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트래커 = 김상년 기자
지난 15일 고려아연의 미국 현지 제련소 건설 발표로 MBK파트너스· 영풍 연합과 고려아연 최윤범 회장 간의 경영권 분쟁이 완전히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미국 전쟁부(국방부)와 상무부 지분이 다수인 한미합작법인이 고려아연의 3자배정 유상증자 방식을 통해 고려아연 지분 10% 이상을 보유하게 될 경우 이 새 주주는 사실상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의 백기사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아 보이기 때문이다.
이 합작 제련소 사업은 한미관세협상 이후 몇달 전부터 준비된 것으로 보이는데 MBK파트너스· 영풍 측은 낌새를 거의 눈치채지 못했는지 현재 크게 당황해 하는 모습이다. 당장 16일 신주발행금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내는 등 맹렬히 반발하고 있다. 지분율로는 열세에 있던 최 회장 측이 꾸민 회심의 반격타로 보인다.
정확한 양 측 지분이 공시되지 않아 우열을 정확히 판별하긴 아직 어렵지만 이 증자 카드가 성공할 경우 양 측 지분 격차가 크게 줄어드는 것만은 분명하다. 최 회장 측 숨은 우호지분에 따라 역전 가능성까지 있다는 일부 보도까지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우호 지분을 최대한 더 확보해 당장 내년 주총 때부터 이사회를 장악하려는 양측 간 암투는 앞으로 더 격렬해질 전망이다.
고려아연의 미국 제련소 건설 관련 지난 15일 공시
17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등에 따르면 고려아연은 지난 15일 이사회를 열고 미국 내 합작 비철금속 제련소 건설 투자 방안 및 3자배정 유상증자 안건 등을 의결했다. 고려아연과 미국 정부 및 방산업계가 합작법인(JV)을 세워 2029년까지 대규모 제련소를 설립한다는 계획이다.
고려아연은 제련소 건설의 목적에 대해 미국 전략광물 공급망 참여 및 미래 성장동력 강화라고 밝혔다. 미국 정부는 현재 핵심 광물 공급망 재편을 국가적 전략으로 추진하고 있는데, 여기에 전략적 파트너로 참여함으로써 글로벌 공급망 리스크 확대와 미국 내 비철금속 및 전략 광물 수요 증가에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공시에 따르면 미국 내 통합 비철금속 제련소 건설 및 운용은 고려아연이 미국내에 새로 만들 손자회사 Crucible Metals, LLC(이하 제련소운영법인)를 통해 진행된다. 아연, 연, 구리 등 주요 비철금속과 금·은 등 귀금속, 안티모니·게르마늄·갈륨 등 전략광물을 통합 생산 및 회수하는 복합 비철금속 제련소다.
기존의 미국 Nyrstar 제련소 부지를 인수한 뒤, 이를 활용해 기반시설을 재구축하고, 첨단 공정 기술을 적용해 핵심광물 11종을 포함한 총 13종의 금속 및 반도체용 황산을 생산할 예정이다.
제련소는 단계적 건설(2027~2029년)을 거쳐 단계적으로 상업 가동을 시작한다. 연간목표 생산량은 ▲아연 30만톤 ▲연 20만톤 ▲동 3만5천톤 ▲희소금속 5100톤 등이다.
예상되는 총 투자액은 74억3200만달러(한화 약 10.9조원) 규모다. 고려아연과 미국 정부 및 미국내 전략투자자가 출자한 합작법인 Crucible JV LLC(이하 합작법인)를 통해 19.4억달러를 조달하고 미국 정부의 정책금융 지원 및 보조금 프로그램, 재무적 투자자 대출 및 고려아연 직접 투자 등도 활용해 추진한다.
미국 정책금융 지원 대출 및 재무적 투자자 대출이 최대 46.98억달러이고, 미국 상무부 보조금 최대 2.1억달러, 고려아연 직접 투자 5.85억달러 등으로 최대 54.93억달러를 조달한다. 미국 상무부 보조금은 합작법인 지분 취득에 투입된다.
고려아연의 직접 투자금은 고려아연이 미국에 새로 설립하는 100% 자회사이자 미국내 지주사인 Crucible Metals Holdings, LLC(이하 미국지주자회사)에 출자하는 25.25억달러(3조7105억원)와 합작법인 출자금 9천만달러, 제련소운영법인 직접투자 5.85억달러 등 32억달러다.
총투자액 74.32억달러의 43% 정도로, 미국측 투자보다 약간 적다. 미국 지주자회사 출자액 25.25억 달러는 내년 1월에 19.4억달러를 먼저 출자하고 내년부터 2029년까지 나머지 5.85억달러를 나눠 출자하는 방식이다.
미국 지주자회사 출자액은 미국 지주사의 자회사로 고려아연 손자회사인 미국 제련소운영법인에 그대로 다시 출자된다. 이 돈이 미국 측 투자액과 합쳐져 제련소 건설과 운용에 투입되는 것이다.
직접투자가 미국 측보다 약간 적은 대신 채무보증은 고려아연이 많이 부담한다. 제련소운영법인도 고려아연이 100% 출자한 미국 지주사의 100% 자회사여서 제련소 건설과 운영은 고려아연이 100% 책임지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고려아연이 떠안는 채무보증은 제련소 운영법인에 대한 미국 상무부 대출 3086억원, 미국 전쟁부 대출 3조4519억원, JP모간체이스가 주선하는 신디케이트론 3조6738억원 등에 대한 채무보증이다. 직접 출자가 상대적으로 적은 대신 채무보증과 제련소 건설 및 운용은 거의 책임진다고 보면 된다.
고려아연 3자배정 유상증자의 배정대상자 선정 관련 공시
여기서 또 하나 눈길을 끄는 것은 제련소 건설 발표와 같은 날인 지난 15일 고려아연이 2조8508억원 규모의 제3자배정 유상증자를 결의했다는 점이다. 유상증자로 새로 발행될 고려아연 신주는 220만9716주이며, 신주 발행가는 기준 주가보다 9.77% 할인된 주당 129만133원이다. 신주 납입일은 오는 26일.
놀랍게도 이 3자배정 유상증자로 발행될 신주를 100% 떠안는 곳은 미국내에 새로 세워지는 합작법인 Crucible JV LLC다. 이 합작법인의 최대주주는 미국 전쟁부로 지분율 40.1%이며, 미국 상무부(보조금 2.1억달러 출자)와 고려아연(출자금 9천만달러)도 주주들이다.
한미합작이라지만 사실상 미국 전쟁부와 상무부가 주축인 합작사다. 미 전쟁부와 상무부가 주축인 출자금이 3자배정 유상증자 형태로 거꾸로 고려아연에 들어온다고 보면 된다.
고려아연은 무슨 재주로 사실상의 미국 정부 자본을 새 대주주로 끌어들였을까? 정확한 배경은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중국에 대응해 희소류 등 전략광물 확보가 시급한 미국 정부와 우호 지분이 필요한 최 회장 측 간의 이해 관계가 맞아 떨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미국 전쟁부가 최대주주인 고려아연 3자배정 유상증자 배정대상 미국 합작법인의 정체
아무튼 이 3자배정 유상증자가 성공할 경우 양측 간 지분 경쟁구도에 격변이 올 가능성이 높다. 지금까지 알려진 양 측의 고려아연 지분율은 MBK파트너스(8.76%)-영풍(35.48%) 연합이 44%선, 우호지분을 포함한 최윤범 회장 측 추정 지분율이 32% 안팎이었다. 지분율 격차가 12% 정도였다.
지난달 12일 기준 최 회장 및 특수관계자 합계 지분은 19.11%에 불과하지만 올해 상반기까지 9%가 넘던 자사주와 현대차 미국내 합작법인인 HMG글로벌(6월말기준 5.22%)과 한화, LG화학 등의 고려아연 지분까지 모두 최 회장 우호 지분으로 분류해 최 회장 측 지분을 32% 안팎으로 추정해왔다.
자사주에 대해 고려아연은 주주가치 제고 목적으로 보유 자사주 204만주를 지난 6월부터 올해 12월16일까지 3차례에 나누어 소각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 소각이 완료될 경우 지난 6월말 184만5598주(9.2%)에 달하던 자사주는 47만주(2.5%안팎) 선으로 크게 줄어든다.
또 3자배정 유상증자 납입이 오는 26일 완료될 경우 양 측 기존 지분율은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오는 26일 유상증자까지 끝났을 경우 MBK파트너스와 영풍 연합의 지분은 855만7148주 약 41%선으로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최 회장 측 지분율도 17.7%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지만 자사주 2.25%(증자완료후)와 유상증자로 새로 들어올 미국 합작법인 지분 10.59%를 우호지분으로 분류한다면 최 회장 측 지분은 30.54%로 늘어난다. 여기에 현대차-한화-LG계 지분들까지 모두 포함하면 37~38%선까지 올라갈 수 있다.
하지만 최 회장 측 우호지분들이 대부분 공시된게 거의 없어 정확한 계산은 어렵다. 숨어있는 우호지분들까지 모두 합하면 3자배정 증자로 최 회장 측이 이미 앞섰다는 일부 보도도 나오고 있다. 역전까지는 조심스럽지만 아무튼 지분 격차가 크게 줄어드는 것만은 확실하다.
물론 미국 합작사 지분을 최 회장 우호지분으로 분류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들도 적지는 않다. 하지만 우호지분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최 회장이 이것(우호지분) 때문에 미국 투자를 결정했을 가능성이 높다”면서 “당연히 유사시 우호지분 역할을 미국 측에 부탁했을 것이고, 미국 측도 동의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말했다.
이 가정이 맞다면 3자배정 증자가 완료될 경우 경영권 분쟁 구도에는 격변이 올 수 밖에 없다. 지분율이 훨씬 앞섰을때도 MBK파트너스-영풍 연합은 고려아연 이사회를 장악하지 못해 고전해 왔는데, 지분 격차가 크게 줄어들면 더 고전이 불가피하다.
이렇게 되면 내년 3월 주총에서 최 회장 측 이사수부터 줄여 경영 견제를 강화하려던 영풍 측 계획부터가 크게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직무 정지된 이사 4명을 제외하고 최 회장 측 11명 대 MBK·영풍 4명인 현재 이사회 구도를 8 대 7까지로 추격한다는게 MBK·영풍의 1차 목표였다.
이 때문에 MBK·영풍 연합은 현재 격렬하게 반발하며 소송전까지 불사하고 있다. MBK·영풍은 발표 당일 입장문을 통해 "고려아연은 미국 정부와 기업들의 출자금을 모아 JV(합작법인)를 신설하고 이 JV가 유증에 참여하는 매우 이례적 방식을 택했다"고 지적했다.
또 "이같은 복잡한 우회 출자 구조는 자금 조달 목적이라기 보다 경영권 분쟁 상황에서 우호 지분을 확보하기 위한 지배구조 개입이라는 의심을 피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MBK파트너스·영풍 연합은 또 해외 제련소 건설 건이 중대한 경영 사안임에도 사전 보고를 받지 못했고, 논의 과정에서도 철저히 배제됐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회사의 사업적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최 회장의 경영권 방어를 위해 ‘아연 주권’을 포기하려 한다고도 비판했다.
결국 절차적 문제와 과도한 재무 부담, 지배구조 변화 가능성을 문제 삼으며 16일 법원에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무효화하라는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지난 16일 MBK파트너스-영풍 연합이 제기한 가처분소송 공시
소송 전망에 대해서는 현재 관측이 크게 엇갈린다. 하지만 최 회장 측의 이런 행보가 미국의 핵심광물 안보 강화, 한-미 관세 협상 흐름과 맞물려 있다는 점은 최 회장 측에 일단 유리해 보인다.
미국은 중국에 대한 제련업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고려아연에 주목했다. 지난 8월 이재명 대통령 미국 순방 때 최윤범 회장도 동행해 관련 논의를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즉 한미 양국정부 차원에서 조율된 중요 의사 결정 사항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는 얘기다.
당장 제련소 건설 발표에 미국 측이 환호한 것만 봐도 이런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부 장관은 "미국은 (이번 제련소) 생산 확대분 중 일부에 대해 우선적 매수 권한을 갖게 될 것"이라며 기대감을 내비쳤다.
스티브 파인버그 미 전쟁부 부장관도 "항공우주·국방·전자·첨단 제조 전반에서 병목 없는 전략광물 공급을 가능하게 하는 전력 증폭기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과의 관계 강화에 전력을 다하고 있는 우리 정부 내 분위기, 사모펀드에 대한 정부-여당의 곱지않은 시선 등도 최 회장 측에는 유리한 대목들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적은 지분으로 겨우 겨우 이사회를 장악해오던 최 회장 측이 크게 유리해진 것은 사실로 보인다”면서 “우리 정부 각 부처들의 스탠스가 중요한데, 고려아연 발표에 대한 여론 흐름과 MBK파트너스에 대한 반감 등이 모두 변수가 될 전망”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