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트래커 = 김상년 기자
셀트리온 주가를 올리기 위해 셀트리온은 올들어 4조원이 넘는 신규투자 발표 등과 함께 끊임없이 자사주를 대량 매입하고 있다. 자사주 소각도 적지 않다. 그룹 지주사인 셀트리온홀딩스도 보유 셀트리온 주식 담보 대출과 전환사채 발행 등으로 마련한 자금으로 셀트리온 주식을 계속 장내 매수 중이다.
그룹 전체가 셀트리온 주가 부양에 총력전을 쏟고 있는 모양새다. 셀트리온과 셀트리온홀딩스가 올 초부터 내년 초까지 셀트리온 주식 장내매수에 쏟아붓거나 부을 돈만 1조7179억원에 달한다. 다른 계열사나 특수관계자들의 투입자금까지 감안하면 2조원에 육박하는 현금을 셀트리온 주식 매수에 투입하고 있다.
하지만 셀트리온 주가는 큰 변화가 없다. 5일 종가는 18만3100원이다. 작년 말 주가(18만602원)와 차이가 별로 없고, 2023년 말(18만5371원)에 비하면 오히려 약간 하락해 있는 상태다. 셀트리온의 올 1~9월 영업실적이 괜챦은 편인데도 주가는 이렇다.
셀트리온 신규 사업들의 성장성이나 셀트리온그룹 지배구조, 투자 정책, 주주환원정책, 오너 일가의 사생활 등에 대한 투자자들의 불신이 기저에 깔려 있는게 아니냐는 지적들이 많아지고 있다.
셀트리온홀딩스는 5일 공시를 통해 제5회 사모전환사채(CB) 2500억원을 발행한다고 밝혔다. 청약 및 납입일은 5일, 만기는 2030년이며, 사채 매입자의 주식전환 청구는 1년 후부터 가능하다.
주식전환가액은 주당 2320만8037원이고, 전환비율 100%. 또 콜옵션(발행사의 매도청구권)은 1년 후, 풋옵션(사채권자의 조기상환청구권)은 3년 후부터 가능하다.
공시에 따르면 또 3개월 단위로 지급하는 표면이자율이 연 3.3%이고, 만기이자율은 6%다. 만기까지 들고 있으면 만기보장수익율이 6%라는 얘기다. 연복리로 계산한 금액에서 이미 지급한 이자를 차감해 만기수익률을 보장해주는 방식이다.
이 CB에는 셀트리온홀딩스의 금융기관 차입금이 1.5조원을 넘지 말아야하고, 부채비율 55% 이하를 유지해야하는 조건도 붙어있다. 세계적인 바이오시밀러 기업이자 영업실적도 양호한 셀트리온을 계열사로 거느리고 있는 셀트리온그룹 지주사치고는 썩 좋지 않은 조건이다.
아니나 다를까 자금사정이 취약한 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영업전문으로 소문난 메리츠금융그룹이 이 딜을 맡았다. 대표 주관사는 메리츠증권이고, CB도 전액을 메리츠 계열사들이 인수해 주었다. 메리츠증권이 1250억원, 메리츠화재 750억원, 메리츠캐피탈 500억원 등이다.
셀트리온홀딩스는 이번 CB 발행 목적을 ‘타법인 유가증권 취득자금용’이라고 밝혔다. 이 회사는 지난 7월 5000억원을 들여 올해 안으로 셀트리온 주식을 매입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이를 위해 2018년 이후 7년 만에 5000억원 규모의 CB도 발행한다고 지난 8월에 공시했다.
그 1차 CB 2500억원이 지난 8월4일 발행됐다. 이번에 발행하는 CB가 나머지 2500억원, 2차 발행 분이다. 1차 CB도 메리츠 3사가 전액 인수했고, 발행조건들도 이번 2차 CB와 대부분 동일하다.
셀트리온홀딩스는 이렇게 CB로 조달한 돈과 자체 자금 등으로 꾸준히 장내에서 셀트리온 주식을 사들이고 있다. 지난 8월7일부터 10월29일까지 장내에서 모두 237만6921주를 매입했다. 모두 4118억원을 투입했다.
이 회사는 지난 5~6월에도 보유 셀트리온 주식을 담보로 한 신규 차입으로 1242억원을 조달, 79만6181주의 셀트리온 주식을 장내 매수했다. 지난달 10일 공시를 통해서는 추가지분 매입계획을 또 밝혔다. 12월10일부터 내년 1월8일까지 한달간 195만5763주의 셀트리온 주식을 장내매수한다는 계획이다. 여기에도 3382억원이 투입된다.
이 추가 매입이 모두 끝나면 셀트리온홀딩스의 셀트리온 지분율은 24.77%로 높아진다. 작년 말 지분율은 21.96%였다. 3차례 지분 매입에 모두 8742억원을 투입, 지분율을 1년 사이에 2.81%나 높이는 것이다.
셀트리온홀딩스의 최근 6개월간 셀트리온 주식 장내매수 현황
이 회사는 이렇게 거금을 들여 꾸준히 셀트리온 주식을 사들이는 이유로 ‘자회사 기업가치 제고 및 당사 수익구조 개선’이라고 밝혔다. 셀트리온 주가를 올리고 그 덕에 자사 수익구조도 개선한다는 것이다.
셀트리온은 최근 수년간 주주환원정책을 크게 강화하고 있다. 2022년 9.61%에 불과했던 연결 배당성향은 23년 19.34%, 작년(결산배당) 36.38% 등으로 수직으로 치솟고 있다. 당연히 대주주인 셀트리온홀딩스의 배당수입도 매년 크게 늘고있다.
셀트리온 주가가 많이 올랐을때 홀딩스가 보유한 셀트리온 지분을 일부 매각하면 시세차익도 올릴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당사 수익구조개선’이라는 설명은 틀린 얘기는 아니다.
지주사 뿐 아니라 당사자인 셀트리온도 올들어 주가부양을 위해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고 있다. 모두 4조원 이상을 들여 미국 공장을 새로 인수하고 국내외 생산설비를 크게 늘리겠다는 발표부터가 주가엔 호재였다.
또 작년부터 자사주도 끊임없이 장내매수하고 있다. 작년12월30일부터 지난 10월15일까지 매입을 완료했다고 공시한 자사주만 493만7152주에 달한다. 여기에 모두 8437억원의 셀트리온 보유 현금 등이 투입됐다. 그 덕에 지난 10월17일 기준 자사주 보유량은 1235만2929주, 자사주 지분율은 5.3%로 각각 높아졌다.
국내외 신규투자금도 모자랄 판에 거액을 자사주 매입에 쏟아붓고 있는 것이다. 셀트리온의 유동성이 아직 양호하고 올들어 영업흑자와 순이익이 작년보다 많이 늘고 있는 점은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올들어 3차례 진행한 자사주 소각과 주주배당 증가 등도 주가엔 호재다. 하지만 진정한 주주 환원과 주가부양을 하려면 취득한 자사주를 전량 소각해야 한다는게 정설이다. 장내 매수한 자사주를 전부 소각하지 않고 다시 장내에서 일부라도 매도하면 자사주 매입 때의 주가부양 효과가 그만큼 다시 사라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셀트리온이 올들어 장내매수한 자사주가 493만7152주인 반면 올들어 소각처리한 자사주는 195만9040주(3281억원어치)에 그쳤다. 자사주 매입효과가 한정적일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아쉬운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정리하자면 셀트리온홀딩스와 셀트리온이 셀트리온 지분 장내매수를 위해 투입한 현금은 각각 8742억원과 8437억원이다. 합치면 1조7179억원에 달한다. 여기에 셀트리온스킨큐어 등 다른 계열사들과 서정진 그룹 회장 및 특수관계인들도 올들어 셀트리온 지분을 계속 조금씩 늘리고 있다. 이들까지 합치면 2조원에 육박한다.
올들어 2조원에 가까운 현금이 셀트리온 지분 매수에 동원되고 있는데, 왜 주가는 묵묵부답일까?
많은 업계 관계자들은 셀트리온의 자사주 매입량보다 소각량이 너무 적은 점을 우선 그 원인 중 하나로 꼽고 있다. 또 셀트리온홀딩스가 매입한 셀트리온 주식을 1년 정도 보유하다가 주가가 오르면 언젠가 일부라도 팔겠다는 계획을 공공연히 밝히고 있는 점도 문제다.
매입한 주식을 전량 소각(자사주)하거나 장기 보유하지 않고 주가가 오를 때 일부 매각한다면 주가는 그만큼 다시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주주환원용이 아니라 재테크용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점을 투자자들이 꿰뚫어보고 있다는 얘기다.
미국 FDA로부터 획득한 최초 신약허가로, 야심차게 미국시장에 출시한 자가면역질환치료제 짐펜트라(램시마SC)가 아직 기대 이하 매출을 올리고 있는 점이나 여전한 공매도 압력, 미국 약가인하정책이나 의약품 관세부과 가능성 등 불확실한 대외환경 등도 셀트리온 주가 부진의 이유들로 꼽히고 있다.
서정진 회장이 올해 발표한 4조원 이상의 미국 현지 생산시설 인수 및 국내 시설투자 등도 단기적으로는 시장에 부담을 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IB업계의 한 관계자는 “서정진 회장의 최우선 관심사는 셀트리온 주가 부양으로 보인다”라며 “그러나 롯데건설, 홈플러스, SK 일부 계열사 등 자금난이 심한 곳이라면 어디든 뛰어들어 고금리를 불사하던 메리츠3사와의 거래까지 감수해가며 셀트리온 주가를 부양해야 하는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제약업계의 한 관계자는 “삼성바이오로직스 등의 성장성이나 사업방식 등과 비교해 많은 투자자들이 셀트리온과 서정진 회장의 사업 방향이나 내용, 주주환원정책, 사생활 등에 대해 의구심을 많이 갖고 있는게 아닌가 추정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