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크래커 = 박지훈 기자
연양갱 제조·판매사로 유명한 해태제과식품(해태제과)이 올 1분기 실적 부진과 법인세 납부 증가 등 여러 요인이 겹치면서 ‘현금 부족’ 상황에 직면했다. 영업을 통해 벌어들인 현금이 뚝 끊기다시피 하면서 보유 현금이 100억원 아래로 떨어졌고, 단기차입금 상환 능력에도 물음표가 붙고 있다. 문제의 시작은 수익성 하락이다. 그간 재무건전성을 회복해온 만큼 당장 위기로 번지진 않겠지만, 현금흐름 회복 없이 수익성이 더 악화되면 대응 여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20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해태제과의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은 135억원으로 전년보다 5.8% 줄었고, 순이익은 76억원으로 18.3% 감소했다. 매출은 1590억원으로 소폭 늘었지만, 내수 소비 둔화 탓에 실제 수익을 내는 힘은 약해진 것이다. 특히 외환차손, 충당부채 증가 등으로 기타비용이 3배 넘게 뛰면서 이익에 더 큰 타격을 줬다.
이익이 줄면 기업의 ‘현금 창출력’에도 즉각 영향이 간다. 해태제과의 1분기 영업활동 현금흐름은 단 8억9000만원에 불과했다. 전년 동기 171억9000만원에서 95% 가까이 줄어든 수치다. 쉽게 말해 본업을 통해 현금을 벌어들이는 속도가 급격히 느려진 것이다.
여기에 현금이 더 빠져나가는 요인이 한꺼번에 몰렸다. 우선 세금이다. 1분기 법인세 납부액이 32억원으로 전년(1억원)보다 30억원 넘게 증가했다. 지난해 수익에 대한 정산분이 이번 분기에 반영된 결과다. 운전자본 부담도 커졌다. 제품을 만들기 위해 쌓아둔 재고자산과 외상으로 물건을 넘긴 매출채권이 각각 25억원, 87억원 늘면서, 회사가 단기적으로 묶어둬야 할 돈(운전자본)이 20% 가까이 증가했다.
투자와 재무 활동에서도 현금 유출은 계속됐다. 투자 부문에서는 임차보증금 지출 등으로 72억원이 나갔고, 재무 활동에서는 지난해 1분기 159억원을 확보했던 것과 달리 올해 1분기엔 오히려 4000만원이 빠져나갔다. 이런 흐름이 겹치며 해태제과의 현금성자산은 99억원으로 줄었다. 지난해 말 163억원에서 불과 석 달 새 63억원이 증발한 셈이다.
해태제과식품이 만든 영양갱. 사진=해태제과식품
이렇게 보유한 현금이 줄어든 상황에서, 눈에 띄는 지점은 단기차입금 규모다. 올해 1분기 영결 기준 해태제과의 단기성 차입금은 621억원이다. 보유 현금의 6배를 넘는 규모다. 본업으로 돈을 벌어들이는 능력이 크게 떨어진 상황에서, 당장 갚아야 할 돈이 많다면 유동성 위기에 노출될 가능성이 생긴다.
물론 수치만으로 ‘위기’라 단정하긴 어렵다. 해태제과는 그간 꾸준히 재무 건전성을 회복해 왔다. 2019년 말 210%에 달했던 부채비율은 올해 1분기 기준 140.9%까지 떨어졌다. 최근 5년간 부채비율을 살펴보면 ▲2020년 말 135.5% ▲2021년 말 152.1% ▲2022년 말 172.3% ▲2023년 말 155.3% ▲2024년 말 140%를 기록했다.
올 1분기 차입금 의존도도 31.6% 수준에서 유지되고 있다. 2022년 아산 신공장 투자로 부채비율이 일시적으로 치솟았지만, 이후 영업이익 확대와 차입금 감축으로 점차 안정을 찾아가고 있는 상황이다.
단기차입금의 경우 2022년 866억원에서 지난해 581억원으로 줄었고, 영업이익 대비 차입금 규모도 점차 정상화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현금흐름만 회복된다면 재무구조 전반의 위기 가능성은 낮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러나 문제는 현금흐름 개선을 낙관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전체 매출의 90% 이상이 국내에서 발생하고, 해외 비중은 10%에 못 미친다. 내수 소비 둔화가 지속될 경우, 실적 개선 속도 역시 더딜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가격을 쉽게 올릴 수도 없다. 해태제과의 매출 원가율은 62% 수준으로, 원가가 높아 수익률이 낮은 구조다. 하지만 과자 가격을 100원, 200원만 올려도 소비자 반발이 크기 때문에 쉽사리 인상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대신 포장비 절감, 제품 크기 축소, 공정 자동화 등으로 원가 절감을 시도하고 있지만, 이 역시 한계가 있다.
해태제과가 기댈 수 있는 건 결국 상품력이다. 신정훈 대표는 2014년 ‘허니버터칩’으로 히트 상품을 만든 인물로, 이후에도 제2의 히트작을 위한 연구개발에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연구개발비는 전년 대비 14억원 늘어난 39억7000만원으로 증가했다. 최근에는 허니버터칩의 해외 수출도 확대하고 있다.
이병주 전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단기적으로는 원가절감과 재무 안정화로 버틸 수 있지만, 실적 반등이 없는 구조에서는 장기적 대응이 어렵다”며 “해외 매출 비중 확대, 제품 포트폴리오 다변화 등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해태제과는 크라운해태홀딩스를 지주사로 두고 있다. 크라운해태그룹의 시초는 1947년 고(故) 윤태현 창업주가 만든 ‘영일당제과’와 1945년 설립된 ‘해태제과합명회사’다. 윤 창업주는 윤영달 현 크라운해태홀딩스 회장의 부친이다. IMF 시기 경영난에 빠진 해태제과식품㈜를 ㈜크라운제과가 인수하면서 한 그룹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