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트래커 = 김상년 기자
국내 최대 해운사 HMM의 자사주 공개매수에 최대주주인 한국산업은행과 2대 주주인 한국해양진흥공사가 적극 호응, 양 사가 보유한 HMM 지분 6.81% 6979만주를 1조8284억원에 이번에 대거 처분했다.
HMM은 지난 8월18일부터 지난 12일까지 진행한 자사주 8180만1526주(7.98%)에 대한 공개매수 결과 8억6126만6700주가 응모해 이 중 8180만주(7.98%)를 매입했다고 17일 밝혔다. 1주 당 공개매수 가격은 2만6200원으로, 이번 자사주 총 취득 규모는 2조1432억원에 달한다.
공개매수 경쟁률이 10.5대1에 달했던 셈이다. 양대 주주외 일부 임직원과 일반 소액주주들도 많이 공개매수에 응했다. HMM은 이번에 취득한 자사주 전량 7.98%를 오는 24일 모두 소각처리할 예정이다.
산업은행과 해양진흥공사는 이번 공개매수를 통해 각각 3506만5870주(3.42%), 3472만3147주(3.39%)를 처분했다. 공개매수로 산업은행의 HMM 지분율은 청약 이전 36.02%에서 32.60%로 줄었다. 해양진흥공사의 HMM 지분율도 35.67%에서 32.28%로 3.39%포인트 줄었다.
1,2대주주 관계를 허물지 않으면서 나란히 비슷한 비율로 청약에 참여한 걸로 보아 정부 관계 당국과 양 사 차원의 사전조율 같은게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산업은행과 해양진흥공사(해진공)는 또 이번 공개매수 청약을 통해 각각 9187억원, 9097억원을 회수했다.
양 사는 2010년대 중반 해운업계 구조조정 당시 보유 채권을 출자전환하면서 HMM 지분율을 나란히 높였다. 2016년 이후 산은은 2조1천억원, 해진공은 2조원 가량을 HMM에 각각 투입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이후 최근까지 이자와 배당 등으로 산은은 1조6천억원, 해진공은 1조4천억원 가량을 각각 회수했다고 한다.
이번 공개매수 참여로 양 사의 회수금 누계는 3조1천억원대와 2조9천억원대로 각각 늘어나게 된다. 그동안의 투자금을 전액 회수하는 것은 물론 상당 투자순익도 남기게 되는 셈이 다.
이번 자사주 공개매수 성공으로 그동안 실패를 거듭했던 HMM의 민영화 작업에도 돌파구가 열릴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동안 민영화의 최대 걸림돌 중 하나가 과다한 HMM의 주식물량과 시가총액에 따른 인수자의 엄청난 인수자금 부담이었는데, 이번 공개매수와 자사주 전량 소각으로 8% 가까운 주식물량이 줄어들게 되었기 때문이다.
HMM이 추가로 자사주 매입에 나서고 산은과 해진공이 계속 응할 경우 이들의 지분율은 점점 낮아지고, 주식물량과 시가총액도 더 줄어들 수 있다.
HMM의 추가 자사주 공개매수 여력은 충분하다. HMM의 지난 6월 말 현금및현금성자산만 2.79조원, 기타유동금융자산은 11. 7조원, 이익잉여금은 14.76조원에 각각 달한다. 영업 상황도 계속 괜챦은 편이다.
HMM의 자사주 매입이 진행될수록 향후 인수자의 자금부담도 줄어든다. iM증권에 따르면 주가 2만1000원 기준 50%+1주의 HMM 지분을 매입하기 위해선 7~10조원 가량 필요하다. HMM이 자기자금을 들여 대규모 자사주 매입을 계속하면 이 부담은 더 줄어들 수 있다.
인수자금 부담이 워낙 커 현재로선 포스코그룹 정도만 유력 후보로 꼽혔는데 이 부담이 줄어들수록 다른 후보들이 뛰어들 가능성도 높아진다. 철강 경기 악화로 사업다각화가 절실한 포스코는 이미 HMM 인수 검토에 들어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해운업계 관계자들은 향후 HMM 민영화의 관건은 이재명 정부의 생각에 달려있다고 보고있다. 윤석열 정부 때처럼 민영화를 계속 추진할지, 추진한다면 포스코도 포함시킬지 등에 관한 입장을 새 정부가 이미 정리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산은과 해진공이 이번 공개매수에 적극 참여한 것도 그 일환일 것으로 추정하는 업계 관계자들이 많다. 당초 산은보다 공개매수에 소극적인 것으로 알려졌던 해진공이 이번에 산은 못지않게 적극 참여한 점도 이런 관측에 힘을 실리게 해주는 대목이다.
다만 해운업계 대표들이 최근 정부와 국회 등에 HMM을 포스코에 매각하는 것은 반대한다는 입장을 돌리고 있는 점은 또 변수다. 2023년 HMM 인수전에 참여했다가 과다한 자금부담 등 때문에 중도 포기했던 하림과 SM그룹 등 해운업체를 갖고 있는 중견 그룹들이 다시 HMM에 탐을 내고있는 움직임이 아닐까하고 업계는 해석하고 있다.
공개매수나 자사주 매입이 거듭될수록 이들 뿐아니라 한화 등 다른 인수 가능 후보그룹들의 움직임도 표면화될 가능성이 있다.
한편 이같은 대규모 자사주 매입 및 소각 예정에도 불구하고 HMM 주가는 그동안 큰 변동이 없었다. 공개매수 계획 발표 후 며칠 동안 오르다 그 후 다시 횡보 장세를 보였다. 17일 종가도 전날보다 하락한 23500원에 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