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기학 영원무역그룹 회장

[편집자주] 기업오너가 자기 연봉과 배당을 얼마씩 책정하는가는 자유이고, 합법, 불법의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그 정도가 너무 심하면 거센 사회적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기업은 죽 쑤는데 자기 연봉과 배당은 경쟁기업들에 비해 누가봐도 지나치게 과다한 경우 등이다. 과거에 비하면 이제 많이 사라졌다지만 최근 공시되고 있는 기업들의 작년 재무제표들을 보면 아직도 문제 투성이들이 적지 않다. 특히 심해 보이는 경우들을 시리즈로 차례로 짚어본다.

더트래커 = 이태희 기자

영원무역그룹 창업자인 성기학 회장(78)에게는 아들이 없고 딸만 셋이 있다. 이 중 첫째인 성시은 영원무역홀딩스 이사(48)와 둘째인 성래은 영원무역그룹 부회장(47)은 모두 미국 스탠포드대학에 유학한 후 영원무역에 차례로 입사했다.

셋째인 성가은 영원아웃도어 사장(44)도 미국 웨이즐리 대학 졸업 후 영원아웃도어에 입사했다. 세 딸 모두를 미국 명문대학에 유학보낸 후 회사에 차례로 입사시켜 후계 경쟁을 일찌감치부터 시킨 셈이었다.

처음에는 장녀 시은씨가 영원무역그룹 지배구조의 최정점에 있는 오너일가 가족기업 YMSA의 사내이사를 먼저 맡으면서 후계 경쟁에서 유리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둘째 래은씨가 2016년 지주사인 영원무역홀딩스 대표이사 사장에 오르면서 단숨에 역전되었다.

래은씨는 2020년에는 주력기업 영원무역의 영업 및 경영관리총괄 사장, 2021년에는 YMSA 대표이사에 각각 올랐다. 2022년에는 영원무역그룹 부회장 및 영원무역홀딩스 대표이사 부회장과 영원무역 부회장 자리를 한꺼번에 꿰어 찼다.

2023년 3월에는 아버지 성 회장이 지분 100%를 갖고 있던 YMSA의 최대주주(50.10%) 자리까지 거머 쥐었다. 성 회장은 자신의 지분 중 50.10%를 둘째 딸에게 증여했다.

영원무역홀딩스의 지분구조

영원무역그룹의 공식 지주회사인 영원무역홀딩스의 현재 지분구조를 보면 YMSA가 지분율 29.09%로 최대주주이고, 성기학 회장이 16.77%, 성래은 부회장이 0.03%를 각각 갖고 있다. 이 증여를 계기로 지분 면에서도 성 부회장은 사실상의 그룹 최대주주로 올라선 것이다.

반면 첫째인 시은씨는 현재 동생이 부회장으로 있는 영원무역의 사회환원담당 이사직에 머물러 있다. 셋째 가은씨는 그래도 맏언니보다는 나아, 올해 초 유명 아웃도어 브랜드 ‘노스페이스’ 판매사인 영원아웃도어의 사장으로 승진했다.

이들 두 사람은 지주사는 물론 영원무역, 영원아웃도어 등의 지분도 전혀 갖고 있지 않다. YMSA의 나머지 지분 49.9%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YMSA가 공시하지 않고 있는데, 이 지분들 일부나 전부를 아버지가 첫째와 셋째 딸에게 나누어 주었을 가능성은 있다.

영원무역과 영원아웃도어 대표이사 직을 아직도 아버지 성 회장이 계속 맡고 있는 점도 첫째와 셋째에 대한 아버지의 배려로 보인다. 두 사람이 재직 중인 두 회사 대표이사직마저 둘째가 맡을 경우 자매들 간의 어색한 관계나 충돌 가능성이 없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성 회장이 장녀 대신 이처럼 유독 둘째를 총애해 사실상의 후계자로까지 서둘러 낙점한 이유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고 있다. 성 부회장이 해외 등에서 실적을 많이 올렸고, 성격이 적극적인데다 경영스타일도 아버지를 빼어닮은 점 등이 그 이유가 아닐까 하는 관측들만 그룹 주변에서 나돈다고 한다.

셋째딸 성가은 영원아웃도어 사장

후계자 낙점 과정에서 지금까지도 문제가 되고 있는게 하나 있다. 바로 YMSA 지분 50.10%를 증여받는 과정에서 생긴, 850억원에 달한다는 성 부회장의 증여세 납부 문제다.

성 부회장은 대다수의 재벌가 2~3세들 처럼 세금 연부연납제도를 활용, 증여세를 몇 년에 걸쳐 나누어 내지 않고, 2023년 단 한 번에 납부를 완료했다. 당연히 그 자금출처에 관심이 많이 쏠렸다. 알고 보니 자신이 최대주주이자 대표이사로 있는 YMSA에서 대부분을 빌려 납부한 것으로 밝혀졌다.

YMSA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이 회사는 성래은 부회장에게 2023년 중 815억원을 대여해줬다가 44억원을 회수했다. 23년 말 기준 장기대여금 잔액은 771억원이다. 2024년 감사보고서가 아직 나오지 않아 작년 말 대여금 잔액은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작년에도 일부를 갚았을 것으로 보인다.

YMSA 측은 이 대여금과 관련, 성 부회장 보유 영원무역홀딩스(지분율 0.03%) 및 영원무역 주식(지분율 0.02%)과 부동산, YMSA 보통주 지분 등을 담보로 확보하고 있다고도 공시했다.

YMSA가 성래은 부회장에게 빌려준 대여금 관련 공시

2022년 말 이 회사의 별도기준 자산총계는 2453억원이었다. 전 자산의 3분의 1을 성 부회장에게 한꺼번에 빌려줬던 셈이다. 이것이 너무 벅찼던지 이 회사는 이 대여금 마련을 위해 당시 본사 건물로 사용하던 대구 동구 만촌동 빌딩을 영원무역에 587억원에 긴급 매각했다.

총수 딸의 증여세 납부를 위해 그룹 주력기업까지 동원된 모양새였다. 성 회장 등 그룹수뇌부의 매각 협조 지시 없이는 성사가 어려울 일이었다.

YMSA의 2024년 재무현황

영원무역홀딩스도 직간접적으로 협조하고 있다. 영원무역홀딩스는 2022년 주당 3050원이었던 주주 배당금을 2023년 3970원, 작년 5350원 등으로 매년 계속 크게 늘리고 있다. 그 덕에 지주사의 최대주주인 YMSA는 작년에만 지주사로부터 189억원을 배당금을 받았다. 이 배당금이 작년 YMSA가 올린 당기순이익 458억원(별도)에 크게 기여했음은 물론이다.

영원무역홀딩스의 연결 매출-당기순익이 모두 최근 3년간 계속 하강세인데도 주주 배당은 거꾸로 계속 늘리고 있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YMSA의 배당수익은 2022년 79억원이던 것이 23년에는 184억원으로, 증여가 있던 2023년부터 크게 뛰기 시작했다.

이렇게 늘어난 배당수익을 다시 주주들에게 배당으로 지급한다면 최대주주인 성 부회장이 가장 큰 수혜자가 될 수 밖에 없다. 배당금으로 회사에서 빌린 대여금도 쉽게 갚을 수 있다.

하지만 YMSA는 2023년 말 기준 2745억원의 이익잉여금이 쌓여있고 2023년부터 계속 이익을 많이 내는데도 적어도 23년 말까지는 배당을 했다는 기록이 없다. 이 회사는 과거 배당을 거의 하지 않다가 2019년 한꺼번에 80억원 배당을 하는 바람에 ‘일감몰아주기로 번 돈으로 오너일가 배당 잔치하느냐’는 호된 비판을 여러 언론 등에서 받은 적이 있다.

이 기억 때문에 조심조심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아직 작년 감사보고서가 나오지 않아 작년에 배당을 다시 전격 재개했는지는 알 수 없다.

YMSA와 영원무역그룹 계열사들간의 내부거래 공시

YMSA는 원래 아웃도어 의류 원재료 및 원단 수출입업체였다. 지금도 재료 또는 원단을 영원무역 해외 공장 등에 공급, 매출을 올리는 것으로 알려진다. 2023년 별도기준 매출 629억원 중 배당수익과 임대료 수익을 뺀 순수 매출은 427억원이었는데, 이중 97%에 달하는 416억원이 영원무역 본사와 해외 자회사들이 올려준 매출이었다.

이런 구조 때문에 과거 성기학 회장이 100% 대주주일 때부터도 이 회사에는 ‘일감몰아주기’나 ‘부당내부거래 의혹’ 등이 자주 따라 다녔다. 영원무역이 굳이 안거쳐도 될 유통단계를 하나 더 만들어 오너일가 기업의 매출과 이익을 밀어주는게 아니냐는 의혹이었다. 이른바 ‘터널링’ 또는 ‘회사기회유용’ 의혹이다. 작년에도 이런 구조는 크게 변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IB업계의 한 관계자는 “지주사는 배당으로 밀어주고 영원무역 본사와 해외 자회사들은 일감몰아주기로 YMSA를 각각 밀어주는 모양새인데, 만약 YMSA가 작년에 거액 배당이라고 했다면 진짜 일감몰아주기 혹은 사익편취 의혹이 제기될 수도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실제 영원무역은 2023년 10월 그룹 내 부당 내부거래 의혹과 관련해 공정거래위원회 조사를 받기도 했다. 그 해 10월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영원무역 사건의 공정위 신고 사실이 로펌에 유출됐다는 주장도 나와 주목을 받기도 했다. 아직까지 공정위는 조사 결과를 발표하지 않고 있다.

YMSA의 최대주주 변경 관련 공시

쌓아둔 사내유보(이익잉여금)가 많은 YMSA가 이럴 때 눈 질끈 감고 거액의 주주배당을 해버리면 성 부회장의 증여세 빚 상환 문제는 쉽게 해결될 수 있다. 하지만 이같은 여러 상황 때문에 배당 결정을 아직 못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에 적지 않은 재계 관계자들은 작년 성 부회장의 지주사 및 영원무역 연봉이 2022년보다 54%나 증가, 전체 재벌총수들 중 4위까지 껑충 뛴 것도 이와 관련된 게 아니냐는 시선을 감추지 않고 있다. 배당이 어렵다면 연봉이라도 확 올려 성 부회장 증여세 빚 갚기를 돕자는게 아니냐는 시각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그룹 전체 매출과 이익이 계속 떨어지는 상황 속에서 성 부회장 연봉만 파격적으로 크게 뛰었기 때문에 이런 추정도 나오는 것”이라며 “아무튼 중견그룹 회장 딸의 연봉이 내로라하는 대형 재벌총수들보다 많은 재계 4위까지 올랐다는 것은 여러모로 고개를 갸웃거리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최대주주 지분 증여에서 시작된 이 시나리오는 총수인 성 회장의 직간접 지원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총수의 지휘 아래 지주사와 주력기업이 모두 둘째 딸의 대관식을 적극 돕고 있는 형국이다. 딸은 자기 돈 거의 안들이고 한 중견그룹의 최대주주 지위까지 거의 물려받고 있다. 누가 봐도 전형적인 ‘아빠찬스’라 아니할 수 없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