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트래커 = 김상년 기자
국무회의 일부 내용이 역대 최초로 실시간 생중계되는 일이 벌어졌다.
29일 오전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무회의는 사전 예고 없이 생중계됐으며 이재명 대통령과 각 부처 장관들의 논의 장면은 1시간 넘게 가감 없이 공개됐다. 초반 1시간 20∼30여분간 회의 내용이 KTV 등을 통해 실시간 방송됐다.
참석자들이 입장하는 장면부터 국민의례, 신임 국무위원들 인사에 이어 이 대통령이 모두발언을 한 뒤 중대재해 근절 대책과 관련해 부처별로 검토한 안을 보고받고 토론하는 모습 등이 그대로 중계됐다.
중대재해 토론이 끝난 뒤 산불·산사태 관련 산림관리 방안으로 주제가 넘어가면서 중계가 중단됐으나, 약 5∼6분 뒤 방송이 재개됐다. 이어 약 5분간 부처 업무보고 일정 등과 관련한 논의가 이어진 뒤 이날 예정된 안건 처리 순서에 이르러 회의는 비공개로 전환됐다.
지금까지는 대통령의 모두발언 위주로 녹화된 국무회의만 나중에 간간이 공개됐다. 비록 일부 내용에 국한되긴 했지만 국무회의 토론 내용이 실시간으로 생중계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규연 대통령실 홍보소통수석은 브리핑에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 앞서 중대재해 근절 대책은 국민 모두에게 가감 없이 알려야 할 사안이라며 토론 과정을 여과 없이 생중계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이어 "이 대통령은 국무회의 내용을 가급적 폭넓게 국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며 "일부에서 단계적 녹화나 부분 공개를 하자는 의견이 있었지만, 이날 (일부 국무회의 내용을 실시간으로) 국민에게 공개하라고 지시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장관급 국무위원들도 중계 사실을 모른 채 국무회의에 참석했을 정도로 전격적으로 생중계가 이뤄졌다. 중대재해 근절 대책 논의 후 잠시 멈췄던 중계가 재개된 것도 이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고 한다.
대통령실은 대통령 뜻에 따라 앞으로도 국무회의 일부를 가급적 생중계할 계획이다. 이 날처럼 이 대통령의 모두발언과 회의 일부가 공개되는 방식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진다.
물론 국무회의 논의 안건들 중 민감한 내용이나 국익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내용들은 생중계 대상에서 제외될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실은 "국민의 알 권리 확대 및 투명한 국정 운영을 위해 국무회의 내용 중 공개 가능한 부분은 국민들께 공개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설명했다. 대국민 소통을 크게 넓히겠다는 의도로 읽혀진다.
이 대통령은 과거부터 국민과의 '직접 소통'을 중시했다. 경기지사 시절에도 직원 건의를 받아들여 도청 간부회의를 영상 중계한 바 있다.
이날 국무회의에서 첫 생중계 대상으로 지목된 것은 반복적인 산재 사망사고였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생중계 국무회의를 통해 “(반복적인 산재 사망 사고는)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복적으로 산재 사고가 난 기업에 대해 징벌배상 도입과 같은 경제적 제재를 고려하겠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산재 사망 사고가 자주 발생한 포스코이앤씨와 SPC를 강하게 질타하며 이같이 밝혔다.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라는 회사에서 올들어 다섯 번째 산재 사망 사고가 발생했다고 한다”며 “이게 있을 수 있는 일입니까”라고 했다.
이어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사고가 발생하고,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하는 거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인데 사고가 나는 건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라며 “(기업들이 근로자가) ‘죽어도 어쩔 수 없지’라고 생각한 결과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참담하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SPC가 8시간 야간 근무를 없애기로 한 것에 대해 “늦었긴 하지만 다행”이라며 “말씀하셨으니 꼭 지키길 바란다”고 했다. 이어 “전에도 1000억을 들여 동일 사고가 나지 않게 조치하겠다고 했는데 과연 했는지 제가 확인해보라고 했다”며 “이번에는 신속하게 꼭 지키길 부탁드린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을 향해 “사람 목숨을 지키는 특공대라고 생각하고 철저하게 단속해야 한다”고 하자, 김 장관은 “직을 걸겠다”고 했다. 이에 이 대통령은 “정말로 직을 거십시오”라고 했다.
이 대통령은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라 처벌받아도 대부분 집행유예로 끝나 실효성이 없다”며 “똑같은, 상습적, 반복적 사망사고가 발생하는 경우 징벌적배상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이에 김 장관은 “형사적 처벌과 함께 징벌적 손해배상 등 경제적 제재, 공공입찰 참가 제한하거나 영업정지 등을 병행 검토하겠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경찰에 “산업재해 사망사고 전담팀 두는 것을 검토하라”고도 했다.
특히 이 대통령은 김병환 금융위원장이 "중대한 사고가 나면 ESG(환경·사회·투명 경영) 평가에서 불이익을 받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보고하자 "아주 재미있는 것 같다. 산재 사망사고가 상습적으로 발생하면 여러 차례 공시해서 주가가 폭락하게 (만들 수도 있다)"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재계에서는 중대재해처벌법에 자꾸 문제를 제기하는데, 저 역시 이 법이 그렇게 실효적인가 하는 의문이 있긴 하다"며 "대부분 집유 정도로 끝나는 데다가, 실제 이익은 회장이 보는데 책임은 사장이 지고 있지 않나"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