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트진로와 한국앤컴퍼니 CI
[편집자주] 기업오너가 자기 연봉과 배당을 얼마씩 책정하는가는 자유이고, 합법, 불법의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그 정도가 너무 심하면 거센 사회적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기업은 죽 쑤는데 자기 연봉과 배당은 경쟁기업들에 비해 누가봐도 지나치게 과다한 경우 등이다. 과거에 비하면 이제 많이 사라졌다지만 최근 공시되고 있는 기업들의 작년 재무제표들을 보면 아직도 문제 투성이들이 적지 않다. 특히 심해 보이는 경우들을 시리즈로 차례로 짚어본다.
더트래커 = 이태희 기자
지난해 그룹의 덩치나 벌어들인 이익에 비해 총수 일가의 연봉이나 배당이 상대적으로 눈에 띄게 많았던 중견 그룹들로는 하이트진로, 한국앤컴퍼니(옛 한국타이어) 등을 우선 꼽을 수 있다.
소주와 맥주로 유명한 하이트진로그룹은 공정거래위원회 산정 2023년 말 자산순위 79위 정도인 중견 그룹이다. 계열사가 모두 11개이지만 이중 주력사인 하이트진로의 비중이 압도적이다.
하이트진로의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은 2조5992억원으로, 전년 2조5202억원 대비 3% 정도 밖에 늘지 않았다.
반면 영업이익은 2023년 1239억원에서 작년 2081억원으로 무려 68%나 급증했다. 당기순익도 같은 기간 355억원에서 957억원으로 2.7배 가까이 크게 늘었다. 하지만 금융비용 등이 커 영업이익에 비해 당기순익 규모는 크지 않다.
하이트진로 연결 손익계산서
하이트진로그룹 최대주주인 박문덕 회장은 작년 하이트진로에서 72.59억원, 지주사인 하이트진로홀딩스에서 9.5억원 등 모두 82.09억원의 보수를 받았다.
배당도 양 사 합쳐 23.96억원을 받았다. 배당 규모가 상대적으로 적은 것은 당기순익 규모 자체가 크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박 회장의 장남인 박태영 하이트진로 사장도 작년 양사에서 보수 16.53억원을 받았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 몰라도 두 사람 연봉과 배당은 2023년보다 모두 약간씩 줄어들었다.
하지만 그룹 규모에 비하면 여전히 과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 회장의 작년 연봉은 자산 기준 재계 2위인 최태원 SK 회장(60억원)이나 4위인 구광모 LG 회장(81.77억원)보다도 많다. 아들 박 사장 연봉까지 합치면 작년 재계 연봉순위 10위 안에 들어가는 것으로 추정된다.
박 회장과 박 사장은 또 모두 등기 임원이 아닌 미등기 임원이다.
하이트진로는 과거부터 총수 일가가 이사회 구성원이 아닌 미등기 임원으로 재직 중인 회사 비율이 가장 높은 그룹 중 하나다. 미등기여서 법적 책임은 지지 않으면서 보수만 높게 받아간다는 비판이 일각에서 나오는 이유다.
하이트진로의 작년 보수 5억원이상 상위 5명 명단
실제 하이트진로 전문경영인으로 등기임원인 김인규 대표이사의 작년 연봉은 12억원이었다. 총수 아들보다는 약간 많지만 회장 연봉의 6분의 1에 불과했다.
거의 매년 시민단체 등이 하이트진로 총수 일가의 이런 행태를 비판해 왔지만 작년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연봉과 배당을 전년보다 약간씩 줄인 게 그나마 조금이라도 개선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을까.
작년 매출에 비해 영업이익 증가율이 훨씬 높았던 것도 하이트진로가 원재료비와 광고선전비 등 술 제조원가를 잘 관리한 영향도 있지만 2023년 11월 소주와 맥주 출고가를 대폭 인상한 것이 결정적이었다는 지적들이 많다.
하이트진로는 당시 술값을 크게 올리면서 그 이유로 국내외 원재료값 대폭 인상을 들었다. 소주 주원료인 국내산 주정 가격이 2023년에 크게 오른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하이트진로 사업보고서를 보면 소줏값을 올리고 난 다음 해인 작년에는 주정 가격이 2.87% 밖에 오르지 않았다. 작년에는 상승폭이 현저히 둔화돼 거의 오르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반면 맥주 주원료인 수입산 호프의 작년 평균 매입가격은 2023년보다 오히려 36% 하락했다. 2022년 대비로는 모두 55%나 하락했다. 오른 원재료도 있었지만 2022년 이후 줄곧 내린 원재료도 있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하이트진로의 별도 기준 작년 원재료와 소모품 사용액은 6377억원으로 전년 6632억원보다 3.8% 오히려 줄었다.
인건비는 늘었지만 광고선전비도 작년에 22%나 줄어 하이트진로의 전체 비용은 23년 2조1449억원에서 작년 2조1275억원으로 소폭 줄었다.
원재료비 등 비용은 작년에 오히려 줄었는데 원재료비 폭등을 이유로 술값을 크게 올렸으니 영업이익과 당기순익이 크게 늘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하이트진로의 별도 기준 작년 원재료와 소모품 사용액은 6377억원으로 전년 6632억원보다 3.8% 오히려 줄었다. 인건비는 늘었지만 광고선전비도 작년에 22%나 줄어 하이트진로의 전체 비용은 23년 2조1449억원에서 작년 2조1275억원으로 소폭 줄었다.
원재료비 등 비용은 작년에 오히려 줄었는데 원재료비 폭등을 이유로 술값을 크게 올렸으니 영업이익과 당기순익이 크게 늘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모두 미등기인 박문덕 회장 부자의 하이트진로 보직
이 때문에 하이트진로는 일부 원재료비 급등만을 명분으로 서민 술인 소주와 맥주 출고가를 지나치게 올려 서민 부담을 가중시키고 전체 물가불안도 앞장 서 조장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이렇게 급증한 이익의 상당 부분이 총수 부자의 과다한 고연봉과 배당수익에 쓰여졌다는 비판도 이제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에대해 하이트진로 관계자는 "제품 출고가는 당해연도의 원·부자재 가격에 따라 조정이 있는게 아니다"며 "원·부자재 외에 물류비와 제조경비 등 다양한 비용을 고려한다"고 설명했다.
조현범 한국타이어그룹회장
자산순위 49위인 한국앤컴퍼니(옛 한국타이어) 그룹도 작년 장사를 비교적 잘 한 편이다. 주력기업인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이하 한국타이어)의 작년 연결 기준 매출은 5.2%, 영업이익은 32%, 당기순익은 55%씩 각각 늘었다.
그 영향인지 작년 그룹 총수인 조현범 회장이 지주사 한국앤컴퍼니와 주력기업 한국타이어에서 받은 연봉은 2023년 78억원에서 104억원으로 많이 늘었다. 합산 배당도 같은 기간 404억원에서 591억원으로 증가했다. 한국타이어는 주주배당 자체를 2022년 주당 800원에서 23년 1300원, 24년 2000원 등으로 가파르게 올리고 있다.
조 회장의 작년 연봉은 재계 전체 8위, 배당은 9위에 각각 해당한다. 아무리 이익을 많이 내고 있다고 해도 자산기준 재계 서열 49위에 비해 현저히 높다고 아니할 수 없다.
이 그룹 역시 총수에 비해 전문경영인들에 대한 처우가 여전히 박하다. 미등기 임원인 조 회장의 한국타이어 작년 연봉이 57.14억원인 반면 전문경영인인 이수일 대표이사 부회장은 30.18억원에 그쳤다.
지주사 한국앤컴퍼니에서는 더 정도가 심하다. 조현범 상근 대표이사회장 연봉이 47.17억원인 반면 안종선 대표이사 연봉은 9.73억원이다.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의 연결 손익계산서
조 회장이 이런 비판을 무릎쓰고도 매년 계속 연봉과 배당을 과다하게 올리고 있는 것은 몇 년 전 다소 무리하게 경영권을 넘겨받은 것과 친형 및 MBK파트너스와의 경영권분쟁 등과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조 회장은 지난 2020년 6월 창업자이자 부친인 조양래 명예회장으로부터 블록딜(시간외 대량매매)로 한국앤컴퍼니 지분 2194만2693주를 사들였다. 그룹 최대주주로 올라선 계기였다. 당시 조 회장은 인수대금 2447억원을 갑자기 마련하기가 어려워 여기저기서 대규모 주택담보대출을 일으켜야만 했다.
이어 2022년 4월에는 한국타이어 주식 701만9903주를 아버지로부터 증여받았다. 여기서 생긴 증여세 1000억원 가량을 마련하기 위해 또 증권사를 찾았다. 이렇게 생긴 주택담보대출이 2500억원에 달한다. 지금도 조 회장은 수개월에서 1년 단위로 주택담보대출 만기를 연장해 오고 있다.
지주사 한국앤컴퍼니의 현재 대주주 구성
조 회장은 2023년에는 사모펀드가 개입된 경영권 분쟁을 벌인 적도 있다. 당시 사모펀드 MBK 파트너스는 조 회장 형인 조현식 한국앤컴퍼니 고문과 누나 조희원씨 등과 손잡고 한국앤컴퍼니 공개매수를 통해 경영권 다툼을 벌였다. 일단 조 회장 측이 승리하긴 했지만 언제 또 경영권 분쟁이 또 생길지 모르는 상황이다.
IB업계의 한 관계자는 “대출원리금이나 세금도 내야 하고, 언제 또 생길지 모를 경영권분쟁에도 대비하려면 개인자금 확보가 절실할 것”이라며 “이런 상황 때문에 조 회장이 다소간의 비판을 감수하고서라도 연봉과 배당을 매년 크게 올리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