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케미칼 대산 공장


더트래커 = 이태희 기자

심각한 업황 불황에도 현재 자발적인 구조조정이 지지부진한 석유화학업계와 관련, 선제적 구조조정업체에 대한 혜택 제공 또는 일부 강제성 부여 등 정부정책이 동반되어야 석유화학 구조조정에 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한국신용평가(이하 한신평)는 11일 보고서에서 업계 전반의 위기 상황에 대한 공감대에도 불구하고, 업체별 상이한 이해관계, 선제적 구조조정 실행 시 발생할 수 있는 손실부담 등으로 자발적인 구조조정이 빠르게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면서 이같이 지적했다.

한신평은 또 구조조정 방안으로는 울산, 여수, 대산 등 석유화학 단지별 NCC 설비통합이나 공동운영 방식으로 실질 생산능력을 축소하는 것이 단기적으로 가장 현실성 있는 방안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가령, A설비와 B설비 모두 낮은 가동율로 가동되는 상황에서, 통합 운영을 통해 A설비는 가동 효율을 높이고, B설비는 생산을 중단하는 방식으로 변경하면, 공급과잉 완화와 생산 제품의 원가 경쟁력 개선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글로벌 에틸렌및 프로필렌 수급전망


한신평에 따르면 국내 석유화학 밸류체인 중 수익성 저하 폭이 가장 크고, 실적 부진 기간도 가장 긴 부문은 에틸렌, 프로필렌 등의 업스트림 올레핀 제품이다. 중국의 설비증설과 자급률 상승으로 공급과잉이 심화되었고, 범용 제품으로 업체 간 품질 차별화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업스트림, 즉 NCC설비의 통폐합 혹은 효율화 논의가 지속되고 있지만 여러 이유로 자발적 구조조정은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한신평은 올레핀 계열의 과중한 공급부담은 적어도 2027년경까지는 완화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한신평은 에틸렌, 프로필렌 등 범용성 올레핀 제품의 생산 비중이 높은 대표적 국내 업체들로 롯데케미칼, 여천NCC, SK어드밴스드, 효성화학 등을 꼽았다. 이 업체들에선 모두 심각한 실적악화와 신용등급 하향기조가 지속되고 있다.

이들 외 방향족 제품이 주력인 SK지오센트릭과 HD현대케미칼도 가솔린 블렌딩 수요 약화, 중국경기 둔화 및 전방 PTA 공급과잉 등으로 작년부터 영업적자로 전환되며 신용등급 하향 압력이 확대되었다.

이외 다운스트림 비중이 높은 업체들은 개별 상황에 따라 업황이 다르다. LG화학은 수익성 하락과 차입금 증가에 따른 커버리지 지표 저하에도 불구하고 석유화학 부문에서 경쟁사 대비 양호한 수익성 방어 수준, 2차전지 부문의 이익창출력 개선 전망, 향후 투자 축소 및 비핵심 사업 매각 계획 등의 영향으로 신용등급이 아직 떨어지지 않았다.

금호석유화학은 우수한 재무구조, 합성고무 제품에서의 우수한 시장지위와 고부가 제품 확대 등에 기반한 이익창출 기조 지속 등으로 다른 석유화학 업체들과 차별화되는 실적 추이를 보이고 있다고 한신평은 설명했다.

반면 SKC는 주력인 화학 및 2차전지 소재(동박) 부문의 동반 실적부진으로 영업적자가 지속되고 있고, 대규모 투자로 재무부담이 확대되었다. 한신평은 여기에 이익창출력 대비 높은 수준의 재무부담이 지속될 것으로 추정되는 점 등을 감안, 최근 이 회사의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했다.

국내 주요 석유화학업체들의 영업실적 추이


한신평은 업체별 비핵심 사업 및 자산 매각 등 자구안 실행을 통해 재무부담이 완화되고, 산업 구조조정을 통한 수익성 개선이 동반되어야 비로소 석유화학 산업의 신용도 하향 압력이 완화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중국의 대규모 설비증설, 미국의 관세 부과 및 지정학적 리스크 확대 등 글로벌 시장

의 비우호적인 영업환경, 국내산업 구조조정에 시일이 소요되는 점 등을 감안하면 수익성 회복세는 더디게 나타날 가능성이 높으며, 이 때문에 석유화학 산업의 신용도 하향 압력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국내 업체들이 자산 매각및 생산중단 현황(한신평 정리)


한편 국내 석유화학업체들은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신규 투자를 축소하고, 비핵심 사업 및 자산 매각, 생산성이 낮은 일부 생산라인의 가동 중단이나 설비 간 통합 검토 등의 사업구조 개편과 재무안정성 제고에 주력하고 있다.

한신평에 따르면 LG화학은 지난 6월 수처리 필터 사업을 1.4조원에 양도하기로 결정했고, 추가적인 비효율·비핵심 자산 매각도 검토 중이다. 롯데케미칼은 해외 자회사 지분 매각(PRS 활용) 등을 통해 총 1.7조원의 유동성을 확보했고, 운영 효율화를 위해 SM·알코올, PET·EG 등 수익성이 낮은 일부 제품의 생산을 중단했다.

효성화학은 지난 2월 말 특수가스 부문을 9200억원에 매각했으며 6월에는 베트남 자회사 지분(PRS)을 통해 약 3800억원의 자금을 조달했다.

유럽과 일본업체들도 노후 설비를 중심으로 설비 폐쇄를 진행 중이다. 2024~25년 중 유럽은 에틸렌 기준 약 3~4백만톤, 일본은 1~2백만톤 규모의 생산능력이 축소될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중국은 에너지 효율이 낮은 소규모 크래커의 가동을 중단하는 대신 대규모 설비는 계속 확장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또한 2026년 S-Oil의 샤힌 프로젝트가 준공되면 에틸렌 1.8백만톤의 생산능력이 더 늘어날 예정이다.

현재까지의 글로벌 설비 축소는 증설 대비 제한적인 수준이며 추가적인 구조조정 성과 없이

는 수급 개선이 쉽지 않을 것으로 한신평은 전망했다.

국내 석유화학 산업의 위기 상황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정부 차원의 움직임이 진행 중이지만 추진 속도는 기대만큼 빠르지 않다고 한신평은 평가했다. 작년 12월 정부는 석유화학산업 경쟁력 제고 방안을 발표했지만 정부 주도 재편보다는 업체 간 자율적 구조조정을 유도하는 세제 혜택제공 등의 내용이 포함되었다.

이후 비상계엄 등으로 정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구체적인 후속 대책 발표가 지연되었다. 최근 정권교체 이후 여당 측에서 공정거래법 예외 적용, 세제 지원 등을 골자로 하는 석유화학

특별법을 발의하는 등 향후 새 정부의 대응책 마련에는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고 한신평은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