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크래커 = 박지훈 기자
롯데그룹 전반의 신용등급이 흔들리고 있다. 롯데케미칼이 6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한 탓이다. 롯데지주는 등급 하락 압력 속에 기존처럼 회사채를 발행하지 않고 단기 기업어음(CP)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고 있다. 자회사 부진 → 등급 부담 → 자금 조달 전략 변화라는 구조적 흐름이 감지된다.
롯데케미칼은 2023년 4분기를 시작으로 2025년 1분기까지 6개 분기 연속으로 영업손실을 기록하고 있다. 올해 1분기 실적은 매출 4조9018억원, 영업손실 1266억원, 순손실 2463억원으로, 전년 대비 순손실 폭은 3배 이상(307.5%) 확대됐다. 이는 에너지 가격, 석유화학 업황 침체, 글로벌 수요 부진 등이 겹치면서 나타난 손실이다. 상각전영업이익(EBITDA)은 1730억원으로 작년 1분기(1714억원) 보다 소폭 증가했지만, 실질적인 수익성 개선으로 보기 어렵다.
문제의 핵심은 이 실적 부진이 단순한 일시적 침체가 아니라는 점이다. 한국기업평가, 한국신용평가, 나이스신용평가가 설정한 ‘등급 하향 트리거’는 이미 2022년부터 3년 연속으로 초과된 상태다.
한국기업평가가 설정한 등급 기준인 순차입금/EBITDA 3.5배 초과 항목은 최근 3년(2022, 2023, 2024) 평균 13.2배에 달했으며, 2025년 1분기 기준으로도 9.7배로 여전히 기준치를 크게 초과하고 있다. 이로 인해 롯데케미칼의 신용등급은 ‘AA, 부정적’으로 고정된 상태다.
한국기업평가는 “2025년 업황 반등은 제한적”이라며, 중기적으로도 순차입금/EBITDA가 8~10배 수준으로 유지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여전히 트리거 상회 수준이다. 신용평가사들은 롯데케미칼의 ‘에셋라이트 전략’의 성과 여부, 석유화학 업황 회복 가능성 등을 향후 등급에 반영하겠다는 입장이다.
롯데케미칼의 신용등급이 흔들리자, 이를 기반으로 신용도가 산출되는 롯데지주에도 여파가 번지고 있다. 롯데지주는 롯데케미칼, 롯데쇼핑, 롯데칠성 등 계열사의 신용도를 종합해 등급을 받는데, 그중에서도 롯데케미칼의 비중이 가장 크다. 따라서 롯데케미칼 등급이 하향되면 롯데지주의 신용등급도 동반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
롯데지주는 등급 부담을 의식한 듯, 올해 처음으로 공모 회사채 발행을 포기했다. 2021년부터 4년 연속 1~2월에 공모채를 발행해왔으나, 올해는 이례적으로 이를 건너뛰었다. 만기도래한 3400억원 규모 회사채도 CP(기업어음)로 대체했고, 1분기 말 기준 5600억원이던 CP 잔액은 현재 1조1450억원까지 급증한 상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롯데지주는 롯데글로벌로지스 IPO 철회에 따라 계획 외 현금지출이 발생했다. 롯데글로벌로지스 2대 주주 LLH가 지난 12일 행사한 풋옵션(747만2161주, 21.87%)으로 롯데지주는 약 3074억원을 지출해야 한다. 하지만 1분기 기준 보유 현금성 자산은 고작 55억원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추가적인 자금 조달 필요성이 커졌지만, 신용등급 부담 탓에 공모채보다는 CP나 사모채 등 비공개성 수단을 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롯데케미칼은 자산 경량화 및 운영 효율화를 통해 5조원 규모의 현금 창출 계획을 진행 중이다.
롯데케미칼의 실적 개선 없이는, 그룹 전체의 자금 조달과 신용도에 위험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롯데지주 입장에서는 자산 매각과 유동성 확보라는 단기 대응 외에도, 핵심 자회사의 수익성 회복 없이는 신용등급 방어가 어려워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