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트래커 = 이태희 기자
관심을 모았던 전국법관회의가 26일 열리긴 했으나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대선 이후 다시 열기로 했다.
전국법관대표회의는 이날 오전 10시 경기 고양시 사법연수원에서 2시간 가량 임시회의를 열었으나 결론 채택없이 회의를 속행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날 임시회의에는 법관대표 전체 126명 가운데 90명 안팎이 온·오프라인으로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관대표회의 관계자는 이날 정오를 넘어 임시회의를 마치고 기자들과 만나 "오늘 임시회의는 종료하고 회의를 속행하기로 했다"며 “구체적인 날짜는 구성원들의 의견을 수렴해 대선 이후로 지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 "속행될 회의에서 상정된 안건에 대해 보충 토론을 하고 의결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회의에선 의장인 김예영 서울남부지법 부장판사가 제안한 안건 2건에 대해 논의했다. 공정한 재판과 사법부의 신뢰, 재판 독립 침해 우려 등에 관해 법관대표회의 명의로 공개적으로 입장을 밝힐지에 관한 내용이었다.
이재명 후보 사건 대법원 재판과 관련해 채택된 것으로 보이는 ‘공정한 재판과 사법부 신뢰’ 항목과 관련해서는 "특정 사건의 이례적 절차 진행으로 사법 독립의 바탕이 되는 사법에 대한 신뢰가 흔들린 것을 심각하게 인식한다"라는 문구를 채택할 것인가가 논의 대상이었다.
또 민주당 등의 사법부 압박과 관련된 ‘재판 독립 침해’문제와 관련해서는 "재판독립을 침해할 가능성에 대해 깊이 우려한다"는 문구가 포함됐다.
이들 2개 안건 말고도 현장에서 5건의 안건이 추가 상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전국법관회의 내규는 회의 현장에서 구성원 9인의 동의를 얻어 추가로 안건을 상정하거나, 수정안을 발의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이날 법관대표회의에서는 상정된 7개 안건에 대해 표결을 곧바로 진행하자는 주장과 다음 회의에 넘겨 더 논의하자는 주장이 엇갈렸으며 결국 속행 여부를 묻는 표결을 진행, 재석 90명 중 54명이 찬성(반대 34명)해 회의 속행으로 결론을 내렸다.
대선 전에 이재명 후보 대법원 판결에 관한 법관대표회의 명의의 비판성 발표 같은 것을 받아 내려던 일부 법관대표들의 시도가 반대에 부딪혀 이날 결론을 못낸 것으로 추정된다.
전국 판사가 모이는 법관대표회의가 결론을 내리지 않고 추후 다시 모여 회의를 속행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법관대표회의 관계자는 "이번 대선에서 사법개혁이 의제가 되면서 법원 안팎에서 대표회의에서 의결로 입장을 표명하는 게 선거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속행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이 많이 나와 속행하게 되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한편 더불어민주당은 26일 소속 의원들이 추진해 온 ‘비(非)법조인의 대법관 임명법’과 ‘대법관 100명 확대법’ 등의 법안을 발의한 의원들에게 해당 법안의 철회를 지시했다.
민주당 선대위 공보단은 이날 기자들에게 보낸 공지에서 해당 법안을 제출한 박범계 의원과 장경태 의원에게 철회를 지시했다고 밝혔다.
대선을 일주일 가량 앞두고 나오는 최근 일부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후보의 중도층 지지율이 다소 빠지는 원인 중 하나가 민주당의 과도한 사법부 압박이라는 지적이 나오면서 취해진 조치로 알려진다.
이재명 후보는 이와 관련, 이날 “선대위에서 결정한 것이지 내가 지시한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지금은 그런거 논의할 때가 아니라고 (당에) 얘기했다. 민생개혁, 민생대책이 가장 급선무”라고 말했다.
이 후보는 이날 수원 아주대학교를 방문한 자리에서 기자들을 만나 "대법관 증원 문제나 대법관 자격 문제는 당에서 공식 논의한 바가 없다. 민주당 소속 의원 개인이 헌법기관의 일원으로서, 개인적으로 한 것일 뿐 당의 입장과 관계가 없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이에 대해 "(민주당이) 당장은 철회했지만 선거가 끝나면 또 다시 무슨 음모를 꾸밀지 모른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최영해 중앙선대위 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이재명 방탄대법원, 이재명 범죄세탁소대법원을 만들려는 저열한 음모가 드러나자 당장 소나기는 피하고 보자는 꼼수에 지나지 않는다"면서 이같이 주장했다.
최 대변인은 "중도층의 민심이 악화되니까 서둘러 꼬리 자르기에 나선 것 아니냐"며 "민주당은 이재명 후보의 한마디면 뭐든지 바꾸기도 하고 없던 것도 만들어내는 정당이다. 당장 표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니까 한 발짝 물러선 전술적 후퇴에 불과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