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그룹 이재현 회장

[편집자주] 기업오너가 자기 연봉과 배당을 얼마씩 책정하는가는 자유이고, 합법, 불법의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그 정도가 너무 심하면 거센 사회적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기업은 죽 쑤는데 자기 연봉과 배당은 경쟁기업들에 비해 누가봐도 지나치게 과다한 경우 등이다. 과거에 비하면 이제 많이 사라졌다지만 최근 공시되고 있는 기업들의 작년 재무제표들을 보면 아직도 문제 투성이들이 적지 않다. 특히 심해 보이는 경우들을 시리즈로 차례로 짚어본다.

더트래커 = 이태희 기자

삼성전자의 이재용 회장이나 같은 범 삼성가인 CJ의 이재현 회장과 신세계 정용진 회장, 그리고 한화 김승연 회장 같은 총수들은 오래 전부터 이사회 정식 멤버인 등기 회장이 아니라 모두 미등기 회장들이다. 재벌총수 4명 중 1명 이상은 여전히 미등기 회장들이라는 최근 통계도 있다.

이렇게 아직도 미등기 회장들이 많은 이유는 여럿 있다. 법원 유죄 확정으로 일정 기간 대표이사나 등기이사를 맡을 수 없는 이유도 있지만 사면복권으로 등기이사 복귀가 가능한데도 복귀를 않고 있는 회장들도 적지 않다.

외관상 별 이유가 없어 보이는데도 그냥 미등기만 고집하는 회장들도 많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정식 등기이사나 대표이사가 되면 부담해야만 하는 각종 법적 책임들이 가장 큰 이유들 중 하나로 알려진다.

법적 책임은 거의 지지 않고, 뒤에서 전권은 모조리 휘두르면서, 연봉이나 법인카드, 배당 등 혜택이란 혜택은 다 누릴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꿀 보직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이 때문에 미등기 총수들 중에서도 특히 고연봉 등 과다한 혜택까지 악착같이 챙기는 총수들에 대해선 과거부터 당연히 비판이 거셀 수 밖에 없었다.

이런 비판을 떠나 상식선에서 대응한다면, 총수 자기 연봉은 없애거나 줄이고 자기 대신 법적 책임을 다 지고 고생하는 전문경영인들 연봉을 더 올려주면 된다. 총수 자신은 연봉 대신 상대적으로 액수가 큰 배당으로 필요 수입을 확보하면 된다.

이런 케이스에 해당하는 총수가 바로 삼성 이재용 회장이다. 이재용 회장은 여러 사법리스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미등기 회장 직을 맡았음에도 불구, 2017년부터 아예 주요 계열사들에서 보수(연봉)를 전혀 받지 않고 있다. 거액 배당만 수령한다.

대주주로서 배당만 합법적으로 많이 챙기면 되지 배당에 비해 규모도 작은 연봉을 무리하게 챙기려다 굳이 잡음이나 논란을 야기할 필요가 있느냐는 생각에서였을 것이다.

지주사 CJ에서 작년 이재현 회장이 받은 연봉과 그 이유 설명

반면 이재용 회장보다 8살 위 사촌 형인 CJ 이재현 회장은 이와 아주 대조적인 모습을 고수하고 있는 총수들 중 한 사람이다.

우선 오래 전 사면복권됐는데도 여전히 등기이사로 복귀하지 않고 있다. 또 오래 전부터 그룹규모에 비해 과다해 보이는 높은 연봉을 계속 받고 있다. 이에 대한 비판 등에 아랑곳 하지 않는다는 모습도 계속 보여주고 있다.

미등기 회장 보직도 지주사나 한 두개 주력사에만 있는게 아니다. 지주사 CJ 뿐아니라 주요 계열사들인 CJ제일제당, CJ ENM, CJ대한통운, CJ CGV 등에 모두 미등기의 상근 또는 비상근 회장 직을 걸쳐 놓고 있다.

그 해 계열사 실적에 따라 실적이 상대적으로 좋은 몇군데에서 그룹 규모에 비해 다소 과다해 보이는 연봉을 합쳐서 받고 있다. 합산 연봉은 단연 재계 최상위급이다.

작년의 경우 이재현 회장은 자신의 보직이 있는 계열사들 중 2곳에서 모두 193.74억원의 보수를 받았다. 지주사 CJ에서 156.25억원, 최대 주력기업인 제일제당에서 37.49억원씩이다. CJ ENM 등 다른 3개 상장 계열사들에선 5억원 이상 연봉 수령자 명단에 이 회장 이름이 없다.

이들 3사에서 5억원 미만 연봉을 또 받았거나 연봉을 공개하지 않는 비상장사들에서 받은 연봉들이 있다면 전체 연봉액수는 더 올라갈 수 있다. 공시로 확인된 연봉만 이 정도라는 뜻이다.

이 회장의 작년 합산 연봉은 전체 재계 총수들 중 HS효성 조현상 부회장(323.8억원), 신동빈 롯데회장(216.5억원)에 이어 3위다. 조 부회장 연봉에 그룹 분할로 생긴 퇴직금과 특별공로금 등이 포함된 것임을 감안하면 사실상 2위다. 참고로 CJ그룹의 자산 기준 재계 서열은 작년 13위 정도였다. 그룹 규모에 비해 확실히 과한 연봉이 작년에도 계속된 셈이다.

확인된 공시 기준 이재현 회장 연봉은 2년 전인 2022년에만 해도 221.36억원에 달했다. 그 해 CJ에서 106억원, 제일제당에서 73억원, CJ ENM에서 41.98억원을 각각 받았다.

하지만 2023년에는 CJ 41.73억원, 제일제당 36.4억원, CJ ENM 21.23억원 등 합산 99.36억원으로 갑자기 확 줄었다. 특히 지주사 CJ에서 상여금을 안받은 것이 결정적이었다. 그해 그룹 영업실적이 극히 좋지 않은 점을 반영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다가 작년에 연봉이 2배 가까이 다시 급증한 것이다. 실적이 계속 시원치 않는 CJ ENM은 작년에 아예 빼고 지주사와 제일제당에서만 받되 특히 지주사 연봉을 41.73억원에서 156.25억원으로 크게 올린 것이 결정적이었다. 2023년에는 지주사 상여금을 안받았는데, 작년에는 상여를 112억원이나 받은 것이 결정적 요인이었다.

지주사 CJ의 연결 손익계산서

이 회장에게 작년 지주사가 다시 상여금을 많이 준 이유에 대해 CJ 사업보고서는 “단기 경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이 회장이) 리더십을 발휘했다는 점, 회사의 핵심역량을 구축한 점 등을 고려해 단기 인센티브 45.85억원을 지급했다”고 설명했다.

또 “장기 경영 목표 달성을 위해 리더십을 발휘했다는 점과 회사의 사업 경쟁력 확보 등을 고려해 장기 인센티브 66.58억원을 책정했다”고도 밝혔다. 지주사 실적은 그룹 계열사 전체 성적이라고 볼 수 있다. 이 회장이 작년에 리더십을 발휘해 그룹을 잘 이끌고 장단기 경영성과도 잘 냈기 때문에 주는 상여금이라는 설명이다.

이중 리더십 부문은 내부 실상을 알기 어렵기 때문에 밖에서 왈가불가하긴 어렵다. 하지만 작년 CJ그룹 영업실적을 보면 이런 상여금 설명이 과연 맞는지 고개를 갸웃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들이 적지 않다.

우선 그룹 전체 실적 요약이랄 수 있는 지주사 CJ의 연결기준 매출은 2023년 41.35조원에서 작년 43.64조원,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2.04조원에서 2.55조원으로 확실히 늘었다. 반면 같은 기간 당기순익은 5247억원 흑자에서 1512억원 흑자로, 흑자 규모가 현저하게 줄었다.

무엇보다도 각종 차입금 이자 및 외환차손 급증 등으로 금융비용이 2023년 1.49조원에서 작년 1.93조원으로 크게 늘어난데다 각종 손상차손 등으로 기타비용도 같은 기간 0.79조원에서 1.25조원으로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영업이익이 다소 늘었다지만 그래도 장사를 잘했다고는 보기 어렵다.

제일제당, CJ ENM 등도 다른 계열사들도 대부분 비슷하다. 모두 죽을 쒔다고는 하긴 어렵지만 그렇다고 총수가 대규모 상여금을 다시 받을 정도로 실적이 크게 호전됐다고 보기도 어렵다는 얘기다.

이재현 회장은 작년 자기 지분이 있는 계열사들로부터 모두 373억원의 배당도 챙겼다. 2023년 372억원과 거의 비슷한 규모다. 재계 총수들 중 작년 배당금 규모가 13위 정도로, CJ그룹 서열과 비슷하다. 배당은 그룹 규모에 비해 과다하다고 보긴 어렵지만 연봉은 확실히 많이 챙겼다고 볼 수 있다.

IB업계의 한 관계자는 “시민단체 등의 비판 때문인지 재작년 연봉을 확 줄였던 이 회장이 작년 연봉을 다시 확 늘린 것은 그룹 실적 반영이라기보다 자신의 개인자금 필요성 때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DB그룹 김준기 창업회장(왼쪽)과 김남호 그룹회장 부자

재계 자산 순위 35위 정도인 DB그룹 총수 일가도 CJ 이재현 회장과 비슷한 측면들이 많다. 대부분 계열사들에서 미등기로 있으면서 보수와 배당을 그룹 규모에 비해 눈에 띄게 많이 챙기고 있기 떄문이다.

아버지 김준기 창업 회장과 아들 김남호 그룹 회장, 딸 김주원 부회장 모두 사업형 지주사인 DB아이앤씨와 주력 상장기업 DB하이텍에 나란히 보직과 지분을 갖고 있다. 김남호 회장의 지주사 보직만 상근 등기회장일 뿐 나머지 보직들은 모두 미등기 상근 창업회장 아니면, 회장-부회장들이다.

이들 계열사들에서 작년에 받은 연봉은 김준기 43억원, 김남호 40억원, 김주원 13억원 등 합쳐 96억원에 이른다. 재계 10위 급이다. 계열사들로부터 받은 배당 합계는 김준기 315억원, 김남호 436억원, 김주원 154억원 수준이다. 세 사람 배당을 모두 합치면 905억원으로, 재계 5위급인 최태원 SK 회장(910억원)과 맞먹는다.

DB하이텍에서 총수일가 3인과 전문경영인사장 연봉 비교

작년에 계열사들 실적이 엄청 양호해서 그런 것도 아닌 것 같다. 그룹 주력 금융계열사인 DB손해보험과 DB금융투자는 작년에 실적이 좋았다. 반면 반도체기업인 DB하이텍은 최근 수년간 매출과 영업이익, 당기순익 모두 현저한 감소세를 지속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전문경영인인 조기석 DB하이텍 대표이사 사장은 작년 5.51억원의 연봉에 만족해야했지만 김준기-김남호 부자는 작년 이 회사에서 각각 34.5억원, 24.6억원씩의 연봉을 받았다. 딸 김주원 부회장도 5.41억원을 받았다.

고생을 도맡아 한 전문경영인에게는 박하면서 총수일가 세 사람은 실적도 하락세인 회사에서 무더기 고액연봉을 받아간 것이다. DB하이텍 케이스는 올들어서도 시민단체 등이 계속 문제삼고 있다.

배당은 실적이 좋았던 DB손보에서 배당을 크게 늘리면서 특히 많이 받아갔다. 지분 9%가 있는 김남호 회장의 DB손보 배당금 수령액은 2023년 338억원에서 작년 434억원, 김준기 창업회장(지분율 5.94%)은 같은 기간 223억원에서 286억원, 김주원 부회장(3.15%)은 같은 기간 118억원에서 152억원으로 각각 크게 늘었다.

<시리즈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