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빈 롯데 회장
[편집자주] 기업오너가 자기 연봉과 배당을 얼마씩 책정하는가는 자유이고, 합법, 불법의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그 정도가 너무 심하면 거센 사회적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기업은 죽 쑤는데 자기 연봉과 배당은 경쟁기업들에 비해 누가봐도 지나치게 과다한 경우 등이다. 과거에 비하면 이제 많이 사라졌다지만 최근 공시되고 있는 기업들의 작년 재무제표들을 보면 아직도 문제 투성이들이 적지 않다. 특히 심해 보이는 경우들을 시리즈로 차례로 짚어본다.
더트래커 = 이태희 기자
불과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재벌 회장들은 수많은 계열사들에 회장-사장 직을 걸쳐 놓고, 또 지주사 외의 다른 계열사 지분을 갖고 있던 경우가 많았다.
1년에 몇 차례 가보지도 못하면서 직함만 얹어놓은 계열사들에서 수십-수백억원씩의 연봉을 챙기는 건 물론 법인카드 등 다른 많은 혜택들도 모조리 찾아 먹었다. 등기이사로 등재해 놓고도 이사회에는 드문드문 얼굴만 보였다. 지분을 갖고 있던 많은 계열사들로부터는 배당금을 꼬박꼬박 챙겼다.
‘지나치게 탐욕적’이라는 비판이 거세지면서, 그리고 주요 대그룹마다 지주회사 체제가 속속 들어서면서 이같은 현상들은 이제 많이 사라졌다. 아직 중견-중소그룹들에선 적지않게 남아 있지만 적어도 10대-20대 그룹 정도면 이제 거의 사라졌다고 볼 수 있다.
재계 랭킹 1위 삼성의 이재용 회장부터가 지주사 격이자 자신이 최대주주인 삼성물산에 어떤 직책도 없다. 최대 주력기업인 삼성전자의 미등기 회장 직만 맡고 있다. 미등기란 이유로 삼성전자 등 어느 계열사에서도 연봉도 받지 않는다. 대신 자신이 지분을 갖고있는 삼성전자 등 6개 계열사들로부터 작년에 3466억원에 달하는 거액 배당금만 받았다.
연봉 대신 이처럼 장사가 잘되는 계열사들로부터 배당을 최대한 챙기는 것이 요즘 재벌 총수들의 추세이기도 하다. 배당보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연봉을 이곳 저곳서 무리하게 챙기다 자칫 여론의 호된 비판이나 잡음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현대차 정의선 회장은 작년 현대차와 현대모비스 2개사에서만 115억원의 연봉을 받은 반면 배당은 모두 8개사로부터 1755억원을 챙겼다. SK 최태원 회장도 지주사 SK와 SK하이닉스로부터 합계 60억원의 연봉을 받은 반면 배당은 모두 4개사에서 910억원을 수령했다.
LG 구광모 회장은 연봉-배당 구조가 대그룹들 중 가장 심플하다. 작년 보수는 회장 직함이 유일하게 있는 지주사 LG 한곳에서만 81.77억원을, 또 배당은 LG와 LG씨엔에스 두 곳에서 794억원을 각각 받았다.
지주사가 있는 대그룹들일수록 요즘 이렇게 총수의 수입 구조가 점점 더 심플해지고 있다. 이것이 또 지주사 체제에 합당한 총수 처우법이라고도 볼 수 있다.
24년 말 기준 신동빈 롯데지주 대표이사 회장의 타 계열사 대표이사 겸직 현황
반면 재계 5위 롯데그룹은 아직 이와 전혀 다른 모습이다.
롯데 신동빈 회장은 현재 준 지주사인 롯데지주의 상근 대표이사 회장인 것은 물론 롯데쇼핑, 롯데케미칼, 롯데칠성음료, 롯데웰푸드 등 5개사의 상근 대표이사 회장이다. 롯데쇼핑에선 작년 말 까지 미등기 상근 회장이었으나 올해 정기 주총 후부터는 사내(등기)이사로 바뀌었다.
롯데그룹 주력 5사에서 모두 상근 대표이사 회장에 올랐다. 물론 이들 5사엔 신 회장 외에도 전문경영인 대표이사가 대부분 또 따로 있다.
신 회장은 비상장사이지만 역시 롯데 주력기업들로 볼 수 있는 호텔롯데와 롯데물산에서도 현재 미등기 회장이다. 2022년까지는 캐논코리아와 에프알엘코리아에서도 각각 사내이사 및 기타비상무이사였으나 그 후 관련 공시나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 이 두 보직은 그만 둔 것으로 추정되나 확인되지는 않는다.
호텔롯데 미등기 회장직에도 등재돼 있는 신동빈 회장
현재 신 회장은 공시로 확인된 것만 최소 롯데 주력기업 7곳의 회장이라는 얘기다. 신 회장은 7곳 모두에서 작년 보수 216.5억원을 받았다. 이 연봉은 작년 효성그룹 분할로 퇴직금 및 특별공로금을 많이 받아 작년 보수 323.8억원을 기록한 조현상 HS효성 부회장을 제외하면 재벌총수들 중 사실상 1위다.
롯데그룹은 잘 알려져있다시피 그룹의 양대 주력 업종인 화학과 유통이 모두 부진, 작년 역대 최악의 성적표를 올렸다. 과거 그룹 최대의 캐시카우였던 롯데케미칼은 작년 무려 1조8256억원에 달하는 당기순손실을 냈다. 롯데쇼핑도 1조원에 거의 육박한 9941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롯데칠성음료와 롯데웰푸드 정도만 그런대로 제 실적을 유지했을 뿐 롯데지주와 롯데물산, 호텔롯데 등도 모두 적자였다. 그런데도 이 7곳서 신 회장이 작년에 받은 보수는 2023년 212.8억원에서 작년 216.5억원으로 오히려 약간 더 늘었다.
롯데케미칼의 경우 전문경영인인 이영준 대표이사 사장의 작년 연봉이 6.82억원인 반면 신동빈 대표이사 회장 연봉은 그 5배가 넘는 38억원이었다. 회사는 조단위 적자를 냈는데도 신 회장 연봉은 전년보다 3천만원 밖에 줄지 않았다. 신 회장의 작년 롯데쇼핑 연봉은 23년 19억원에서 19.64억원으로 오히려 약간 더 증가했다.
2024년 롯데케미칼이 5억원이상 연봉자 명단
신 회장이 작년에 받은 배당이 적은 것도 아니다. 신 회장은 작년 말 기준 롯데지주 등 9개 계열사에 지분을 갖고 있는데, 이 중 6곳에서 모두 607억원의 배당을 받았다. 많은 계열사들의 실적 부진으로 전년(648억원)보다 약간 줄어든 것이기는 하지만 전체 재벌총수들 중에선 8위여서 작년 롯데그룹 실적에 비하면 결코 적은 배당이 아니다.
작년 연봉 216.5억원과 배당 607억원은 2년 전인 2022년의 149.8억원, 235억원에 비하면 크게 늘어난 규모다. 그룹 실적은 곤두박칠치고 있는데 총수 연봉과 배당만은 2년 사이에 오히려 급증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신 회장이 5곳(작년 말까지는 4곳)에서 상근 대표이사 회장을 맡다보니 일부 회사 이사회 출석률은 낮을 수 밖에 없었다. 작년 신 회장의 롯데지주 이사회 출석률은 90%였지만 롯데칠성음료 이사회 출석률은 67%에 그쳤다.
신 회장은 오래 전부터 과다 겸직으로 유명했다. 지난 2019년까지만 해도 9개 계열사 등기임원이었다. 그때에 비하면 겸직 보직수가 2개 정도 줄어든 것이기는 하다. 하지만 현재의 7개도 다른 대그룹들에 비하면 정도 이상으로 많은 것이다. 올해부터는 대표이사 회장 자리를 오히려 한 개 더 늘렸다.
롯데케미칼의 24년 연결손익계산서
물론 신 회장의 이같은 과다 등기임원 겸직은 등기 임원 자리를 전혀 맡지 않고 미등기 회장 직에 고액 연봉만 고수하는 다른 총수들에 비하면 그래도 낫다는 평가도 없지는 않다. 미등기 임원은 권한만 행사하고 법적 인 책임은 회피할 가능성이 높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삼성 이재용 회장을 비롯, 한화-신세계-CJ-한국앤컴퍼니-미래에셋그룹 총수들이 현재 모두 등기임원은 한곳도 맡지 않는 미등기 회장들이다. 삼성 이 회장은 그래도 미등기란 이유로 연봉을 전혀 받지 않지만 다른 많은 총수들은 미등기인데도 과다한 연봉까지 챙긴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가 올해 초 자산 5조원 이상인 대기업 집단 총수들의 등기 임원 여부를 조사한 결과를 보면, 작년 총수 78명 중 21명(26.9%)은 등기 임원을 맡지 않았다. 미등기 임원인 총수 비율이 2023년(35.1%)에 비교해 약간 낮아졌으나, 여전히 총수 4명 중 1명 이상은 등기 임원이 아닌 셈이다.
그러나 당당히 등기임원 신분으로 회장이나 대표이사를 맡더라도 그것이 너무 과다한 겸직이라면 또 문제가 적지 않다. 한 사람이 효율적으로 맡을 수 있는 자리 수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