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범 한국타이어그룹 회장


더트래커 = 김상년 기자

작년 말 한국타이어그룹이 최대주주가 되기 직전 한국타이어그룹으로부터 6천억원의 3자배정 유상증자 자금을 수혈받았던 한온시스템이 1년 만에 다시 9천억원 규모의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추진한다고 지난 23일 공시했다. 이 중 8천억원은 채무상환자금용이라고 밝혔다.

너무 과다한 한온시스템의 채무가 증자 배경이라는 설명이다. 아무리 한국타이어(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가 우량기업일지라도 이같은 ‘밑빠진 독 물붓기’ 식의 지원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평가도 점점 많아지는 상황이다.

최근 몇년간 가족들과 경영권분쟁을 벌여왔던 한국타이어그룹 조현범 회장이 ‘보여주기 식’ 실적에 급급한 나머지 너무 무모한 M&A(인수합병)를 한게 아니냐는 지적도 적지 않다.

한온시스템의 유상증자 계획 공시


24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한온시스템은 주주배정 후 실권주 일반공모 방식의 유상증자 계획을 지난 23일 공시했다. 이번에 발행될 신주는 모두 3억4750만주로, 모두 9000억2500만원을 조달할 계획이라고 한온시스템은 밝혔다.

신주발행가는 기준시가보다 15% 할인된 주당 2590원이며, 신주배정 기준일은 오는 11월14일, 구주주 청약일은 12월19~22일, 납입일은 12월30일이다. 우리사주조합에 20%가 우선 배정되고, 나머지는 구주주 1주당 0.4096주 비율로 배정된다. 구주주들이 청약을 포기한 실권주는 일반공모 방식으로 청약을 받는다.

이번 유상증자로 조달된 자금 중 488억원은 시설자금, 512억원은 운영자금으로 각각 사용하고 나머지 8천억원은 채무상환자금으로 사용할 계획이라고 한온시스템은 설명했다.

한온시스템의 주요주주 현황


지난 6월 말 기준 한온시스템의 최대주주는 한국타이어그룹의 주력기업인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이하 한국타이어)로, 지분율 54.77%다. 다음은 국내 2위 사모펀드 한앤컴퍼니 21.63%, 일반소액주주 18.41%(13만명), 국민연금 5.17%의 순이다.

작년 말 이전에는 한앤컴퍼니가 50.5%, 한국타이어가 19.49%로 나란히 1, 2대 주주였다. 2015년 한앤컴퍼니가 미국 비스테온으로부터 한온시스템(옛 한라공조)을 2조7512억원에 인수할 때 한국타이어도 1조617억원을 투입, 같이 지분을 사들였다.

작년 12월24일 3자배정 유상증자 방식으로 한국타이어가 6천억원을 우선 투입하고, 올 1월3일 한국타이어가 다시 한앤컴퍼니 지분 18.08%를 1조2159억원에 사들이면서 10년만에 1, 2대 주주자리가 바뀌었다. 작년 말과 올해 초 한국타이어는 1대주주가 되면서 모두 1조8159억원을 투입했다.

한앤컴퍼니는 당시 시세에 비해 100% 이상의 경영권 프리미엄을 받았고, 10년 전 최초 매입가에 비해서는 약 23.3%의 차익을 얻었다. 뿐만아니라 2015년부터 작년까지 한온시스템에서 받은 누적 배당금 7331억원까지 합치면 상당한 차익을 확보하고 사실상 성공적인 엑시트를 한 셈이 되었다.

한온시스템 경주 공장


반면 한온시스템은 지금도 국내 1위, 세계 2위급 자동차 공조시스템 전문업체이긴 하지만 사모펀드 지배 10년 동안 너무 많이 쪼그라 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우선 시가총액부터가 10년 전 약 5조원에서 지난 1월 약 3조원으로, 40% 가량 줄었다. 지금은 2조원선으로 더 급감했다.

지난 10년 간 실질 매출 성장률은 40% 정도로 평가되지만 이익창출력도 코로나 팬데믹 이후 급격히 약화되었다. 독보적인 기술경쟁력이 아니라 후발주자들이 너무 많이 뛰어든 때문으로 알려진다.

2019년 4838억원 수준이던 연결 영업이익은 2022년 이후 2천억원대로 떨어졌다가 작년에는 급기야 955억원까지 줄었다. 올 상반기 영업이익도 854억원에 그쳤다. 당기손익은 작년 3586억원 적자로, 첫 적자 전환한 후 올 상반기에도 377억원 적자에 머물렀다. 매출 증가에도 불구하고 시장점유율도 하락, 2위 업체와의 격차가 많이 좁혀진 것으로 알려진다.

한온시스템의 연결 매출, 영업이익, 당기순익 등(왼쪽부터 올 상반기, 작년, 재작년. 단위 백만원)


특히 지난 10년간 가장 안좋아진 것은 차입금과 재무상태다. 2015년 말 4011억원에 불과하던 차입금(회사채, 유동리스 포함)은 작년 말 4.56조원으로, 10배 이상 불어났다. 지난 6월 말 이 수치도 4.67조원으로 6개월 사이에 더 늘었다.

10년 전 100% 밑이던 부채비율은 작년 말 251%까지 급등했다. 새 최대주주 한국타이어가 작년 말 3자배정 유상증자로 6천억원을 더 투입했지만 부채비율은 2023년 말 269%에서 소폭 개선에 머물렀다. 매출 성장률만 양호했을 뿐 수익성이나 재무안정성은 10년 간 크게 후퇴했다고 보면 된다.

너무 채무가 늘어나다보니 올 상반기 지출된 이자비용만 1173억원에 달했다. 올 상반기 영업이익 854억원으로는 이자 감당도 못하고 있는 셈이다.

한온시스템은 2019년 마그나그룹의 유압제어사업부를 1.35조원에 인수한 것 말고는 10년간 이렇다 할 M&A를 한 것도 없었다. 설비투자 규모가 늘기는 했지만 보유 현금과 영업에서 벌어들이는 돈으로 감당 불가능한 수준이 아니었다.

한온시스템의 지난 6월 말 차입금 내역


그런데도 이렇게 막대한 빚더미에 올라 앉게 된 것은 사모펀드 인수 이후 거듭된 배당금 과다 지급이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라고 주요 신용평가사나 업계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입을 모은다. 영업으로 벌어들인 돈은 배당에 모두 쏟아부어도 모자라다보니 설비투자나 각종 운영자금 등은 모두 차입으로 해결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 2015년 사모펀드 인수 이후 한온시스템의 연말 배당과 그해 당기순익 규모를 보면 2019년까지는 연말배당이 당기순익을 넘지 않았다. 19년만 해도 그해 연결기준 당기순익 3185억원에 연말배당은 1708억원이었다.

하지만 2020년 코로나사태 후 이익은 급감하는데 배당은 그 전 수준을 계속 유지한게 문제였다. 20년 당기순익 1104억원에 연말배당은 1708억원이었고, 특히 2022년의 경우 순익은 204억원으로 크게 쪼그라든 반면 연말배당은 1921원에 달했다. 23년에도 순익 510억원에 연말배당은 1686억원이었다. 적자전환하고 1대주주도 바뀐 작년에는 실로 오랫만에 연말배당을 중단했다.

한앤컴퍼니 인수 이후 작년까지 나간 배당금이 모두 1조4517억원에 달한다. 한국타이어가 10년 간 받은 배당도 2829억원 가량 될것으로 추산된다. 한앤컴퍼니 배당누계는 7331억원 선이다.

한온시스템의 주요 배당지표


한앤컴퍼니 인수 후 이렇게 과다한 배당을 쥐어짜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한온시스템 초기 인수대금 2.75조원 중 약 1.7조원이 시중은행 등 30개 기관으로부터 빌린 대출로 조달됐기 때문으로 많은 업계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인수금융을 제공한 대주단에게는 정기적으로 고율의 이자를 줘야했기 때문이다.

중간에 대주단을 몇차례 교체하면서 차입액이 더 늘어나고, 일부 펀드 지분투자자들이 이탈하면서 2020년부터 한온시스템의 배당 지급액은 더 늘어난 것으로 알려진다.

IB업계의 한 관계자는 “결국 사모펀드가 과다하게 돈을 빌려 인수하다보니 벌어진 일들로, 사모펀드는 상당한 매각차익에 거액 배당 등 실리를 톡톡히 챙겼지만 한온시스템은 빚더미에 엄청난 이자부담 등 멀쩡하던 회사만 크게 망가진 셈”이라고 말했다.

사모펀드의 무리한 인수금융 때문에 망가졌다는 점에서 올들어 법정관리까지 간 홈플러스나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롯데카드 등과 모두 비슷한 케이스들이라고 볼 수 있다.

IB업계의 다른 관계자는 “업황이나 업계 경쟁력도 옛날같지 않고, 또 약탈적 고배당으로 차입이 이렇게 급증했는데도 이를 훤히 알고 있었을 한국타이어가 웃돈까지 얹어줘가면서까지 1대주주 자리를 꿰어찬 배경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온시스템의 주요 제품들


이번 9천억원 유상증자는 최대주주 한국타이어와의 사전 교감하에 이루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과다한 차입금부터 확 줄여놓지 않으면 해결책이 없다는데에 한국타이어도 인식을 같이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앤컴퍼니는 몰라도 한국타이어는 적어도 유상증자 실권은 하지않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문제는 한국타이어의 감당 능력이다. 한국타이어는 이미 작년 말 한온시스템 인수와 3자배정 유상증자 때 보유 중이던 현금 및 현금성자산을 거의 대부분 써버린 적이 있다. 올 2월 부랴부랴 4600억원의 회사채를 발행하기도 했다.

지난 6월 말 한국타이어의 연결기준 현금및현금성자산은 다시 2.18조원대로 늘어나있다. 작년 당기순익이 1.13조원에 이를 정도로 워낙 잘 벌어들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는 수많은 해외 자회사들과 국내 종속 자회사 현금들을 망라한 수치다. 아무리 자회사라더라도 한온시스템 인수 및 증자자금까지 모기업이 마음대로 끌어쓰기는 어렵다. 실제 자회사 수치를 뺀 한국타이어만의 별도 기준 수치들을 보면 작년과 올해 한국타이어가 한온시스템때문에 무리했던 흔적들이 곳곳에 보인다.

별도기준 한국타이어의 현금및현금성 자산은 2023년 말 3231억원에서 작년 말 1859억원으로 줄어든데 이어 지난 6월 말에는 865억원으로 더 줄었다. 23년 말 대비로는 2400억원 가까이 줄었다.

한국타이어의 단기차입금 등 부채 내역(왼쪽부터 2024년, 23년, 22년 순)


별도기준 단기차입금 잔액은 23년 말 1099억원에서 작년 말 8398억원으로 8배 이상 급증했다. 작년 말 인수 및 증자자금 상당부분을 단기차입과 보유 현금으로 해결했다는 얘기다. 이때문에 한국타이어의 전체 부채잔액도 23년 말 1조971억원에서 작년 말 2조3958억원으로 2배 이상 급증했다. 지난 6월 말 2.07조원으로 다시 약간 줄었지만 그래도 높은 수준이다.

별도기준 부채비율은 23년 말 20%에 불과하던 것이 작년 말 39.5%로 2배 가까이 훌쩍 뛰었다. 지난 6월 말 이 수치도 아직 33.5%로, 30%대다. 물론 다른 기업들에 비하면 여전히 초우량 상태이지만 한온시스템 때문에 한국타이어도 많이 멍들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물론 보유 현금과 유동자산들을 박박 끌어 모으고 약간의 차입까지 추가한다면 한국타이어가 이번 9천억 유상증자 참여대금 4860억원 가량도 무난히 조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타이어 자신도 필요한 자금들이 한두푼이 아니다.

올 상반기 각종 투자활동과 차입금 상환 등 재무활동으로 나간 현금만 각각 3671억원, 3143억원에 달한다. 아무리 우량기업이라지만 이렇게 한온시스템에 매년 최소 수천억원씩 밑빠진 독에 물붓기 식으로 지원을 계속하기는 여력에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한온시스템이 24일 공시한 장래경영계획


한온시스템의 실적 개선 전망이 아직 그리 밝지 못하다는 점도 문제다.

나이스신용평가는 올해 초 보고서에서 “수익성이 구조적으로 개선되기 위해서는 차량 판매 확대와 전동화 가속으로 관련 제조설비의 가동률이 상승해야 하지만 전동화 부품 판매 부진으로 한온시스템의 설비 가동률은 70%를 하회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또 매출 비중 30%로, 이 회사 최대 시장인 유럽지역 차량 판매실적 둔화와 미국의 전기차 의무화 폐지를 감안하면 당분간 가동률이 크게 상승할 가능성도 낮은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올해 초 보고서이지만 지금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