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트래커 = 김상년 기자
정부-여당의 자사주 소각 의무화 법 개정을 앞두고 그 전에 보유 자사주를 처분해 버리려는 상장기업들의 이른바 ‘자사주 탈출’에 대해 지난 20일부터 금융감독원이 제동을 걸기 시작하자 자사주 처분 결정을 아예 철회하거나 공시 내용을 부랴부랴 정정하는 기업들이 이어지고 있다.
광동제약은 28일 주선기관과의 협의를 거쳐 보유 자사주를 교환대상으로 하는 교환사채(EB) 발행을 취소하기로 결정했다고 공시했다. 또 EB 발행 대신 다른 자금 조달방안을 통해 계열사 유상증자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광동제약의 28일 자사주 기반 교환사채 발행 철회 공시
 
광동제약은 자사주 교환대상 첫 사모 교환사채(EB) 250억원을 발행한다고 지난 20일 공시한 바 있다. 이 회사 역사상 처음 있는 제1회 사모 교환사채 발행 결정이었다. EB의 교환대상이 될 광동제약 자사주는 모두 379만3626주로, 전체 발행주식의 7.24%에 달했다. 이 처분 결정 전 광동제약은 모두 940만5283주 17.94%의 자사주를 보유하고 있었다.
금감원이 기업들의 무분별한 변칙 ‘자사주 탈출’을 막기 위해 특히 자사주 기반 EB 발행의 공시요건을 대폭 강화한 것도 하필이면 지난 20일이었다. 금감원은 기다렸다는 듯이 광동제약에 제동을 걸었다.
금감원은 지난 23일 광동제약이 EB를 발행하기 위해 제출한 주요사항보고서 2건에 대해 정정 명령을 내렸다. 제출된 주요사항보고서 상 기재 내용이 공시 작성 기준에 부합하지 않았다는 시비였다.
금감원은 20일부터 기업들이 자사주 대상 EB를 발행할 때 다른 자금조달 방법 대신 EB 발행을 선택한 이유, 발행시점 타당성에 대한 검토 내용, 기존 주주이익 등에 미치는 영향 등을 공시에 구체적으로 기재하도록 했다.
광동제약은 이에 따라 EB 발행이 기존 주주의 지분 희석 우려가 없고 다른 자금조달 방식보다 비용 절감 효과가 크다고 설명했다. 발행한 EB는 주선기관인 대신증권이 전액 인수할 예정이라고도 공시했다.
그러나 금감원은 대신증권이 해당 EB를 인수한 뒤 처분할 계획이 있는 것으로 파악했다. 이로 인해 투자자들이 대신증권이 해당 EB를 보유하는 것처럼 오해하도록 잘못 기재했다는 것이다.
IB업계의 한 관계자는 “대신증권 보유 문제는 그냥 명목 상 시비거리였고 실제로는 ‘이제 무분별한 자사주 EB 발행은 자제해주는게 좋겠다’는게 금감원의 메시지로 보였다”면서 “실제 자사주를 많이 보유한 다른 많은 상장사들은 이를 눈치채고 이미 20일 이전부터 자사주 EB 발행을 대부분 보류하는 분위기였는데, 광동제약만 저돌적으로 발행을 강행하다 당한 첫 시범케이스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자사주 기반 EB를 발행하려다 당국이나 투자자들의 압력 또는 반발 등 때문에 발행을 포기한 것은 지난 7월의 태광산업, 9월 말의 KCC에 이어 이번이 세번째다.
 
금감원은 광동제약 말고도 지난 22일 역시 자사주 기반 교환사채 발행을 공시했던 상장사 테스에 대해서도 공시 정정 명령을 내렸다. 테스는 자사주 30만주 1.68%를 교환대상으로 하는 사모 EB 발행을 공시했었다. 발행 예정일은 30일이다.
테스는 지난 22일 첫 공시 때도 금감원 지침에 따라 EB 발행 목적과 시점 등을 자세히 설명했으나 금감원은 그것도 의문점이 많다며 정정 명령을 내린 것이다.
이에 테스는 28일 정정 공시를 다시 내고 잔여 자사주 활용계획, 기타 자금조달 방법 검토내용, 금융기관 차입금 현황, 타법인 출자현황, EB 조달자금 사용계획 등을 자세히 설명했다. 이 정정 공시에 금감원이 만족할 지는 지켜볼 일이다.
한편 금감원이 자사주 EB 공시규제를 강화하자 확실히 지난 20일 이후 EB 발행 공시는 현저히 줄고 있다. 20일의 광동제약과 22일의 테스 등 단 2건 뿐이다. 이 2건 모두에 대해 공시 정정명령을 내린 셈이다.
지난 8월 이후 28일 현재까지 자사주 기반 EB 발행을 공시했던 기업은 모두 45개사에 달한다. 그 중 9월15일 이후에만 29개사가 몰렸다. 금감원 규제가 시작된 지난 20일 이후 확실히 EB 발행 공시가 뜸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신 자사주를 아예 매각 또는 소각하거나 임직원 상여용 등으로 활용하는 사례는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20일 이후 정부의 입맛에 맞게 자사주 일부를 소각 공시한 상장사는 앱코(20일), NHN(23일), 백산(27일) 등 3사다.
임직원 상여용으로 자사주를 지급하겠다고 공시한 기업은 에코프로비엠(20일), 에코프로에이치엔(20일), 에코프로(21일), 원티드랩(24일), 하이젠알앤엠(27일 스톡옵션) 등 5사다.
반면 가급적 자사주는 소각하자는 정부 의도와는 아랑곳 없이 자사주를 서둘러 외부 또는 관계기업에 매각하겠다고 공시한 기업도 하이젠알앤엠(20일), 애니플러스(20일), RF머티리얼즈(21일), 한스바이오매드(24일), 아이즈비전(27일), 유티아이(28일) 등 6사였다. 이 중 RF머티리얼즈와 아이즈비전, 유티아이 3사는 보유 자사주 전량을 이번에 모두 매각 처분한다.
보유 자사주 전량을 매각하겠다는 지난 27일 상장사 아이즈비전 공시
 
금감원은 자사주 EB 만큼은 아니지만 또 다른 자사주 탈출의 ‘우회로’로 이따금 활용되던 PRS(주가수익스와프)에 대해서도 사전 차단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한 국회의원이 금융감독원에 주요 증권사들의 PRS 계약 내역을 요청했고, 금감원 자본시장감독국이 관련 자료를 취합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이 때문에 자사주가 많은 기업들은 임직원 상여용 외 남은 탈출로인 블록세일(시간외대량매매) 방법을 현재 많이 찾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요즘 자사주가 많은 상장기업들이 자사주 블록딜 문의를 많이 해오는것이 사실”이라며 “그러나 웬만큼 할인을 해줘도 증시 활황 때문에 블록딜을 받아줄 투자자들이 많지 않다는 점이 문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