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트래커 = 이태희 기자
현재 진행 중인 조기 대선 국면에서 큰 분수령이 될 수도 있는 큰 사건이 1일 한꺼번에 두 개나 발생했다.
대법원은 이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김문기 골프 및 백현동 발언’ 관련 상고심에서 이 사안을 유죄로 판단, 파기 환송했다. 또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는 사실상 대선 출마를 선언하기 위해 이날자로 대행직을 공식 사퇴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박영재 대법관)는 1일 이 후보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이에따라 이 후보의 사법리스크가 대선을 목전에 두고 다시 크게 부각될 전망이다.
대법원은 이날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정에서 이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상고심 선고기일을 열고 대법원장과 대법관 12명 중 10명의 다수 의견으로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환송한다"고 선고했다.
대법원은 "김문기 관련 발언 중 '골프 발언'과 '백현동 관련 발언'은 후보자의 행위에 관한 허위사실의 공표에 해당한다"며 "(2심 판결에는) 공직선거법 250조 1항이 규정한 허위사실공표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밝혔다.
먼저 대법원은 이 후보가 고(故) 김문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과 골프를 쳤다는 의혹에 관해 '사진이 조작됐다'는 취지로 발언한 부분은 허위사실 공표가 맞는다고 판단했다.
백현동 용도변경과 관련해서도 대법원은 "성남시는 자체적 판단에 따라 용도지역 상향을 추진했고 그 과정에서 국토부의 성남시에 대한 압박은 없었다"며 유죄로 인정했다.
대법원은 "(이 후보의 발언은) 사실의 공표이지 단순히 과장된 표현이거나 추상적인 의견 표명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라며 "구체적인 과거의 사실관계에 관한 진술로서 그 표현 내용이 증거에 의하여 증명이 가능하다"고 했다. 의견 표명에 불과하므로 처벌할 수 없다는 2심판결이 잘못됐다는 취지다.
이날 선고에는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인 노태악 대법관과 법원행정처장인 천대엽 대법관을 제외한 대법관 11명과 조희대 대법원장이 참여했다. 이 같은 대법원의 다수의견에는 12인 중 10인이 동의했다.
그러나 이흥구·오경미 대법관은 무죄 취지의 반대 의견을 내놓았다. 또 서경환·신숙희·박영재·이숙연·마용주 대법관은 다수 의견에 대해, 이흥구 대법관은 무죄 취지 반대 의견에 대해 보충 의견을 밝혔다고 조희대 대법원장은 전했다.
이 후보는 2021년 12월 20대 대선 후보때 방송에서 김문기 처장을 모른다고 발언하고, 국정감사장에서는 성남시 백현동 한국식품연구원 부지 용도변경 과정에 국토교통부의 협박이 있었다고 말해 허위사실을 공표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에 대해 1심은 유죄를 인정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으나 2심은 이 후보 발언이 '인식' 또는 '의견 표명'에 불과하므로 처벌할 수 없다며 전부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은 국민의 큰 관심사이고, 이 후보의 피선거권 여부가 달려있다는 점을 고려해 이례적으로 빠르게 사건을 심리했다.
이날 파기 환송으로 이 후보가 당장 대선 출마길이 막히는 것은 아니다. 서울 고법의 파기환송심 결과가 대선 이전에 나올 가능성도 적다.
하지만 표심을 아직 정하지 못한 부동층 여론 등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어 대선 정국에도 파란이 일 전망이다.
파기환송 소식이 전해지자말자 민주당은 “명백한 선거 개입”이라며 당장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이재명 후보를 중심으로 흔들림없이 대선 승리가도를 계속 가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당 사법정의실현 및 검찰독재대책위원장인 전현희 최고위원은 이날 페이스북에서 "사상 초유 대법원의 대선 개입에 강력한 유감을 표한다"며 "역사는 오늘을 '사법 정의가 죽은 날'로 기록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소속 정청래 법제사법위원장도 이날 페이스북에서 "대통령은 대법원이 뽑지 않는다. 대통령은 국민이 뽑는다"고 말했다.
이재명 대선 후보는 "법도 국민의 합의이고, 국민의 뜻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후보는 이날 종로구에서 비(非)전형 노동자들과 간담회를 한 뒤 기자들과 만나 "제 생각과 전혀 다른 방향의 판결"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이 후보는 국민의힘 등이 후보 사퇴 요구를 한 것에 대해선 "정치적 경쟁자들 입장에서는 온갖 상상과 기대를 하겠지만 정치는 결국 국민이 하는 것이다. 국민 뜻을 따라야겠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상식의 승리”라며 이날 판결 결과를 크게 반겼다. 대선 후보인 김문수 후보는 이날 “이재명 후보는 후보직 사퇴가 도리”라고 말했고, 한동훈 후보는 “(이재명 후보는) 무자격 선수”라는 입장을 각각 내놓았다.
한편 이날 이재명 파기환송 판결이 나온 직후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는 “중책을 내려놓고 더 큰 책임을 지겠다”며 권한대행 총리직에서 사퇴했다.
한 대행의 총리직 사퇴는 1일 있을 것으로 이미 사실상 예고됐으나 사퇴 시점이 하필 이재명 후보 판결 바로 직후여서 이날 큰 화젯거리가 되었다.
한 대행의 사표는 한 대행이 스스로 재가하는 절차를 거치면 대행직 임기가 2일 0시부로 종료된다. 2일 0시부터는 최상목 경제부총리의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가 다시 시작된다.
최 부총리는 지난해 12월 27일 국회에서 한 대행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직후부터 헌법재판소가 소추를 기각한 지난 3월 24일까지 88일간 권한대행직을 수행한 바 있다.
한 대행은 2일 국회에서 무소속으로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 대행 측은 '반(反)이재명 빅텐트'를 펼치겠다는 구상 아래 국민의힘 후보뿐만 아니라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 이낙연 새미래민주당 상임고문 등 모든 사람에게 문을 열어놓고 단일화를 논의하겠다는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이 과정이 순탄하게 마무리될지는 미지수다. 서로 이해관계가 크게 달라 합의를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