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림그룹 김홍국회장 장남인 김준영 대표


더트래커 = 이태희 기자

하림그룹 최대주주인 김홍국 회장의 장남 김준영 JHJ 대표이사(33)가 작년부터 갑자기 개인기업들의 지주사 지분을 조금씩 늘리고 있어 그 배경이 주목된다.

하림그룹 공식 지주사인 하림지주는 지난 14일 공시를 통해 현재 하림지주 지분 16.69%를 보유 중인 계열사 한국바이오텍이 오는 11월13일부터 12월12일까지 한달 간 하림지주 지분 2.02%(226만주)를 장내 매수 방식으로 추가 취득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난 10일 하림지주 종가 주당 7200원으로 계산하면 163억원1720만원이 장내매수에 동원된다. 장내매수가 끝날 경우 한국바이오텍의 하림지주 지분율은 18.71%로 높아진다.

지분 추가취득 목적은 책임경영 및 경영안정화라고 밝혔다. 최대주주 등이 지분 추가 매입 때 주로 동원하는 용어들로, 최대주주 등의 지주사 지분율을 더 높여 혹시라도 있을 경영권 분쟁 등에 대비하겠다는 뜻으로도 들릴 수 있다.

한국바이오텍의 하림지주 지분 추가매입 관련 14일 공시


현재 하림그룹의 경영권이 어딘가 불안하다는 뜻일까? 하지만 하림지주의 주주 구성을 들여다보면 적어도 외형상으로는 그럴 기미가 거의 없어 보인다. “도대체 뭐지?”하는 의문만 남길 뿐이다.

이 공시가 있기 전까지 가장 최근인 지난 6월 말 기준 하림지주의 주요 주주 구성을 보면 김홍국 회장이 21.10%, 계열사들인 한국바이오텍 16.69%, 올품 5.78%, 경우 1.27%, 농업회사법인 익산 0.73%, 에코캐피탈 0.24% 등이다. 김 회장 부인인 오수정씨 지분율도 2.52%다.

김 회장의 다른 친인척들과 계열사 임원 등의 지분을 모두 합친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 지분 합계는 48.50%에 달한다. 상장사의 경우 이 지분합계가 30%선을 넘으면 보통 안정권이라고 하는데 그보다 훨씬 높다. 이 지분들이 일치 단결돼 있다면 ‘경영권 분쟁’ 같은 얘기가 나오기 어려운 구조다.

이 지분들을 좀더 자세히 분류해보면 궁금증이 어느 정도 풀릴 수 있는 단서들이 있다. 우선 닭고기 제조업체인 올품은 김 회장 장남 김준영 대표가 지분 100%를 갖고있다. 또 올품은 한국바이오텍과 에코캐피탈 지분 100%씩을 갖고있다.

이 세 회사는 모두 김준영 대표 개인기업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에 비해 경우와 익산은 김 회장 지분이 각각 80% 및 78.7%인 회사들이다. 김준영 대표도 익산 지분 11%, 또 김 대표 개인회사인 올품도 경우 지분 20%를 갖고 있지만 경우와 익산은 아무래도 김 회장이 직접 장악하고 있는 회사라고 볼 수 있다.

3곳 김 대표 기업들의 하림지주 지분을 모두 합치면 22.71%이고, 김 회장과 김 회장 관련기업들의 지분을 합치면 23.10%다. 0.39%포인트 차이로 아버지가 미세하게 우세하다. 김 회장 부인 오수정씨(62) 지분 2.52%가 남편 아니면 아들 편으로 가는가에 따라 지분 우세가 또 달라질 수 있다.

하림지주의 지난 6월말 기준 최대주주및 특수관계인 지분 현황


이런 오묘(?)한 지분구조는 지난 2018년 하림그룹이 여러 중간지주사 등을 합쳐 통합지주사 하림지주를 만든 이후 큰 변화없이 거의 그대로 유지돼 왔다. 김 회장은 지난 2012년 한국썸벧판매(현 올품) 지분 100%를 장남인 김 대표에게 증여하면서부터 이런 구조를 설계한 것으로 알려진다. 김 대표의 당시 나이는 20살이었다.

중간에 지주사 통합, 사업조정에 따른 합병과 분할, NS홈쇼핑의 지주사 완전 자회사화 등에 따른 미세한 지분 조정들이 있긴 했지만 이 구도는 대체로 유지되었다. 특히 아버지나 아들 기업들이 일부러 지분을 늘린 사례는 지난 10여년 간 적어도 회계장부상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하림그룹에 밝은 한 재계 관계자는 “최근 몇년 간 한국타이어-한미약품-콜마그룹 등에서 가족간 또는 부자간 경영권분쟁이 발생, 일부 재계 총수들이 긴장하고 있지만 하림은 김 회장의 장악력이 워낙 단단한 것으로 잘 알려져있다”며 “그런 자신감에서 이미 10여년 전부터 이런 다소 아슬아슬해 보이는 구조를 만들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바이오텍의 지분매입 계획 완료 후 하림지주 지분율


10년 이상 유지되던 이런 구조에 첫 미세 변화가 온 것은 작년 초다. 작년 1월15일과 16일 김 대표 관련기업인 에코캐피탈이 모두 27만주의 하림지주 주식을 장내에서 매수한 것이다. 장내매수에는 모두 20억원이 들어갔다.

지분율 0.24%로, 많은 양은 아니었지만 이 매수로 에코캐피탈도 처음 하림지주 주주명단에 들어갔다. 그 이전에는 하림지주 지분이 없었다.

이번에 공시된 한국바이오텍 지분 매수(계획)는 김 대표 측의 사실상 두번째 지분 늘리기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올 연말 지분 매수가 계획대로 완료되면 김 대표측 지분이 처음으로 아버지 김 회장 측 지분합계를 앞설 수 있다. 물론 김 회장 부인과 계열사 임원들 지분이 아버지 편이라면 여전히 김 회장이 우위를 점하겠지만...

공정위가 그린 자산기준 재계 30위 하림그룹 소유지분도


김 대표 측은 왜 작년부터 이런 시도를 하고 있을까? 하림지주 공시에선 ‘책임경영 및 경영안정화’란 표현 외에 다른 설명이 없어 김 대표 측의 의도를 정확히 알기 어렵다. 다만 몇가지 추측만 가능할 뿐이다.

우선 김 회장이 여전히 강력한 그룹 장악력을 바탕으로 이런 움직임도 직접 설계하고 지휘하고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김 대표의 나이(33세)나 경력 등으로 볼 때 그가 독립적으로 무슨 일을 도모하기에는 아직 너무 이르다는게 그 근거다.

김준영 대표는 25세 때인 2018년 하림지주에 입사, 경영수업을 시작했으나 2021년 올품에 대한 공정위와 국세청 조사가 본격화되자 퇴사했다. 올품은 여러 계열사들의 도움으로 회사를 크게 키우다 부당지원 및 일감몰아주기, 변칙증여 혐의 등으로 2021년 공정위로부터 시정명령과 함께 49억원의 과징금 부과조치를 받은 바 있다.

김 대표에게 세금을 최대한 덜 내고 변칙 경영권 승계를 하려는게 아니냐는 혐의였다. 자신 때문에 여론도 좋지 않자 당시 일단 퇴사라는 출구를 찾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김 대표는 하림그룹의 팬오션 인수 때 공동투자했던 사모펀드 운영사 JKL파트너스에 입사해 해운업 투자업무 등을 담당하다 작년 말 다시 퇴사했다.

JKL파트너스 재직 당시에는 하림과 이 사모펀드의 HMM 공동인수 작업을 김대표가 직접 담당한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이 인수는 실패했다. 김 대표는 JKL파트너스 퇴사 후 지난 2월부터 팬오션 경영기획실의 투자기획팀 책임으로 근무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팬오션은 현재 하림그룹에서 덩치가 가장 크고 이익도 가장 많이 내는 새 주력기업이자 그룹 캐시카우다. 이 때문에 일부 언론은 김 대표가 4년 만에 주력 계열사로 복귀해 경영수업을 다시 시작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김 대표는 이 자리 말고도 몇 년 전부터 하림그룹 부동산 관리회사인 JHJ 대표이사와 NS홈쇼핑 사내이사, 그리고 이커머스 계열사인 글라이드의 사내이사 등도 맡고 있다. 하지만 이런 경력들만으론 독자 행동을 하기에는 아직 일천해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김홍국 회장 장녀 김주영씨의 하림지주 상무 보직 관련 공시


김 회장에게는 김 대표 외에 김주영(37), 김현영(30), 김지영씨 등 세 명의 딸들도 있다. 이 세 사람은 JHJ 지분을 각 25%씩, 다른 계열사 지포레 지분은 25~30%씩 갖고 있다. 하림지주 지분은 김주영, 김현영씨가 0.01%도 안되는 4381주씩 갖고 있다.

장녀 김주영 하림지주 상무는 2015년 그룹에 합류한 이후 현재 전략기획담담임원으로, '더미식', '하림펫푸드' 등 브랜드 사업을 주도하며 하림의 신사업 영역에서 입지를 다지고 있다. 차녀 김현영 씨와 삼녀 김지영 씨도 작년 하림지주에 합류한 이후 신규 이커머스 사업 등에서 속도를 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 때문에 작년 두 여동생까지 하림지주로 들어오자 김 대표가 조바심을 느껴 일종의 독자행동에 들어간게 아니냐는 관측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세딸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우세한 김 대표의 하림지주 지분 등을 감안할 때 유력설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들이 많다.

대신 아직 장악력이 견고한 아버지 김 회장이 현재의 지배구조를 적절히 이용, 아들에게 서서히 조금씩 지주사 지분을 넘겨 주면서 결국은 올품을 최상위 지주사로 만들어 경영권 승계작업을 마무리하려는게 아니냐는 시각이 더 우세하다.

‘현재의 지배구조’란 멀쩡한 지주사를 두고 그 위에 지주사 지분을 다량 보유하는 올품, 한국바이오텍 등의 계열사가 또 있는 이른바 ‘옥상옥 지배구조’를 말한다. 지배구조의 단순화와 투명화라는 지주사 설립 취지와도 한참 먼 구조여서 그동안 하림은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자산기준 재계서열 30위 이내 그룹 들 중 이런 구조를 갖고있는 그룹은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많은 비판에도 하림이 이런 구조를 고집하고 있는 것은 올품 등의 지주회사화에 많은 돈이 들고, 올품이 또 과거 일감몰아주기 이력 등으로 비판을 받았던 기업이기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올품의 별도기준 재무상태표


실제 올품의 재무지표 등을 보면 지주회사 요건에 아직 모자라는게 사실이다. 작년 말 별도기준 자산은 3366억원으로, 지주사 기준 5천억원에 1천억원 이상 모자란다. 총자산 대비 자회사 투자주식 비중도 50%를 넘어야하는데, 작년 말 이 비중은 23.7%에 불과하다.

또 상장기업은 30% 이상, 비상장기업은 50%가 안되는 관계기업 지분은 모두 정리하든가, 30%, 50%를 넘겨야하는데, 이를 감당할 재무여력이 올품 단독으로는 충분치 않은게 사실이다. 이 회사의 작년 말 별도기준 현금및현금성자산은 225억원, 이익잉여금은 1670억원에 각각 불과하다.

하지만 올품과 100% 자회사인 한국바이오텍과 에코캐피탈 3사를 합치고, 이를 최상위 지주사로 바꾼다고 가정하면 상황이 달라진다. 작년 말 올품의 연결기준 총자산은 1조2682억원, 이중 관계기업투자주식은 8342억원, 연결기준 현금및현금성자산과 이익잉여금은 각각 301억원 및 6303억원에 달한다.

조금만 더 연구하면 큰 돈 안들이고 3사를 합쳐 최상위 지주사로 만드는 방법도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려면 3사가 지분을 갖고있는 상장기업 하림지주 지분 30%선을 우선 넘겨야한다. 작년과 최근 사례처럼 3사의 보유자금을 활용, 기회가 될 때마다 하림지주 지분을 사모으면 불가능할 일도 아니다.

올 연말까지 한국바이오텍의 하림지주 매입이 끝나면 올품 3사의 하림지주 지분은 24.73%로 상승한다. 여기에다 최근 하림지주는 보유 자사주 전량(13.16%)를 교환사채로 발행한 바 있다. 이 사채의 주식 교환청구는 이미 지난달 15일부터 가능하다.

사채를 매입한 곳들이 앞으로 교환청구를 하면 할수록 올품 3사의 하림지주 지분율은 더 상승한다. 여기에 올품 3사가 앞으로도 하림지주 지분을 계속 매입하면 지주사요건 30%를 넘기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올품의 최대주주 관련 공시


올품 3사가 보유하고 있는 관계사 지분들을 정리하는 일만 남는다. 이 물량도 그리 많지 않아 잘 연구하면 해결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IB업계의 한 관계자는 “그렇게 해서 올품 3사가 합병 후 최상위 지주사로 탈바꿈하면 김준영 대표로의 경영권 승계는 현 지주사 하림지주를 이용하는 것보다 더 큰 돈이 들어가지 않는 효과적 방법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방법에도 변수는 있다. 최대 변수는 비판여론이다. 과거 일감몰아주기 의혹이 많았던 기업을 또 이용한다는 점과 결국은 각종 ‘아빠찬스’를 활용해 큰 돈(세금) 안들이고 변칙승계하는게 아닌가 하는 비판들이다. 사실 김 대표가 지금까지 하림지주 대주주가 되기까지 들인 자기자금은 2012년 올품 지분 100%를 증여받을 때 냈다는 100억원 안팎의 증여세가 거의 대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김 회장에게는 이런 점들이 최대의 고민거리일 것이다. 아직 젊은 김 회장(68세)으로선 시간을 더 끌면서 비판여론이 최대한 잠잠해질 때를 노리는 방법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