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오후, 지식 프로듀싱 공간 '개항도시'에서 유시민 작가가 ‘대통령 노무현을 말하다’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2025.05.13. ⓒ사진=더트래커/박지훈 기자
더크래커 = 박지훈 기자
“세상을 바꿨다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니 물을 가르고 온 것 같았다.”
제21대 대통령 선거를 21일 앞둔 13일 오후 7시, 인천 중구 경동의 지식 프로듀싱 공간 ‘개항도시(한국레저경영연구소)’ 대강의실에서 유시민 작가는 강연 내내 담담하면서도 깊은 감정의 결을 실어 말을 이어갔다. 주제는 ‘대통령 노무현을 말하다’. 그가 국회의원, 보건복지부 장관 등으로 일하며 곁에서 바라본 노 전 대통령의 모습과, 한국사회가 여전히 마주하고 있는 ‘어긋남’을 이야기했다.
유 작가는 먼저 자신이 이 강연에 서게 된 배경부터 풀어놓았다.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지낸 인연과, 개인적 인간관계 속 ‘도저히 거절할 수 없었던 청’이 이 강연 수락의 이유였다고 밝혔다.
이어 인천이 지닌 역사적 맥락을 언급하며, 개항도시가 대한민국이 대륙 중심의 역사에서 해양 중심의 세계로 전환한 상징적 장소임을 상기시켰다.
“인천은 한국 근현대사에서 특별한 장소다. 구도심이 문화와 기억의 거점으로 거듭나길 바란다”며 인천에 대한 애정도 드러냈다.
13일 오후, 지식 프로듀싱 공간 '개항도시'에서 유시민 작가가 ‘대통령 노무현을 말하다’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2025.05.13. ⓒ사진=더트래커/박지훈 기자
이날 강연의 핵심 키워드는 ‘어긋남’이었다. “노무현이라는 사람을 떠올릴 때마다, 늘 어긋남이라는 단어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유 작가는 노무현 대통령 재임 당시 국민과의 관계, 언론과의 관계, 정치 세력과의 관계에서 지속적으로 드러났던 단절과 불화를 집요하게 짚었다.
대통령 재임 시에는 국정 지지율이 낮았지만, 퇴임 후 오히려 국민의 사랑을 받은 현상. 검찰·언론 개혁과 같은 구조적 과제의 실패. 한미 FTA를 둘러싼 진보 진영과의 충돌. 모두가 노 전 대통령의 정치적 고립을 심화시킨 요소였다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유 작가가 가장 강조한 것은 “대통령과 국민의 어긋남”이었다. 그는 국민이 요구한 것과 대통령이 해야 한다고 믿은 것 사이의 괴리가 정치적 불화로 이어졌고, 그것이 대통령을 외롭게 했다고 말했다. 그는 회상했다.
“노 전 대통령은 ‘국민이 나를 버려야 한다’고 말했지만, 정작 국민은 그를 완전히 떠나지 않았다.” 그 말엔 참담한 기억이 응축돼 있었다. 생전 노 전 대통령과 나눈 마지막 대화들, 그가 느꼈던 무력감과 고립, 그리고 유 작가 자신의 ‘냉정한’ 위로에 대한 뒤늦은 후회까지. 강연은 점점 개인적인 고백의 서사로 나아갔다.
13일 오후, 지식 프로듀싱 공간 '개항도시'에서 유시민 작가가 ‘대통령 노무현을 말하다’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2025.05.13. ⓒ사진=더트래커/박지훈 기자
‘어긋남’이 전부는 아니었다. 유시민은 오히려 지금이 “노무현 없는 노무현의 시대”라고 단언했다. 그는 국민의 정치의식과 판단력이 당시보다 훨씬 성숙해졌다고 평가하며, “그때 이해받지 못했던 많은 일들이 이제야 비로소 평가받고 있다”고 말했다.
전직 대통령 선호도 조사에서 노 전 대통령이 압도적인 지지를 받는 현실을 거론하며, “지금 이 변화는 국민들이 노무현이라는 정치인이 남긴 질문에 답해가는 과정일 수 있다”고 해석했다.
강연은 단지 회고에 머물지 않았다. 유 작가는 검찰 개혁, 언론 개혁, 양극화 해소, 신행정수도, 대연정, 남북관계 등 노 전 대통령이 시도했지만 마무리 짓지 못했던 수많은 과제들을 하나하나 되짚으며, 그것들이 왜 필요했는지, 왜 당대에는 받아들여지지 못했는지를 설득력 있게 풀어냈다. 동시에 “지금 와서야 우리가 그것이 필요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스마트폰과 유튜브가 등장하며 나타난 새로운 미디어 환경, 레거시 언론의 독점 분산, 소프트파워의 중요성까지 강연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가까운 미래를 끊임없이 오갔다.
13일 오후 , 지식 프로듀싱 공간 '개항도시'에서 유시민 작가가 ‘대통령 노무현을 말하다’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2025.05.13. ⓒ사진=더트래커/박지훈 기자
끝으로 유 작가는 “대통령은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한다. 결국 ‘국민이 대통령’이라는 말은 진심이었다”며 말을 맺었다. 그는 정치란 결국 농사와 같고, 밭을 탓하지 않으려는 농부와 그 밭이 서로 맞물릴 때에야 풍요로운 수확이 가능하다는 비유로 강연을 정리했다.
노무현이라는 이름 아래 남겨진 어긋남은 여전히 완전히 치유되지 않았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다. 국민은 그를, 그리고 그가 남긴 질문들을 아직 잊지 않았다. 그리고 그 답을 향한 길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