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방의 베트남 공장들

더트래커 = 김상년 기자

정부-여당의 자사주 강제소각 의무화 법 개정이 이루어지기 전에 보유 자사주를 어떻게든 처분해버리자는 기업들의 이른바 ‘자사주 탈출’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경방과 일신방직이 서로 상대방의 자사주를 맞교환해 보유하기로 결정했다.

29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이날자로 경방은 일신방직 자사주 68만827주 2.97%를 받고, 일신방직은 경방 자사주 107만1581주 3.91%를 받는 자사주 맞교환 방식의 자사주 처분이 이뤄졌다.

처분 금액은 서로 똑같이 75억원씩으로, 자사주 처분금액과 동일한 금액에 해당하는 상대방 자사주를 주식교환으로 취득하는 방식이다. 교환가격은 코스피 시장에서 형성된 종가 기준 과거 2개월간 가중산술평균주가로 산정했다고 양 사는 설명했다.

경방의 자사주 맞교환 관련 설명 공시

처분방법은 자사주를 상대방 회사가 거래하는 증권사 계좌로 직접 대체(주식스왑)하는 장외거래이며, 사업협력을 강화하기위해 장기간 보유할 예정이어서 주식가치 희석효과는 거의 없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양사는 똑같이 밝혔다.

이 맞교환 처분 전 경방은 9.12%, 일신방직은 7.7%의 자사주를 각각 보유 중이었다. 자사주 량으로는 적지 않은 편들이다.

양 사는 이렇게 자사주 맞교환을 하는 이유로, 양 사 모두 베트남에서 방적업체를 갖고 있기 때문에 방적사업부문에서 섬유기술교류와 베트남에서의 사업전략 협력을 추구하기위한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한 IB업계 관계자는 “오랜 업력의 두 회사가 하필 이 시점에 베트남 사업협력을 이유로 자사주를 맞교환한다는게 어딘가 설득력이 적어 보인다”면서 “오래 보유해온 자사주를 강제 소각당하느니 서로 맞교환 보유라도 하자는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상대방 주식을 보유하고 있으면 상대방에서 경영권분쟁 같은 것이라도 발생하면 우호주 백기사 역할도 할 수 있다. 금융감독원이 자사주 기반 교환사채 발행을 사실상 규제함에 따라 새로운 탈출구의 하나로 맞교환 방식을 고안해낸 측면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경방의 주요 주주 현황


지난 6월 말 기준 경방의 주요 대주주 현황을 보면 김 담 대표이사 사장(60)이 20.98%, 김 준 대표이사 회장(62) 13.44% 등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 지분합계가 57.19%에 달한다.

경영권분쟁 등을 우려하기엔 아주 안정적인 지분구조다. 지금까지 가족간 경영권 분쟁 같은 것도 전혀 없었다. 김 담-김 준 양 대표는 형제 간이다.

일신방직도 1951년 광주에서 설립된 오랜 역사의 방직기업이다. 최대주주인 김영호 대표이사 회장(21.62%) 등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 지분합계가 52.21%에 이른다. 양 사 모두 현재까지 경영권 분쟁 같은 것이 거의 없었던 안정된 지배구조라고 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상호 협력을 위한 자사주 맞교환’이란 설명이 일면 설득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자사주를 강제소각당하느니 맞교환이라도 해두면 나중에 여러 용도로 쓸모가 있지 않겠느냐는 이해관계가 서로 맞아떨어진 것으로 보인다.

일신방직의 주요 주주 현황


이에 앞서 지난 달에도 자사주 맞교환 사례가 있었다. 지난 28일 금감원의 직간접 압력으로 자사주 교환대상 교환사채 발행을 철회했던 광동제약이 그 중심 기업으로, 광동제약과 삼화왕관, 금비 등은 지난달 30일 장외매각 방식으로 서로 자사주를 맞교환했다.

광동제약이 당시 처분한 자사주 7.12%는 삼양패키징, 삼화왕관, 금비 등이 인수했다. 대신 광동제약은 삼화왕관과 금비의 자사주를 자사주 처분 금액 만큼 인수했다. 광동제약 등 4사의 이날 자사주 거래는 모두 똑같은 30일 증시 개장 전 장외매각 방식으로, 거래시간도 똑같았다. 모두 광동제약과 오랜 거래관계가 있는 기업들이라는 공통점도 있다.

우호적인 기업들끼리 자사주를 서로 교환해 보유하고 있다가 경영권 분쟁 등 유사시 우호 지분으로 활용할 수 있는 이른바 ‘자사주 백기사’ 활용 사례라고도 볼 수 있다. 물론 정부-여당의 자사주 강제소각 움직임에 맞대응하려는 취지에서 출발했지만.

경방 김용완 창립자


한편 경방은 일제 강점기에 ‘우리 옷감은 우리 손으로’라는 창업 이념으로 1919년 경성방직으로 출범한 유서깊은 기업이다. 기업 역사 100년이 넘는다. 1956년 우리나라 증권거래소가 설립될 때 1호로 상장되었다.

김용완 경방 창립자와 그 아들 김각중 전 회장은 대를 이어 전경련 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김용완 창립자의 부인이 고려대-동아일보 창립자인 고(故) 김성수 초대 부통령의 여동생이다. 김성수의 동생이 또 고 김연수 삼양사 창립자다. 삼양그룹과 경방은 사돈관계 기업이다.

삼양그룹도 경방처럼 현재 창립자의 후손들이 형제경영을 하고 있다. 김연수의 손자들인 김윤-김량 형제가 각각 회장과 사장을 맡고있다. 공교롭게도 호남 기반 양 사돈기업들이 모두 나란히 형제경영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