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크래커 박지훈 기자

10일, 서울 마포구 양화로 81 H스퀘어 1층에 위치한 합정동 탭샵바에서 자비에 로저 미션서드 와이너리 CEO가 인터뷰 하고 있다. 사진=박지훈 기자
“우리는 시간을 한 병의 와인에 담는 일을 합니다”
자비에 로저(Xavier Roger) 미션서드(Mission Sud) 와이너리 CEO는 자신이 와인을 만든다는 사실보다 ‘어떻게 시간을 담아내는가’를 더 자랑스럽게 여겼다. 자비에에게 와인은 그냥 술이 아니었다. 그의 철학에서 와인이란, 시간과 기후, 땅과 사람 사이의 진실한 관계를 발효시킨 결과였다.
오래 묵힌다는 수동적인 개념을 뛰어넘어 와인에 ‘시간의 미학’을 덧씌운 자비에를 10일 서울 합정동 탭샵바에서 <더트래커>가 단독으로 인터뷰했다.
그는 와인을 만들 때 포도의 성장부터 병 입 후의 숙성까지, 모든 과정에서 시간의 개입을 가장 중시한다고 강조했다. 숙성이 길어질수록 향미는 물론 분위기마저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마법’이라고 불렀다.
그는 와인에 시간을 붓는 사람이다. 단순히 오래된 와인을 자랑하는 게 아니라, 시간이라는 요소를 어떻게 ‘양조’에 직조하느냐에 대해 고민했다.
미션서드 와이너리의 시초는 17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자비에의 선대가 세운 로저가(家) 와이너리는 지난 400년간 프랑스 와인의 역사를 써왔다.

10일, 서울 마포구 양화로 81 H스퀘어 1층에 위치한 합정동 탭샵바에서 자비에 로저 미션서드 와이너리 CEO가 인터뷰 하고 있다. 사진=박지훈 기자
2011년 로저가에서 독립한 자비에는 자신만의 와이너리를 설립했다. 그는 미션서드 와이너리를 ‘스타트업’에 비유했다. 설립 초기 기술력은 있었지만 자본력은 부족했다. 그는 겸직을 감내하며 직접 프랑스 남부 지중해 랑그독 루씨옹(Languedoc-Roussillon) 포도밭을 일궜다. 가파른 경사면에 조성한 포도밭, 생소했던 카베르네소비뇽(Cabernet Sauvignon)과 시라(Syrah) 품종의 재배, 처음엔 모두 무모하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카베르네소비뇽과 시라를 50대 50으로 블렌딩 한 제품은 프랑스 프리미엄 와인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고, 프랑스 와인의 글로벌화를 주도하는 제품으로 성장했다. 프랑스 몽벨리에 대학교(University of Montpellier) 와인메이킹엔지니어링을 전공한 것이 사업의 지렛대가 된 셈이다.
대표 와인인 ‘미션서드 카베르네 시라(Mission Sud Cabernet Syrah)·미션서드 피노누아(Mission Sud Pinot Noir)’는 그 철학의 응축체다. 두 와인은 가성비가 높아 ‘보급형 로마네 콩티’란 별칭을 갖고 있다. 매년 열리는 ‘프랑스 솔로탈출 축제 200주년’을 기념 와인이며, 한국 내 ‘웨딩와인 만족도 1위’라는 타이틀도 보유하고 있다. 단일 와인으로는 독보적이다.
▲2010 베를리너 와인 트로피 금메달 ▲2013 그로세 인터내셔널 와인프라이스 은메달 ▲2013년 독일 문디스비니 은메달 ▲2017년 VIP ASIA Awards 대상을 수상했다.
미션서드는 와인 소비의 대중화 흐름에서 일찍이 프리미엄 전략과 현지화 전략을 동시에 택했다. ‘와인은 몰라도 웨딩홀에서 미션서드는 봤다’는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니다.
회사는 고급 와인 ‘미션서드’ 시리즈를 통해 ‘숙성 잠재력’이라는 시장의 니즈를 입증했다. 블라인드 테이스팅에서 숙성 빈티지가 좋은 평가를 받으면서, 자연스럽게 소비자 신뢰도 높아졌다. 최근에는 바닷바람을 맞으며 자란 미션서드 샤도네이(Mission Sud Chardonnay)를 출시해 프리미엄 화이트와인 시장까지 타깃을 확장하고 있다.

10일, 서울 마포구 양화로 81 H스퀘어 1층에 위치한 합정동 탭샵바에서 자비에 로저 미션서드 와이너리 CEO가 인터뷰 하고 있다. 사진=박지훈 기자
그는 성공을 디딤돌 삼아 와인 양조는 물론, 기후 변화와 소비 트렌드까지 모든 변수에 대응하는 전방위 기술 디렉터로 역할을 넓혔다. “기후는 모든 와이너리의 최대 리스크입니다. 특히 북반구에 위치한 프랑스의 경우, 해양성·대륙성·지중해성 기후 모두를 가지고 있어 해마다 날씨 패턴이 달라져 매 수확이 전투에 가깝죠.”
이에 미션서드 와이너리는 ‘드라이 파밍(Dry Farming)’이라는 건지 농법을 도입했다. 최소한의 물만 공급하면서도 포도의 생존력과 품질을 최대화하는 방식이다. 드라이 파밍은 많은 시간 동안 세계 많은 곳에서 포도를 재배하기 위해 사용되던 방법이며, 1970년대 관개 농법이 유행하기 전까지 미국에서 널리 사용됐다.
한국 시장은 미션서드 와이너리에게 전략적 요충지다. 미션서드 와인은 2013년 한국 진출 이후 단 한 차례도 국내 수입사인 ‘이지와인’를 변경하지 않았다. 12년째 줄 곳 한 파트너와 관계를 유지하는 와이너리는 전 세계에서도 드물다. 자비에 로저는 “좋은 와인처럼, 좋은 파트너십도 시간이 필요합니다. 서로에 대한 깊은 신뢰가 없다면 지속 가능성은 허상일 뿐입니다.”라고 말했다.
현재 이지와인 김석우 대표와 자비에는 각각 창업 1세대로, 사업은 물론 우정까지 공유하고 있다. “다른 선택지가 많았지만 우리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브랜드 철학이 같았기 때문입니다.”
앞으로의 전략은 한마디로 ‘기후 적응’과 ‘클래식 재해석’이다. 미션서드 와이너리는 전통 포도 품종에 대한 투자와 재해석을 병행하고 있다. 새로운 재배지와 품종의 실험은 계속되고 있다. 그는 “지속 가능성과 품질, 두 가지를 모두 잡지 않으면 미래는 없습니다. 세상은 바뀌고, 와이너리도 바뀌어야 하니까요”라고 말했다.
자비에는 이제 프랑스 와인을 넘어 ‘글로벌 와인메이커’로서 입지를 넓히고 있다. 그리고 그가 강조하는 원칙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결국 와인은 관계의 산물입니다. 땅과 기후, 사람과 시간, 그리고 시장과의 관계. 우리가 그것들을 얼마나 정직하게 다루는지가 와인의 품질을 좌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