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윤 전 한미약품 사장


더트래커 = 김상년 기자

남동생과 연합해 작년 모친 및 여동생 등과 경영권분쟁을 벌이다 패배했던 한미약품 오너일가 장남 임종윤 전 한미약품 사장(53)이 최근 자신이 보유 중인 한미약품그룹 지주사 한미사이언스 지분을 또 대거 매각했다.

이번 매각 지분을 사준 곳은 임 전 사장의 개인 회사이고, 이 회사는 또 사모펀드에서 1300억원을 빌려 이 지분을 매입한 것으로 밝혀졌다. 임 전 사장이 사실상 자신의 개인회사를 이용해 1300억원을 마련한 셈이 된다.

8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임 전 사장 일가는 지난달 29일 보유 중이던 한미사이언스 지분을 대거 매각했다. 임 전 사장 본인의 경우 한미사이언스 보통주 234만1814주(지분율 3.42%)를 코리포항에 장외매도 방식으로 매각했다. 매각가격은 1100억원이다.

임종윤 전 사장 일가와 보유 기업들의 이번 지분매매 현황 공시


코리포항은 경북 포항 소재 작은 중소기업으로, 영유아를 대상으로 한 디지털헬스케어 서비스 및 mRNA 백신 생산을 위해 2020년 설립됐다. 하지만 매출 등 기업 규모가 작아 외부 감사보고서조차 아직 공시되지 않는 기업이다.

이 회사는 홍콩에 본사가 있는 바이오 헬스케어 연구개발및 신사업 인큐베이션 전문기업 코리그룹의 한국 지사 격이고, 코리그룹의 최대주주는 또 임종윤 전 사장인 것으로 알려져있다. 임 전 사장이 자신의 사실상 개인 기업에 자기 지분을 매각한 셈이다.

같은 날 임 전 사장의 부인 홍지윤씨(50)와 임 전 사장이 실질 소유 중인 또 다른 국내 상장기업 DXVX도 보유 한미사이언스 지분 각각 21만2791주(0.31%)및 21만2884주(0.31%)를 역시 코리포항에 매각했다. 매각가격은 각각 100억원 씩이다.

임 전 사장의 장녀 임성연씨(22)도 지난 6월11일 한미사이언스 지분 6만주(0.09%)를 매각한 것으로 이날 같이 공시됐다. 다만 임성연씨는 코리포항 매각이 아닌 장내매도 방식으로 23.6억원을 챙겼다.

코리포항은 이번 지분 매입에 모두 1300억2만8286원을 투입, 지분 276만7489주(4.13%)를 확보했다.

이번 지분 매각으로 임 전 사장 부부와 DXVX의 한미사이언스 지분율은 낮아졌으나 임 전 사장 개인기업 코리포항이 그 지분을 다 가져걌기 때문에 실제 임 전 사장측 실질 지분율은 이전과 큰 차이는 없다. 다만 딸 임성연씨 매각분(0.09%) 만큼은 지분이 낮아졌다고 볼 수 있다.

이번 매각 후 임종윤 전 사장의 한미사이언스 지분은 3.2%이고, 부인 홍지윤씨는 0, 임 전 사장 남동생인 임종훈 한미사이언스 사내이사 사장은 5.09%다. 반면 형제와 대립했던 모친 송영숙 한미사이언스 미등기 상근 회장(77)은 3.38%, 여동생 임주현 한미사이언스 사내이사 부회장(51)은 7.57%다.

모친및 여동생과 한편이었던 신동국 한양정밀 대표이사 회장(75)은 16.43%, 한양정밀 6.95%다. 한미약품 창업주인 고 임성기 회장의 고향 후배로 알려진 신 회장 측 합산 지분은 23.38%로, 현재 한미사이언스 최대주주다. 반면 임성기 회장 일가 합산지분은 32.46%(코리포항 및 DXVX 지분은 제외)다.

임성기 회장 일가가 다시 단합해 신 회장과 지분 대결을 벌인다면 아직은 신 회장보다 지분이 더 많다. 하지만 송영숙-임주현 모녀가 작년 신 회장을 자기들 편으로 끌어들일 때 향후 의결권도 공동행사한다는 약정계약을 체결한 바 있어 당분간 이런 신 회장과의 지분대결 구도는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인 것으로 알려진다.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


지난달 29일 코리포항이 임종윤 전 사장 부부와 DXVX의 지분을 매입할 때 장외 매입가격은 주당 4만6974원씩이었다. 반면 이날 한미사이언스의 장내 종가는 41350원이었다. 종가보다도 13.6% 비싸게 임 전 사장 부부 등이 지분을 팔았다고 할 수 있다.

이 장외 매도가격이 관련 법규정대로 제대로 산정된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만약 코리포항이 법규정을 어기고 비싸게 매입해준 것이라면 향후 문제가 될 수 있다.

코리포항이 이번 지분매입에 투입한 1300억2만8286원의 조달 방식에도 문제가 있어 보인다. 코리포항은 이번 지분 매입을 위해 자기자금은 2만8286원만 투입했고, 나머지 1300억원은 모두 차입했다고 공시했다. 차입처는 큐리어스사이언스 유한회사라는 곳으로, 사모펀드 운용사 큐리어스파트너스가 조성한 사모펀드로 추정된다.

차입금 만기는 4년이고, 코리포항은 차입을 위해 이번에 임 전 사장측으로부터 인수한 한미사이언스 지분 276만7489주 전량을 담보로 맡겼다. 인수하는 지분 전량을 담보로 사모펀드에서 인수자금 거의 전부를 빌렸다고 볼 수 있다.

코리포항의 인수자금 조달내역


문제는 이 작은 중소기업이 1300억원에 달하는 차입금 원리금을 4년내에 제대로 갚을 수 있을지 여부다. 코리포항은 감사보고서가 아직 공시되지 않아 작년 재무상황을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경영실적이 가장 최근 공개된 2022년까지만 해도 매출은 4.76억원에 불과했고, 당기순손실은 10억원에 달했다.

아직 매출을 제대로 못 올리고 적자만 지속되던 회사였다. 여러 정황으로 보아 지금도 영업상황이 크게 나아지지는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회사가 4년 안에 자력으로 1300억원을 상환하기는 현재로서는 불가능에 가깝다고 봐야할 것이다.

홍콩 본사 코리그룹이나 DXVX 같은 임 전 사장 기업이 도와준다면 가능할지 모르나 두 회사의 상태도 그럴 여력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백신개발 및 유전체 분석 전문기업인 DXVX는 올 상반기 연결 매출 162억원에 반기순손실이 151억원에 달했다. 적자 지속에다 쌓아둔 이익잉여금이 전혀 없어 결손에 자본잠식 상태에까지 들어가 있다.

이 때문에 최근 몇년간 수시로 홍콩 코리그룹이 자금수혈이나 다른 여러 도움을 줘야만 했다. 그만큼 코리포항이나 별다를 바 없는 부실 상태여서 코리포항을 도울 여력은 없다고 봐야한다.

1300억원 차입금을 빌려준 사모펀드와 담보


그나마 지원여력을 기대할 곳은 홍콩 코리그룹 뿐이다. 이 회사는 작년 경영권분쟁 당시 한미약품 중국법인의 일감몰아주기 도움을 계속 받아왔다고 해서 한차례 이슈가 됐던 기업이다. 이 회사는 또 작년 초 적자에 허덕이던 DXVX에 253억원을 빌려주고 아직 못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최대주주인 임 전 사장이 최근 몇년 간 막대한 상속세나 경영권분쟁 때문에 큰 어려움에 처했을 때 임 전 사장을 적극 도와주지 못했던 것을 보면 코리그룹 역시 1300억원을 책임질 여력은 많지 않아 보인다.

임 전 사장은 이번 지분매각에 앞서 경영권 분쟁에서 패배한 직후인 지난 1월 한양정밀과 킬링턴에 한미사이언스 보유지분 5%를 1265억원에 장외매도한 바 있다. 그 이전인 작년 12월에는 지분 0.67%(매각가 140억원)를 장내에서 매각했다. 이번까지 포함하면 3번에 걸쳐 9.09의 지분을 매각하는 셈이다.

임 전 사장은 올해 2월 한미사이언스와 주력기업 한미약품에서 물러나면서 양사에서 모두 88억7000만원의 퇴직금도 받았다. 그런데도 무슨 돈이 그렇게 많이 필요한지, 이번에 또 지분을 대거 매각한 것이다. 그만큼 상속세 납부가 우선 다급하고, 또 자기 개인 급전도 많이 필요한 상황인 것으로 보인다.

DXVX의 재무상태


2020년 고 임성기 창업주 별세 후 한미약품 오너 일가 4인에게 부과된 상속세는 모두 5400억원 규모였던 것으로 알려진다. 분할납부 방식이어서 그동안 4차분 상속세까지 납부하고 지금은 마지막 5차분 1700억원 안팎이 남아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일가는 고금리 주식담보대출과 지분 매각 등으로 그동안 분납 상속세를 근근이 납부해왔다. 이 과정에서 오너일가의 자금압박이 너무 심해 회사를 통째로 OCI그룹에 넘기려다 작년 경영권분쟁이 발생하기도 했다.

임종윤 전 사장의 5차분 상속세는 수백억원대일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도 이번에 또 부부합산 1200억원을 지분 매각으로 부랴부랴 마련한 것은 5차분 상속세 뿐 아니라 그동안 계속 빌려온 고금리 주식담보대출 상환 목적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분 매각 때마다 매각대상 지분에 붙어있는 주식담보대출 상환을 전제 조건으로 지분 매각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

아무튼 이번 지분 매각으로 상속세와 주식담보대출 문제 등을 어느 정도 해결하더라도 문제가 모두 해결된건 절대 아니다. 4년 후 코리포항이 차입금 상환을 제때 하지 못하면 담보로 잡혀있는 한미사이언스 지분 4.04%는 사모펀드 몫이 될 수도 있다.

그런 꼴을 당하지 않으려면 코리포항이든 홍콩 코리그룹이든 DXVX든 무조건 돈을 많이 벌어야한다. 하지만 그게 쉽지 않아 보인다는게 문제다. 임 전 사장이 한미약품그룹에서 퇴직한 만큼 이제는 과거처럼 한미약품의 일감몰아주기 지원 같은 것도 기대하기 어렵다.

한미약품 소식에 밝은 한 재계 관계자는 “임 전 사장 소유 기업들 상당수가 상태가 썩 좋지 못하다는게 문제”라며 “하지만 다급하다보니 나중에 어떻게 될지라도 일단 팔고보자는 생각에서 이번 지분 추가매각을 단행한 것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