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래은 영원무역그룹 부회장
[편집자주] 기업오너가 자기 연봉과 배당을 얼마씩 책정하는가는 자유이고, 합법- 불법의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그 정도가 너무 심하면 거센 사회적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기업은 죽 쑤는데 자기 연봉과 배당은 경쟁기업들에 비해 누가봐도 지나치게 과다한 경우 등이다. 과거에 비하면 이제 많이 사라졌다지만 최근 공시되고 있는 기업들의 작년 재무제표들을 보면 아직도 문제 투성이 사례들이 적지 않다. 특히 심해 보이는 경우들을 시리즈로 차례로 짚어본다.
더트래커 = 이태희 기자
지난해 그룹 전 계열사 사업보고서나 감사보고서에 공시된 보수를 모두 합했을 때 국내 재벌 총수 일가들 중 가장 많은 연봉을 받은 사람은 HS효성의 조현상 부회장이었다. 모두 323.8억원에 이른다.
작년 중 효성그룹은 효성과 HS효성으로 그룹이 사실상 분할되었는데, 이때 조 부회장이 효성에서 받은 퇴직금 171.92억원과 특별공로금 85억원, 그리고 자신이 총수가 된 HS효성에서 받은 작년 연봉 43.9억원을 모두 합한 금액이다.
조 부회장의 친 형인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은 작년 그룹 전 계열사로부터 모두 91.83억원의 보수를 받았다. 조 부회장의 작년 보수가 그룹 규모에 비해 과다한 것이긴 하지만 그룹 분할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감안하면 일견 이해되는 대목들도 있다.
조 회장 다음으로 작년 보수를 많이 받은 회장 또는 총수들을 보면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216.5억원), 이재현 CJ 회장(193.7억원), 성래은 영원무역그룹 부회장(최대 156억원), 김승연 한화 회장(139.8억원), 김동관 한화 부회장(117억원), 정의선 현대차 회장(115억원), 조현범 한국타이어 회장(104.3억원), 조원태 한진 회장(102억원) 등이 모두 연봉 100억원을 넘었다.
그 다음 연봉 50억원을 넘은 회장들은 조현준 효성 회장(91.83억원). 박문덕 하이트진로 회장 (82억원), 구광모 LG 회장(81.77억원), 구자균 LS일렉트릭 회장(71.4억원), 구자은 LS그룹 회장(70.31억원),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63.93억원), 송치형 두나무 의장(62억원), 최태원 SK 회장(60억원), 허태수 GS회장(59억원) 등이다.
2024년 총수일가 고액 보수 수령자 현황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여러 이유로 등기에서 미등기 이사로 바꾼 후 2017년부터 삼성전자를 비롯한 모든 삼성 계열사들로부터 보수를 전혀 받지 않고 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법적 책임을 지지 않는 미등기 회장인 점을 감안했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로 보인다.
대신 이재용 회장이 삼성전자 등 삼성 계열사들로부터 작년에 받은 배당금 합계는 무려 3466억원으로, 단연 재계 1위였다. 이 점도 보수 0의 이유 중 하나로 추정된다.
이 회장 다음으로 작년 배당을 많이 받은 회장들은 정몽구 현대차 명예회장(1893억원), 정의선 현대차 회장(1755억원), 송치형 두나무 의장(1042억원), 최태원 SK 회장(910억원), 구광모 LG 회장(794억원), 정몽준 HD현대 최대주주(756억원), 신동빈 롯데 회장(609.6억원), 조현범 한국타이어 회장(591억원), 김형년 두나무 부회장(535억원) 등이다. 모두 500억원을 넘었다.
작년부터 국내 가상화폐시장이 다시 불붙으면서 국내 1위 가상화폐거래소 업비트 운영 기업인 두나무의 창업자 두 사람이 나란히 배당규모 4위, 10위에 오른 점이 우선 눈길을 끈다.
두나무의 작년 연결기준 매출(영업수익)은 1조7316억원으로, 전년 1조154억원에 비해 71%나 급증했다. 영업이익도 2023년 6409억원에서 작년에는 1조1863억원으로 무려 3배 가까이 크게 늘었다. 업비트 창업 대주주들부터 돈다발 세례를 다시 받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고액 배당 수령자 현황
작년 거액 보수를 받은 재벌 오너 일가 중 가장 눈길을 끄는 인물은 성기학 영원무역그룹 창업자 회장(78)의 둘째 딸인 성래은 영원무역그룹 부회장(47)이다.
성 부회장은 작년 그룹 지주사인 영원무역홀딩스에서 63.25억원, 세계적인 아웃도어 OEM제조업체인 그룹 주력기업 영원무역에서 62.75억원씩의 보수를 각각 받았다. 또 본인이 지분율
50.10%로 최대주주인 YMSA란 작은 기업의 대표이사도 맡고 있어 여기서도 일정 보수를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회사는 비상장이라 대표이사 연봉을 공시하지 않는다. 아직 작년 감사보고서도 내놓지 않고 있다. 2023년 감사보고서를 참조하면 그해 경영진급여 합계는 30억원이었다. 임직원수가 모두 15명에 불과한 회사라, 경영진은 성래은 대표 혼자일 가능성이 높다.
이게 맞다면 23년 성 대표 연봉은 30억원이고, 작년에도 적어도 이 정도 연봉은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회사에서 받은 작년 연봉이 최대 30억원이라고 가정(물론 그보다 적을 수 있다)할 때 위 3개사에서 받은 연봉합계가 최대 156억원이라는 얘기다.
이같은 연봉 규모는 작년 재벌 총수 연봉 4위 급이다. 아웃도어 브랜드 노스페이스 등으로 유명한 영원무역그룹의 작년 공정위 산정 자산총액은 6조890억원으로, 자산기준 재계 서열 73위 정도다. 이 정도 그룹의 최대주주 회장도 아닌 회장 딸 부회장이 연봉랭킹 4위에 깜짝 오른 것이다.
2024년 영원무역의 5억원이상 연봉수령자 명단
작년 보수가 크게 높았던 점 뿐 아니라 전년대비 보수가 크게 늘어난 점도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성 부회장의 영원무역홀딩스 연봉은 2023년 40.35억원에서 작년 63.25억원, 같은 기간 영원무역에서도 41.7억원에서 62.75억원으로 각각 크게 올랐다. 두 회사 연봉 합계 증가율은 53.7%에 달한다.
지주사 영원무역홀딩스에서 성 부회장의 직함은 상근 대표이사 부회장, 영원무역에서는 대표이사가 아닌 상근 부회장(등기)이다. 영원무역에서는 아버지 성기학 회장이 대표이사 회장이다.
성기학 회장은 영원무역홀딩스에선 직함이나 보수가 없고, 영원무역에선 상근 대표이사 회장 자격으로 작년 27.25억원의 연봉을 받았다. 23년 19.85억원에 비해 37% 정도 늘어난 수준이다. 실제 그룹에서의 역할은 아버지가 아직도 더 많은 것으로 보이는데, 두 회사 연봉 합계는 딸이 훨씬 많고 증가율도 훨씬 높다.
전문경영인들과 비교해도 납득이 안가는 부분들이 많다. 영원무역홀딩스 전문경영인 최고 자리랄 수 있는 김주원 전무의 연봉은 2023년 5.84억원, 작년 7.58억원에 각각 그쳤다. 영원무역 이민석 사장의 작년 연봉도 5.85억원였다. 이 사장 연봉은 성 부회장의 9.3%에 불과했다.
장부상으로나 밖에서는 알기 어려운 성 부회장의 뛰어난 공적이 작년에 진짜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작년 그룹 실적이 크게 좋아졌고, 여기에 성 부회장이 크게 기여한 것일까?
영원무역이 성 부회장에게 고액 보수를 준 이유 설명 공시
영원무역 작년 사업보고서는 성 부회장의 작년 급여와 상여금을 크게 올린 이유로 “글로벌 경제 불확실성과 주요 생산 국가인 방글라데시의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급격한 인건비/원가 증가에도 불구하고 OEM 사업부가 매출 성장 및 20% 수준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함으로써 당사가 연초 계획했던 연간 목표 및 중장기 목표를 달성한 점을 고려했다”고 설명한다.
또 “그룹 부회장으로서의 리더쉽을 발휘, 체계적인 경영관리를 기반으로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OEM 경쟁력을 유지한 점과 신규고객 유치, 자동화 및 데이터 기반 시스템 도입을 통한 생산 효율성 개선, 친환경 사업확대를 통한 미래성장동력 확보와 연결 자회사인 SCOTT 관련 중재 진행 및 경영 정상화를 위한 노력 등 여러 평가 기준을 종합 고려했다”고 밝혔다.
창업자 성기학 회장은 오래 전부터 세 딸(아들은 없음) 모두를 경영에 참여하도록 해 경쟁을 시켰고, 그 중 가장 능력이나 실적이 돋보인 둘째 딸을 사실상 후계자로 지정, 중요한 지분들도 거의 넘겨주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그만큼 성 부회장의 경영능력은 인정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위의 작년 실적들은 성 부회장 혼자 힘으로 올린 것은 아닐 것이다. 전문경영인들이나 해외 공장 현지 책임자들의 분투가 더 기여했을 가능성이 크다. 또 OEM 사업부는 작년에 계속 성장했을지 몰라도 영원무역 전체 영업실적을 보면 작년에 성장이라기보다 오히려 내리막길이었다.
영원무역 연결 손익계산서
영원무역의 전세계 사업장들을 모두 합친 연결기준 매출은 2022년 3조9109억원에서 23년 3조6044억원, 작년 3조5178억원 등으로 계속 하락세다. 전 매출의 68%를 차지하는 OEM(주문자상표부착) 사업부 작년 매출도 2023년보다는 늘었지만 아직 2022년 수준은 회복하지 못했다.
영업이익도 2022년 8230억원에서 23년 6371억원, 작년 3156억원 순이고, 같은 기간 당기순익도 7432억원, 5331억원, 2945억원씩으로, 매출 감소폭보다 감소 속도가 더 가파르다.
영원무역 뿐아니라 노스페이스 등의 국내판매를 담당하는 영원아웃도어와 스위스제 자전거 판매사인 스캇노스아시아 실적까지 모두 포함된 영원무역홀딩스 연결 영업실적도 비슷한 흐름이다. 매출-영업이익-당기순익 모두가 하락세가 뚜렷하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영원무역 주력 공장들이 있는 방글라데시와 베트남 등의 인건비 등 원가가 크게 올라 영원무역도 고전 중이고, 그래서 인건비 등이 더 유리한 인도 진출 등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작년 성 부회장의 공적들만으로는 이렇게 성 부회장만 연봉을 크게 올려준 이유가 되기 어렵다는 점을 금방 알 수 있게 해주는 대목들이다. 그렇다면 다른 중요한 이유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