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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트래커 = 김상년 기자

최근 정부-여당이 올 연말까지 자사주 소각 의무화 상법 개정을 완료한다는 방침을 공식으로 밝힌 이후 법 시행 전까지 보유 자사주를 어떻게 해서든 처분해 버리려는 상장기업들의 이른바 ‘자사주 탈출 러시’가 더욱 봇물을 이루고 있다.

특히 정부와 투자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보유 자사주 전량 매각까지 노골적으로 강행하는 기업들도 늘고 있어 주목된다.

11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10일 하룻 동안에만 해도 다날과 대창, 에이스테크 등 3개 상장사가 보유 자사주 전량을 시간외대량매매(블록딜) 방식으로 매각 처분한다고 공시했다.

매각 대상 자사주 수는 다날이 215만6045주(전체발행주식대비 2.87%), 대창이 688만9111주(7.56%), 에이스테크가 42만8142주(0.5%)다. 3사 모두 현재 보유하고 있는 자사주 전량이다.

다날의 10일 공시


다날은 10일 종가대비 5% 할인된 주당 6902원으로 11일 매각, 146.65억원을 확보할 예정이다. 또 대창은 10일 종가인 주당 1199원으로 내년 1월9~12일 매각, 82.6억원, 에이스테크는 10일 종가대비 5% 할인된 주당 3093억원으로 11일 매각, 13.24억원을 각각 챙길 예정이다.

처분 상대는 대창이 최대주주인 서원이고, 다날과 에이스테크는 자산운용사들에 매각한다.

이들 3사와 달리 이날 케이피에프는 자사주 보유 전량(3.3%, 66만6206주)을 사내근로복지기금에 출연한다고 공시했다. 이 회사는 이에 앞서 지난달 24일 자사주 66만6206주를 소각처리한 바도 있다. 자사주 소각이나 근로복지기금 출연 등은 정부나 투자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처리방법이다.

정부와 투자자들이 그 중에서도 자사주 소각을 가장 선호하는 이유는 취득한 자사주를 전량 소각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주주환원이고 주주가치 제고책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회사 돈으로 취득한 자사주를 소각하지 않고, 외부에 매각하거나 다른 기업과의 자사주 맞교환, 또는 자사주 교환대상 교환사채(EB)를 발행하는 것 등의 재테크는 아무래도 이사회를 장악한 최대주주에게 상대적으로 유리할 수 밖에 없고, 주가부양책도 되지 않는다고 본다.

이에 대해 이날 한꺼번에 자사주 전량 블록딜 매각을 선택한 3사는 모두 시장가격을 반영한 시간외대량매매를 통해 거래되므로 주식가치 희석효과는 미미할 것이라고 해명했다. 소액주주들과 주가에 비칠 영향이 크지 않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자사주 소각에 비하면 주가부양 효과가 거의 전무하다는 점만은 확실하다. 또 자사주 매입자가 일정 기간 후 이 자사주를 시장에 내다 팔면 아무래도 주가에 영향을 줄 수 밖에 없다. 시간외대량매매 든 장외매각이든 모두 투자자들이 싫어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창의 자사주 매각대상 등 공시


집권여당인 민주당이 연내에 자사주 소각을 의무화하는 3차 상법 개정안을 처리하겠다고 공식으로 밝힌 지난달 25일 이후 자사주 전량을 매각 등의 방식으로 처분해 버리려는 기업들 숫자는 확실히 늘었다.

당일인 지난달 25일 엠투아이는 보유 자사주 전량인 73만3149주(4.33%)를 교환대상으로 하는 교환사채를 발행한다고 공시했다. 현대공업도 지난달 27일 자사주 전량 39만5322주(2.58%)를 교환대상으로 하는 자사주 사모교환사채를 발행한다고 밝혔다. 이 회사 역사상 처음 발행하는 EB였다.

지난달 28일에는 한꺼번에 3개 상장사가 보유 자사주 전량 처분을 공시했다. LS그룹 계열사인 LS마린솔루션(자사주 비율 2.58%)은 제1회 자사주 기반 사모 EB 발행으로, 아이스크림에듀(2.4%)는 장외매각 방식을 통해 각각 보유 자사주 전량을 처분한다고 밝혔다.

삼화페인트공업은 보유 자사주 중 100만8642주(3.71%)는 자사주 교환대상 EB 발행을 통해, 또 나머지 138만주는 시간외대량매매 방식으로 각각 처분한다고 공시했다.

이달들어 지난 1일에는 보유 자사주 전량을 처분하는 기업들이 더 늘었다. 이날 태경케미컬(2.3%)은 장외매각 방식, 비엠티(2.23%)는 시간외대량매매 방식, 한국내화는 그룹 계열사 후성이 보유한 또 다른 계열사 한텍 주식과 맞교환하는 방식, 휴니드테크놀러지스는 EB 발행 방식을 통해 보유 자사주 전량을 처분한다고 각각 공시했다.

반면 마이크로디지탈은 직원 상여금 및 장려금으로 보유 자사주 전량 10만2천주(0.5%)를 지급한다고 공시했다. 1일 한꺼번에 5개 상장사가 보유 자사주 전량을 처분한다고 공시한 셈이었다.

지난 2일에는 오리엔트바이오와 오리엔트정공이 장외매각 방식으로 보유 자사주 전량을 처분한다고 공시했다. 처분상대는 모두 최대주주인 오리엔트였다. 지난 4일에는 예스티가 보유 자사주 전량(3.62%)를 교환대상으로 하는 EB 발행을 공시했다. 청담글로벌도 지난 5일 보유 자사주 전량(3.8%)을 교환대상으로 하는 EB발행을 공시했다.

에이스테크의 지난 10일 공시


월요일이었던 지난 8일에도 자사주 처분 공시가 봇물처럼 터져나왔다. 삼성공조는 이날 같은 지역기업인 무학과 보유 자사주 전량(3.27%)을 맞교환한다고 공시했다. 칩스앤미디어는 보유 자사주 전량(2.4%)를 교환대상으로 하는 EB발행을 발표했다.

윌비스와 디아이씨도 이날 보유 자사주 전량을 매각처분한다고 공시했다. 다만 방법은 달랐다. 윌비스는 장외처분(2.18%)인 반면 디아이씨는 자사주 전량(0.37%) 시장매도였다. 자사주 시장매도는 시장 주가에 바로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정부와 투자자들이 싫어하는 자사주 처분 방법 중에서도 가장 싫어할 방법이라고 볼 수 있다.

지난 8월 이후 본격화된 ‘자사주 탈출’ 방법들 중 자사주 시장매도는 사실상 처음 있는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디아이씨 측은 시장에서 매각하는 자사주 양이 14만2694주로 전체 발행주식의 0.37%에 불과해 시장 영향은 미미할 것이라고 해명했다.

같은 날 넥슨그룹 지주사인 NXC와 극동유화, 대림제지 등은 정부와 투자자들이 좋아할 방식으로 보유 자사주 전량을 처분한다고 공시했다. NXC는 고 김정주 넥슨 창업자 유족 3명으로부터 취득한 자사주 17592주(1023억원 상당)를 포함한 보유 자사주 전량 25997주를 소각한다고 공시했다.

상속세 등이 필요한 유족들의 자금수요를 회사가 대신 지급한 꼴이어서 다소 문제가 있어 보이지만 보유 자사주 전량 소각은 아무튼 정부나 투자자들이 가장 좋아할 처분방법이다.

극동유화는 보유 자사주 전량 30만주(0.9%)를 임직원 성과급으로 지급한다고 밝혔다. 자사주 전량 소각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정부나 투자자들이 싫어하지도 않는 처분방법이라고 볼 수 있다. 대림제지는 이날 자사주 소각과 사내근로복지기금 무상출연이라는 방법을 섞어 자사주 전량을 처분한다고 공시했다. 이 역시 바람직한 처분 형태라고 평가할 수 있다.

지난 9일에는 문배철강이 시간외대량매매 방식을 통해 보유 자사주 전량(9.4%)을 매각한다고 공시했다.

삼성공조와 무학의 자사주 맞교환 공시


이들 기업 외에도 정부의 자사주 소각의무화 입법 움직임이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지난 8월 이후 자사주 전량은 아니지만 일부를 매각이나 맞교환, 교환사채 발행 등의 방법으로 처분한 기업들도 수없이 많았다.

지난 8월 이후 지난 10일까지 자사주 EB 발행을 공시한 상장사만도 모두 71개사에 달한다. 금감원의 자사주 EB 공시 규제가 크게 강화된 10월20일 이후 자사주 EB 발행 기업도 28곳에 달한다.

반면 정석대로 자사주 일부 소각이나 임직원 상여 또는 사내복지기금 출연 등으로 자사주를 처분한 기업들도 적지 않았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도 물론 자사주 처분 기업들이 항상 있긴 했지만 정부의 강제 소각 입법 움직임이 본격화된 이후 그 숫자가 엄청나게 폭등한 것은 사실”이라며 “초기에는 그래도 정부 눈치를 살피는 기업들이 많았는데, 최근 들어선 아예 무시하고 보유 자사주 전량 매각 등을 강행하는 기업들이 점점 더 늘고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최근 자사주 처분 기업들 대부분이 시설자금이나 운영자금 등의 처분 필요성을 구구절절 설명하고 있지만 올 상반기 전까지만 해도 자사주를 장기보유만 하면서 움직임을 거의 보이지 않았던 기업들이 대부분이어서 아무래도 정부의 자사주 소각의무화와 관련된 움직임들로 보아야할 것”이라고 밝혔다.

증권업계의 한 관계자는 “지금까지는 그래도 대기업들보다는 중견-중소 상장업체들이 이런 움직임에 주로 편승하고 있다”면서 “진짜 자사주 보유량이 많은 SK나 롯데, 태영, HD현대, LS, 두산, 하림그룹 등과 신영증권, 부국증권 등은 아직 정부나 투자자 눈치 때문인지 움직임이 거의 없이 눈치만 보고있다”고 말했다.

자사주 소각의무화 개정상법에는 6개월 정도의 유예기간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개정 상법이 국회를 통과해 정말 시행되면 관련 대기업들도 유예기간 중에 모종의 움직임들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