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동제약 홈페이지의 최성원 대표이사 회장


더트래커 = 김상년 기자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담은 ‘더더 센’ 상법 개정안이 이번 정기국회 기간 중 통과될 가능성이 높아지자 보유 자사주를 어떤 방식으로든 처분해 버리려는 기업들의 이른바 ‘자사주 탈출’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광동제약도 자사주 교환대상 첫 사모 교환사채(EB) 250억원을 발행한다고 지난 20일 공시했다. 이 회사 역사상 처음 발행되는 제1회 사모 교환사채 발행이다.

무분별한 자사주 탈출과 자사주 기반 EB 발행을 막기위해 금감원이 20일부터 자사주 EB의 공시요건을 크게 강화했는데도 광동제약은 이에 아랑곳 없이 계속 자사주를 처분해 나가겠다는 태도다. 광동제약은 지난달 29일에는 협력업체들과 자사주 상호교환 보유 계획까지 발표한 바 있다.

21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광동제약 EB의 교환대상이 될 광동제약 자사주는 모두 379만3626주로, 전체 발행주식의 7.24%에 이른다. 이 처분 전 광동제약은 모두 940만5283주 17.94%의 자사주를 보유하고 있었다. 이 중 7.24%를 이번에 EB 발행으로 처리한다는 것이다.

EB 매입자가 주식 교환을 청구할 경우 교환가액은 주당 6590원으로, 19일 광동제약 종가보다 15% 할증된 금액이다. 청약 및 납입일은 오는 28일이고, 한 달 후인 11월28일부터 주식 교환 청구가 가능하다.

교환비율 100%로, 250억 전액을 광동제약 주식으로 교환할 수 있다. 표면 및 만기이자율 0%, 30개월 후부터 EB 매입자의 조기상환청구권(풋옵션) 행사 가능 등의 조건도 붙어있다. 사채만기일 은 2030년 10월28일로 5년이다. 대신증권이 이 EB 전량을 인수했다.

광동제약의 지난 20일 자사주 교환대상 교환사채 발행 공시


지난 8~9월 두 달 동안 러시를 이루었던 상장사들의 자사주 기반 교환사채 발행 붐은 10월 추석 연휴가 지나면서부터 다소 뜸해진 상태다. 대신 보유 자사주를 종업원 상여 등 인센티브 용이나 외부 매각 처분하는 경우들이 많아졌다. 정부 의도에 맞추어 아예 자사주 소각을 하는 상장사들도 적지 않다.

지난 8월 이후 10월20일까지 자사주를 교환대상으로 하는 EB를 발행한 상장사들은 44곳에 달하는데 그 중 28개사가 9월15일 이후 발행했다. 하지만 추석연휴 직후인 지난 13일 이후 자사주 EB 발행을 공시한 곳은 종근당홀딩스(15일), 무학(17일)과 그리고 20일의 광동제약 등 3곳 뿐이다.

추석 연휴 이후 자사주 탈출 러시 자체가 많이 둔화된 것은 물론, 탈출하더라도 EB발행보다 임직원인센티브 지급이나 외부매각, 소각 등의 방식을 채택하는 상장사들이 확실히 많이 늘었다는 얘기다.

실제 13일 이후 임직원 인센티브용으로 자사주를 처분한 상장사는 디아이티(13일), 인카금융서비스(17일), 에코프로비엠(20일), 에코프로에이치엔(20일) 등 4곳이다. 자사주를 외부 등에 매각한 곳은 신성델타테크(14일), 티에스아이(15일), 씽크폴(17일), 하이젠알앤엠(20일), 애니플러스(20일) 등 5곳이다.

반면 메가스터디교육(16일), 유비쿼스(16일), 앱코(20일) 등 3곳은 보유 자사주를 정부 입법의도에 맞게 소각처리했다.

광동제약 로고


추석 연휴 이후 자사주 탈출 움직임 자체가 둔화되고, 특히 자사주 교환사채 발행이 확 줄어든 것은 지난 13일 국회 국정감사장에 불려나간 롯데그룹이 보유 자사주를 “시간을 두고 소각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관련업계는 보고있다. 롯데그룹 지주사인 롯데지주의 현재 자사주 보유량은 27.5%로, 50대 그룹 중 태영그룹 다음으로 많은 자사주를 갖고 있다.

지난 13일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고정욱 롯데지주 사장은 "신규로 취득한 자사주는 빠른 시일 내 소각하는 것이 맞고, 기존 자사주에 대해서도 취득 경위 등을 검토해 시간이 걸리더라도 소각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주주들이 손해 보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덧붙였다.

그동안 자사주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피했던 롯데지주가 자사주 소각 의지를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감장에서 롯데지주는 또 지난 6월 자사주 약 5%를 계열사 롯데물산에 매각한 것을 놓고 의원들로부터 난타 당하기도 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이번 국정감사를 통해 정부-여당의 자사주 강제 소각 입법의도가 더 명확해지고, 자사주가 가장 많은 롯데부터가 정부에 협조할 뜻을 비친 이후부터 무리한 탈출을 삼가려는 분위기가 역력해 보인다”고 말했다.

특히 자사주 교환대상 교환사채 발행이 현저히 줄고 있는데 대해서는 “매각이나 소각 등의 방식은 의사표시가 분명하고, 임직원 인센티브용은 또 참작이 가는 면이 많은 반면 교환사채 발행은 여러 핑계를 댈 수 있어 자사주 탈출용 ‘꼼수’라는 평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자사주 소각은 주주가치 제고라는 자사주 취득의 원래 취지를 가장 살리는 것이어서 정부나 소액주주들이 쌍수를 들어 환영하는 조치다. 반면 숨은 백기사 등에 자사주를 매각하거나 자사주 교환보유 등은 정부나 시장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다. 회사 돈으로 취득한 자사주를 최대주주나 경영진이 경영권 방어 또는 재테크용으로 매각해버리면 아무래도 소액주주들은 피해를 입기 때문이다.

정부나 소액주주 눈치를 크게 살피지 않는 작은 상장사들은 요즘같은 분위기에도 자사주를 과감히 매각하기도 한다. 반면 어느 정도 덩치가 큰 상장사라면 자사주 매각까지는 생각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고안된 ‘꼼수’가 자사주 교환대상 교환사채라는 것이다.

설비투자 등 자금이 쓰일 곳이 많은데, 사정상 차입은 어려워 마침 회사가 보유한 자사주를 교환대상으로 필요자금을 긴급조달한다는 등의 명분을 붙여 자사주를 처분하면 어느 정도 정상 참작이 되지 않겠느냐는 의도다.

광동제약의 차입금 현황


8월 이후 자사주 교환대상 EB 발행이 급증하면서 이에 대한 비판이 커지자 자사주를 처분하되 소각과 EB 발행, 임직원 상여 또는 사내근로복지기금 출연 등의 방식을 골고루 섞어 자사주 처분계획을 발표하는 기업들도 적지 않았다. 정부에 가급적 덜 찍히고 뭇매도 덜 맞도록 하겠다는 ‘배합’이라고 볼 수 있다.

지난달 24일 자사주 처분계획을 발표한 KCC가 대표적 사례다. 그러나 당장 특히 자사주 EB 발행 부문에 소액주주 등이 크게 반발하면서 며칠째 주가가 계속 급락하자 지난달 30일 KCC는 부랴부랴 처분계획 전체를 철회해야 했다.

EB는 기업이 가진 상장주식을 교환대상으로 발행하는 회사채로, 일정 조건을 충족하면 나중에 주식으로 바꿀 수 있다. 교환대상이 자사주이고, 언젠가 교환된 자사주가 시장에 풀릴 경우 소액주주들은 손실을 볼 가능성이 높다. 더군다나 정부-여당이 현재 자사주 소각을 의무화하는 입법을 추진 중이어서 소액주주들은 이같은 교환사채 발행 계획에 더 반발한 것으로 알려진다.

KCC 사례와 추석연휴 후 롯데가 국정감사장에서 난타당하는 장면을 직접 목격하면서 자사주 기반 교환사채 발행이 현저히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광동제약의 지난 9월29일 자사주 상호교환 보유 관련 공시


추석 연휴 이후 이런 분위기가 확산 중인데도 자사주 교환사채를 발행한 3곳을 보면 15일의 종근당홀딩스는 자회사 종근당이 이미 지난달 30일 보유 자사주 전량을 교환대상으로 하는 교환사채 발행을 공시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같이 강행한 것으로 보인다. 또 17일 발행을 공시한 무학은 경남 소재 기업이어서 이같은 분위기에 조금 둔감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보다도 한참 지난 20일에야 자사주 교환사채 발행을 공시한 광동제약에 대해서는 상당히 용감(?)한게 아니냐는 업계 반응도 적지 않다.

더군다나 광동제약은 이에 앞서 지난달 29일 보유 자사주 일부를 협력 기업들과 상호 교환, 보유하는 계획까지 발표, 화제가 됐던 기업이다. 우호적인 기업들끼리 자사주를 서로 교환해 보유하고 있다가 경영권 분쟁 등 유사시 우호 지분으로 활용할 수 있는 이른바 ‘자사주 백기사’ 활용 사례라고도 볼 수 있다.

광동제약이 당시 처분한 자사주 7.12%는 삼양패키징, 삼화왕관, 금비 등이 인수했다. 대신 광동제약은 삼화왕관과 금비의 자사주를 자사주 처분 금액 만큼 인수했다. 광동제약 등 4사의 이날 자사주 거래는 모두 똑같은 30일 증시 개장 전 장외매각 방식으로, 거래시간도 똑같았다. 모두 광동제약과 오랜 거래관계가 있는 기업들이라는 공통점도 있다.

광동제약은 과거부터 자사주 보유량이 많기로 소문이 많이 난 상장사 중 하나였다. 이 처분 전 광동제약의 자사주는 발행주식의 25.1%, 1314만239주에 달했다. 지난달 29일 처분으로 자사주 보유량은 17.98%로 줄었다. 지난 20일 교환사채 발행으로 주식 교환 청구가 시작되면 자사주 보유량은 더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광동제약 입장에선 자사주 보유가 워낙 많았고, 또 그 자사주를 정부가 강제소각을 의무화한다니까 그 전에 서둘러 처분하자는 의도일 것이다. 하지만 하필이면 정부나 소액주주들이 싫어할 자사주 교환보유나 교환사채 발행만 고집하고 있다는게 앞으로 계속 문제가 될 소지가 있어 보인다.

광동제약의 자사주 교환사채 발행 이유 설명 부분


이런 점들 때문인지는 몰라도 광동제약은 왜 이 시점에 첫 자사주 교환대상 사모 교환사채를 발행해야하는지를 공시에서 장황하게 설명했다. 이번 EB 발행은 금감원이 20일 시행한 공시 작성기준 개정 방안의 첫 적용을 받았기 때문이다.

앞서 금감원은 기업들의 무분별한 자사주 교환사채 발행을 막기위해 자사주 대상 EB를 발행할 때 다른 자금조달 방법 대신 EB 발행을 선택한 이유, 발행시점 타당성에 대한 검토 내용, 기존 주주이익 등에 미치는 영향 등을 공시에 구체적으로 기재하도록 했다.

광동제약은 이에 따라 우선 회사 역사상 첫 자사주 EB를 발행하는 이유에 대해 “당사는 (그동안) 금융기관 차입, 보유 금융상품 처분 등을 통해 자금을 조달해왔으나 매 사업연도 차입금 증가 등 기존 자금조달 방식에 대한 부담이 가중됨에 따라 자금조달 방식의 다각화를 모색했다”면서 “기존 주주의 지분 희석이 우려되는 신주 발행방식이 아닌 타 자금조달 방식 대비 발행비용과 금융비용 절감 효과가 큰 자사주 대상 교환사채 발행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또 왜 이 시점이냐에 대해선 “전략적으로 지분 인수를 진행했던 계열사 프리시젼바이오의 기발행 CB(총 사채원금 150억)의 조기상환청구 도래 및 광동헬스바이오의 운영자금 부족과 시설투자 계획에 따라 추가적인 자금지원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두 계열사 모두 아직 적자 상태이고, 자금 소요도 많아 두 회사의 유상증자에 광동제약이 참여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 이번 교환사채로 조달할 자금 중 200억원은 두 회사 유상증자에 납입하고, 나머지 50억원은 광동헬스바이오에 대여하겠다고 설명했다.

또 “신주 발행이 아닌 기 보유 자사주 활용이어서 기존 주주이익에 대한 영향이 상대적으로 작으며, 시장 충격을 수반할 수 있는 장내 매도 방식을 피하고 교환가격을 기준가격의 115%에 해당하는 가액으로 산정해 교환사채를 발행함으로써, 다른 매도 방식 대비 당사에 더 큰 현금 유입을 통해 기존 주주의 이익을 보호하려했다”고도 설명했다.

하지만 KCC 등 다른 상장사들도 모두 광동제약과 비슷한 방식으로 EB를 발행 또는 발행하려 했었다. 교환가액도 모두 같은 할증 방식이었다. 그런데도 KCC 등에서 소액주주 반발이 커진 것은 나중에 주식 교환이 청구되면 어차피 또 주식매물이 쏟아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광동제약은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설명 공시도 덧붙였다. 자사주가 모두 교환될 경우 자사주 교환으로 감소되는 광동제약 최대주주및 특수관계인의 의결권 효과가 약 1.8%라는 설명이다. 자사주가 감소하거나 사라지면 당연히 최대주주 지분율은 올라가는데, 감소한다는 것이다. 이는 표기 실수로 짐작된다.

이외 예상되는 주식가치 희석효과 등에도 긴 설명 공시가 붙었다. 8월 이후 자사주 기반 교환사채 발행을 공시했던 44개 상장사들 중 이렇게 발행 이유를 길게 공시했던 기업은 없었다. 금감원의 무분별한 자사주 EB 발행 억제 방침에도 발행을 강행한데 대한 후폭풍 걱정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