기자
작년에 있었던 쌍용씨앤이의 자진 상장폐지도 ‘경영 효율성 제고’라는 목표를 내세웠지만 이 역시 사모펀드 한앤코의 엑시트 전략과도 무관치 않다는게 일반적 평가다. 상장이 폐지되면 효과적인 엑시트를 위한 구조조정이나 사업 재편, 재매각 작업 등을 일반투자자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신속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쌍용씨앤이의 몸값이 3조원을 넘어 지금 같은 시장 상황에서 재매각이 어렵다면 배당을 더 강화하거나 알짜 자산 매각 같은 투자금 회수작업도 더 쉽게 할 수 있다.
따지고 보면 한앤코 인수 후 벌어진 엄청난 고배당, 수천억원의 환경투자, 2023년에만 567억원에 달했던 자사주 매입, 작년의 자사주 공개매수 자금부담 등은 사모펀드가 오너가 아니었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은 일들이었다.
IB업계의 한 관계자는 “과거 쌍용양회 시절부터 근무해온 임직원들이라면 이런 상황들이 몹시 황당하고 억울할 것”이라며 “MBK파트너스가 인수한 후 최근 법정관리 상태에까지 들어간 홈플러스처럼 쌍용씨앤이도 자꾸 멍들어가는 것 같아 안쓰럽다”고 말했다.
2024년 자진 상장폐지 당시 일부 주식매수청구 관련 공시
쌍용씨앤이는 홈플러스와 달리 안정적인 이익을 꾸준히 내는 기업이다. 무리한 배당이 아니라 정상적인 배당을 받고 지내다 적당한 기회에 재매각해도 충분히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어 보이는 기업이다.
그런데도 한앤코는 시장의 비판이나 신용평가사들의 지적엔 아랑곳 하지 않고 계속 무리한 배당에 자진 상장폐지까지 밀어 붙였다. 왜 그럴까?
많은 업계 관계자들은 시멘트업계 구조나 현재 자본시장 상황, 공정위의 독과점 정책 등 때문에 몸값 3조원이 넘는 쌍용씨앤이를 재매각하기가 쉽지 않은데다 홈플러스 인수 때의 MBK파트너스처럼 무리했던 과다 인수금융 부담 때문이 아닌가 추정하고 있다.
한앤코의 쌍용씨앤이 인수금융 구조는 한앤코 측이 정확히 밝히지 않아 전모를 알기 어렵다. 다만 몇차례 있었던 인수금융 리파이낸싱(빚을 새로 얻어 기존 빚을 갚는 것) 소식 등을 통해 그 윤곽을 대충 짐작만 할 뿐이다.
작년 일부 보도들에 따르면 한앤코는 2023년 말 1조7천억원 규모의 쌍용씨앤이 인수금융 리파이낸싱을 완료했는데, 이로 인해 부담금리가 연 7%대로 높아졌다. 단순계산으로도 이로 인해 발생하는 연간 이자가 1190억원에 달한다는 보도였다.
작년 자진 상장폐지도 이 금리부담 때문이었다는게 이 보도의 줄거리였다. 한앤코의 쌍용씨앤이 지분이 100%로 높아지면 연간 배당수입도 1700억원대에서 2천억원대 이상으로 높아지기 때문에 인수금융 금리부담을 충분히 커버할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올해 또 한앤코가 리파이낸싱을 추진한다는 또 다른 보도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 한앤코가 인수금융 이자부담 때문에 아무튼 곤욕을 치르고 있는 것은 사실로 보인다.
MBK에 인수됐던 홈플러스처럼 쌍용씨앤이도 사모펀드가 무리한 인수금융을 동원해 인수하는 바람에 정상적인 지배주주였다면 굳이 안뜯겨도 될 돈들을 이러 뜯기고 저리 뜯기고 있다고 해석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6년 인수 당시 일부 인수자금 조달경로 관련 공시
2016년 한앤코는 모두 1조4375억원을 들여 쌍용씨앤이 지분 79.9%를 확보했다. 이후 쌍용씨앤이 우선주 전량매입에 239억원, 또 작년 상장폐지를 위한 공개매수에 3667억원을 투입했다. 지금까지 쌍용씨앤이 인수와 사후 관리에 모두 1조8281억원을 투입했다.
반면 쌍용씨앤이가 2016년 이후 작년까지 지급한 배당 총액은 1조5579억원이다. 이 중 한앤코의 평균 지분율이 78% 안팎인 점을 감안하면 1조2600억원 이상이 한앤코에 배당으로 지급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에 투자금 회수를 위해 한앤코가 2020년 매각한 쌍용정보통신 지분 40% 매각대금 261억원 등을 추가하면 지금까지 한앤코가 회수한 투자금은 모두 1조3천억원 안팎일 것으로 추정된다.
아직 회수율 71% 정도이지만 한앤코보다 1년 앞선 2015년에 홈플러스를 인수했던 MBK파트너스 보다는 회수율이 양호하다. MBK보다 훨씬 더 적극적이었던 배당정책 덕일 것이다.
MBK도 한앤코처럼 적극적인 배당으로 투자금을 회수하려 했겠지만 때마침 인수하자말자 오프라인 유통업 업황이 크게 악화되면서 배당을 많이 챙기기는 어려웠다.
이 때문에 MBK는 배당보다는 홈플러스의 알짜 점포들을 대거 매각해 과다했던 인수금융 상환부터 서둘렀다. 이 전략이 결과적으로 더 영업능력을 악화시켜 결국 최근 홈플러스가 법정관리에 들어가는 상황까지 가게 됐지만.
사모펀드들이 비슷한 시기에 인수했지만 이처럼 홈플러스와 쌍용씨앤이는 같은 점도 있고 다른 점도 있다.
한앤코가 엄청난 고배당 정책으로 인수금융 이자부담을 커버하고 투자금 회수를 하고 있는데 비해 MBK는 알짜 점포 매각으로 인수금융 부담을 줄인 점은 서로 다른 면이다. 반면 자기자본 투입도 있었지만 무리한 인수금융도 대거 동원한 점은 서로 유사점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사모펀드들이 일으킨 과다한 고금리 인수금융 때문에 피인수기업이 엄청난 부담을 안고 있는 점은 똑같은 점이다. 이 부담이 폭발해 홈플러스는 법정관리까지 갔고, 쌍용씨앤이는 아직 그 정도는 아니라는 차이점이 있기는 하지만...
2024년 상장폐지를 전후한 한앤코 지분율 변화
MBK파트너스는 이미 20여년 전부터 동북아 최대 사모펀드운용사라는 소리를 들었고, 한앤코는 최근 10여년 사이에 크게 도약한 신흥 강자다. 동아시아권 전체로는 MBK의 투자자산 운용규모가 훨씬 크고, 국내로만 한정하면 한앤코는 MBK와 1위 자리를 놓고 다툴 정도로 커졌다.
하지만 MBK 못지 않게 흑역사나 논란이 될만한 한앤코의 투자사례들도 적지 않다. 특히 피인수기업이 감당하기 어려운 고배당 때문에 논란이 많았다.
쌍용씨앤이외 대표적 사례로 세계적 자동차 공조업체인 한온시스템이 또 있다. 한앤코는 2015년 한온시스템을 한국타이어와 함께 인수하면서 최대주주가 됐는데, 2015~2023년까지 한온시스템의 현금배당성향은 연평균 194%에 달했다.
반면 한앤코 인수 이전 3개 사업연도의 연평균 현금배당성향은 35%에 불과했다. 작년에도 순익 589억원에 배당지급액은 472억원에 달했다. 한앤코 인수 이후 작년까지 나간 배당금이 모두 1조5744억원에 달했다. 얼마나 심하게 배당을 챙겨갔는지 한 눈에 알아볼 수 있게 한다.
한온시스템 경주 공장
한앤코가 한온시스템 인수 이후 이렇게 과다한 배당을 쥐어짜낼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인수대금 2.75조원 중 약 1.7조원이 시중은행 등 30개 금융사들로부터 빌린 대출로 조달됐기 때문이다.
중간에 대주단을 몇차례 교체하면서 차입액은 더 늘어나고, 일부 펀드 지분투자자들이 이탈하면서 2020년부터 한온시스템의 배당지급액은 더 늘어난 것으로 알려진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초우량기업이던 한온시스템은 이래저래 크게 쪼그라들 수 밖에 없었다. 결국 작년 말 2대주주 한국타이어가 한앤코 지분을 모두 인수, 한국타이어그룹 계열사로 바뀌었다. 이 역시 사모펀드의 무리한 인수금융 유탄을 피인수기업이 심각하게 입은 사례다.
사모펀드가 인수한 기업들이 모두 이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최근의 홈플러스나 한온시스템, 쌍용씨앤이처럼 사모펀드의 무리한 인수금융 때문에 멀쩡했던 피인수기업이 심각하게 망가지는 사례들이 계속 잇따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 때문에 이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와 관련 대책들이 시급하다는 지적들이 적지 않게 나오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멀쩡했던 기업이 사모펀드 인수 이후 자꾸 망가진다는게 문제”라며 “금융당국이나 공정위, 채권금융기관들이 적어도 무리한 인수금융을 토대로 우량기업을 사모펀드가 인수하려는 시도에 대해서는 일종의 제동장치를 마련하는 것부터가 시급해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