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은 LS그룹 회장

더트래커 = 김상년 기자

LS에코에너지 지분을 보유 중이던 LS그룹 구씨 오너 일가 8인이 지분 전량을 매각했다.

지난 16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공시에 따르면 구자열 LS 이사회 의장과 구자은 현 LS그룹 회장, 구자균, 구자용, 구자철, 구은희, 구원경, 구민기 등 구씨 8인은 보유 중이던 LS에코에너지 지분 6.31% 전량을 747억원에 매각 처분했다.

구원경, 구민기 두 사람은 지난 14, 15일 장내매도 방식으로 처분했고, 나머지 6인은 지난 14일 시간외대량매매(블록딜) 방식으로 함께 보유지분을 모두 처분했다. 블록딜 처분단가는 주당 38450원으로, 시장가보다 낮은 할인 블록딜이었다.

LS에코에너지 대주주에는 이들 8인 외에 구씨 오너가 없었다. LS전선이 지분율 63.88%로, 최대주주다. 이번 매각으로 LS에코에너지 대주주 명단에서 구씨들이 모두 사라진 셈이다.

구씨 8인의 최근 LS에코에너지 지분 전량 매각 관련 공시


이들 8인은 지분 전량 매각 사유로 ‘계열사 지분 매입’이라고 밝혔다. 이번 매각 자금으로 지주사 LS 지분을 사들여 오너 일가 지분율을 더 높이는데 쓸것으로 알려진다. 특히 호반그룹이 올들어 LS 지분을 3% 가까이 확보하며 지배구조를 위협하는데 따른 대응책의 일환이라고 한다.

LS그룹과 호반그룹은 각각의 주력사인 LS전선과 대한전선이 전선업계 1, 2위를 다투다 특히 해저케이블 분야에서 특허 침해 갈등이 벌어지면서 그룹들까지 나서 현재 총력전을 벌이고 있다. 호반이 확보한 LS지분 3%는 LS전선이 대한전선에 특허권 침해 및 기술 유출 책임을 묻는 과정에서 ‘협상카드’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고도 알려져 있다.

호반의 LS지분 매입 사실은 공교롭게도 지난 2월 LS전선과 대한전선의 특허권 침해소송 2심 재판을 하루 앞두고 알려졌다. 재판에선 LS전선이 1심과 2심 모두 승소했다. 호반은 2021년 대한전선을 인수, 전선사업에 진출했는데, 양 전선사는 2019년부터 소송전을 벌이며 대립해왔다.

대한전선이 LS전선 해저케이블 기술을 탈취했다는 의혹에 대한 경찰 수사까지 나오면 경찰 수사 결과에 따라 LS전선이 대한전선을 상대로 조단위 소송전까지 벌일 수 있는 상황인 것으로 알려진다.

구씨 8인 지분 전량 매각후 LS에코에너지 최대주주 현황


호반이 확보한 3% 정도의 지분은 수치상으로는 별로 커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상법상 지분 3% 이상을 확보한 주주는 임시주주총회 소집청구, 주주 제안, 회계장부 열람권, 이사및 감사 해임청구권 등의 주주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안건들을 통과시킬 정도는 안되지만 기회 있을때마다 LS를 괴롭힐 수 있는 카드들이다. 상법 개정으로 소액주주들과 잘 연합하면 감사위원 사외이사를 LS 이사회에 진출시킬 수도 있다.

이런 상황인데다 자금력이 풍부한 호반그룹은 여러 계열사를 동원, LS 지분 추가 매입에 나설 가능성도 상당한 것으로 알려진다. 같은 호남 기반 기업으로, 호반과 툭수관계인 하림그룹까지 호반 편에 가세할 조짐도 문제다. 하림 계열 팬오션은 지난 5월 갑자기 LS 지분 0.24%를 123억원에 취득한 바 있다.

이것도 호반의 요청에 따른 지분 매입이 아닌가 LS측은 의심하고 있다. 재계도 그간의 양 그룹 관계로 볼때 충분히 연합전선을 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호반은 2023년 하림이 국내 최대 해운사 HMM 인수를 추진할 때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하림의 우군 역할을 해준 것으로 알려진다. 이번에는 하림이 도울 가능성이 충분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런 변수와 위협들 때문에 이번에 LS 오너 일가들이 행동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LS 측은 앞으로도 오너일가의 추가 지분 매입 노력과 함께 다양한 우군 확보에도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LS그룹은 올 초부터 이미 한진그룹과 손을 잡고 있다. 한진그룹도 그룹 지주사인 한진칼 경영권을 두고 호반그룹과 갈등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호반그룹은 계열사들을 동원, 한진칼 주식을 사들이며 지분율을 현재 18.46%까지 끌어올린 상태다.

LS는 한진그룹과 지난 5월 상호협력 MOU를 체결하고 대한항공을 대상으로 자사주 38만7365주를 교환대상으로 하는 650억원 규모의 교환사채를 발행했다. 유사시 지분협력 등으로 서로 돕자는 취지로 알려져 있다.

지난 9월19일 기준 LS의 최대주주및 특수관계인 지분 합계


구씨 8인이 이번 매각대금 전액을 LS지분 매입에 투입할 경우 지분 1.3% 안팎을 추가 매입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구자열 의장 등 LS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들의 지분합계는 32.6% 정도다. 이 지분까지 가세하면 34%선에 육박한다. 여기에 대한항공 교환사채에 묶여있는 LS 자사주 1.22%도 우호지분으로 가세하면 35%를 넘어간다.

무엇보다도 유사시 또 다른 우호지분 등으로 활용할 수 있는 자사주가 LS에는 아직 12.5%나 더 남아 있다. 이 자사주까지 포함하면 전체적인 우호지분은 48%선에 육박한다. 보통 이 정도면 어떤 경영권 분쟁이 벌어지더라도 방어에는 넉넉하다는게 정설이다.

문제는 이 48%의 응집력이다. LS 지분은 구씨 세 가문이 몇 대에 걸쳐 조금씩 나누어 갖고 있어 여기에 이름을 올린 구자열 의장 친인척만 모두 43명에 달한다. 유사시 이들이 합심 단결해 100% 똘똘 뭉친다면 다행이지만 몇명이라도 이탈한다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거기에다 자사주를 경영권 분쟁의 방어무기로 쓰기에는 요즘이 극히 조심스런 분위기라는 점도 문제다. 자사주를 우호지분 등으로 쓰는 것을 막고 오로지 주주환원 용도로만 돌리도록 현 정부가 현재 자사주 소각을 의무화하는 상법 개정 움직임을 본격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상장기업들은 법 개정 전에 교환사채 발행이나 매각 등으로 탈출하는 움직임도 현재 적지 않다. 하지만 LS 같은 대그룹은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다. 어슬프게 도망가려다 정부에 찍히는 것은 물론 소액주주들의 강력한 반발을 살 가능성도 있다.

지난 6월말 기준 LS의 자사주와 국민연금공단, 소액주주 지분현황


특히 전체주주의 43%에 달하는 소액주주는 앞으로도 중요하다. 소액주주들이 LS에 반기를 들고 호반 쪽에 호응할 경우 문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 있다. 그래서 LS 측은 자사주 처리 문제에는 더 조심하고 있는 분위기다.

지난 8월 말 50만주의 자사주를 선제 소각한 것도 이런 분위기에 호응하고 소액주주들의 환심부터 사기 위한 카드로 보인다. 자사주 기반 교환사채 발행이나 우호 기업에 대한 매각은 최후의 마지막 카드는 될 수 있지만 자칫하면 큰 역풍이 가능해 현재로서는 동원을 자제해야하는 상황이라는 얘기다.

설령 남은 자사주를 모두 소각해도 큰 손해는 아닐 것으로 보인다. 소각 분 만큼 최대주주 측 지분율도 같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자사주는 또 소액주주 등의 환심을 사야할 필요가 있을 경우 조금씩 소각하는 카드로도 쓸 수 있다.

IB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런 측면들을 모두 고려해 현재로선 동원할 수 있는 최선의 카드인 LS에코에너지 지분 매각부터 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더 이상의 무리수를 쓰는 것보다 44명에 달하는 친인척 및 대한항공 자사주 지분들 간의 일치 단결만 잘 이루어낸다면 어떤 공격에도 충분한 방어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8월말 LS의 자사주 매각 공시


한편 경영권 분쟁 가능성에다 LS 대주주들의 지분 추가매입 소식까지 전해지자 LS 주가는 3일 연속 상승하다 17일에는 약간 하락했다. 하지만 17일 종가도 17만8800원으로, 작년 말 9만4300원에 비하면 90%나 올라있는 상태다. 호반이나 하림 측도 주가 상승에 미소를 짓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LS 2대주주인 국민연금도 지난 6월 말 12.94%이던 LS 지분을 최근 13.31%까지 높였다. 경영권분쟁 모습이 거듭될수록 주가가 올라갈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