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크래커 = 박지훈 기자
대선을 앞두고 사법부 독립성에 대한 우려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최근 대법원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직후, 정치권의 사법부 압박이 본격화되자 판사들이 집단행동에 나섰다.
전국법관대표회의는 오는 26일 임시회의를 열어 ‘재판의 독립’과 ‘사법 신뢰’에 대한 안건을 논의할 예정이다. 당초 이재명 후보 사건 자체가 회의 안건으로 거론됐지만, 정치적 논쟁을 피하기 위해 제외됐다. 그러나 그 사건이 ‘방아쇠’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사법부 내부의 위기의식은 분명하다.
사건의 출발점은 지난달 대법원의 파기환송 판결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 후보가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기소된 사건에서 무죄를 선고한 항소심 판결을 깨고 다시 판단하라고 결정했다. 그러자 더불어민주당은 즉각 반발하며, 대법원장을 겨냥한 특검 도입, 재판 절차를 헌법소원 대상에 포함시키는 법 개정, 법관 증원 등 전방위 압박에 나섰다. 당 차원의 ‘사법개혁’ 움직임이었다.
이에 사법부 내부에서도 파장이 일었다. 재판의 독립성이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다는 문제의식이 법관들 사이에서 퍼졌다. 일부 판사들이 법관회의 소집을 요청했지만 처음엔 정족수에 미달했다. 그러자 회의 집행부는 투표 기간을 하루 연장했고, 겨우 정족수를 채우며 회의 개최가 확정됐다. 사법부 내부에서조차 회의 소집 여부를 두고 의견이 갈렸던 셈이다. 그러나 그만큼 조심스럽게 논의의 필요성을 절감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이번 임시회의에서 논의될 안건은 두 가지다. 하나는 재판 독립의 보장과 사법의 책임성 확립이고, 다른 하나는 개별 판결을 겨냥한 입법 시도와 법관 탄핵 등 정치권 압박에 대한 구조적 대응이다. 특히 후자의 경우, 최근 민주당이 추진하는 형사소송법 개정과 대법원장에 대한 특검법 등 구체적인 법안들이 배경에 깔려 있다.
서울 서초동 대법원 전경. 사진=카카오맵 로드뷰
경제 관점에서 이 상황은 단순한 ‘법조계의 해프닝’으로 보기 어렵다. 법적 안정성과 사법 독립성은 시장 규칙의 기초이며, 자본주의 질서의 마지막 보루다. 재판이 정치적 압력에 따라 흔들릴 수 있다는 신호는 국내외 투자자들에게 불확실성을 증폭시키는 요소다.
법률이 계약의 효력을 담보하고, 분쟁을 공정하게 심판하는 시스템으로 기능하지 못한다면, 기업의 활동 기반도 함께 약화된다. 특히 외국인 투자자들은 한국 사법시스템의 독립성과 예측 가능성을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삼는다.
정치권이 특정 사건을 계기로 사법제도 전반을 겨냥하고, 이에 대해 법관들이 직접 안건을 상정해 내부 토론에 나섰다는 점은 매우 이례적이다. 이는 단순한 정치-사법 갈등이 아니라, 법치주의라는 시스템의 ‘내구성 테스트’가 진행 중임을 의미한다.
전국법관대표회의는 이번 안건 논의와 함께 “향후 사태 경과를 모니터링하고 제도적 대책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당장의 입장 표명보다는 구조적 대응 방안을 모색하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를 지켜보는 시선은 결코 가볍지 않다. 검찰에선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 등 탄핵 기각 이후 복귀했던 고위 간부들이 줄줄이 사의를 표했고, 일부 판사들은 법관의 집단행동 자체가 사법 정치화를 부를 수 있다는 우려를 내비치기도 했다.
무너진 신뢰는 회복에 더 많은 시간과 자원을 요구한다. 사법 신뢰는 단순한 법조계 문제를 넘어, 한국 경제 시스템이 신뢰할 수 있는 기반 위에 놓여 있는지의 바로미터다. 정치적 판단이 법적 판단을 압도하려는 지금, 사법부 내부에서 울리는 경고음은 단지 법원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시장 전체에 보내는 위험 신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