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퓨처엠 포항 양극재 공장


더트래커 = 김상년 기자

전기차 보조금 폐지 등에 따른 미국 전기차 시장 급냉 여파가 한국 배터리업계를 본격 강타하고 있다.

K배터리업체들의 기존 공급계약이 잇따라 취소되거나 공급량이 크게 축소되고 있는 가운데 포스코퓨처엠도 31일 끝난 미국 GM에 대한 전기차용 하이니켈계 NCM 양극재 공급량이 당초 13조7697억원(108억달러)에서 2조8112억원(21억달러)으로, 크게 줄었다고 이날 공시했다.

계약 당시 공급하기로 했던 물량의 20% 수준에 불과한 물량이다. 이 양극재 공급 수주는 2022년 7월28일에 있었고, 계약기간은 2023년 1월1일부터 25년 12월31일까지였다. 포스코퓨처엠은 계약기간 종료에 따른 공급금액 정정 공시라고 설명했다.

포스코퓨처엠 31일 정정공시


포스코퓨처엠은 이같이 GM 공급물량이 크게 줄어든 이유로, 판매가격 산정기준인 주요 원재료(리튬) 가격 급락과 미국 전기차 시장 성장 둔화 등의 영향이라고 설명했다.

포스코퓨처엠은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 북미합작법인인 얼티엄캠을 통해 캐나다에 건설 중인 양극재 공장 2단계 증설 계획을 일시 중단하고 GM과의 공급 일정을 재조정하는 등 이미 본격적인 속도조절에 나서고 있다.

포스코퓨처엠 31일 공시


이에 앞서 다른 국내 이차전지 소재기업인 엘앤에프도 2023년 2월 미국 테슬라에 3조8347억원 규모 양극재를 공급하는 계약을 맺었지만 지난 29일 “테슬라에 실제 공급한 물량은 937만원에 불과하다”고 공시한 바 있다. 사실상 거의 공급을 못했다는 뜻이다.

블룸버그는 이와 관련, 30일(현지 시각) 테슬라의 전기 픽업트럭 ‘사이버트럭’에 사용될 배터리에 들어갈 소재였는데, 개발이 늦어지고 판매량이 저조해 엘앤에프가 타격을 입게 됐다고 보도했다.

국내 최대 이차전지 배터리업체인 LG에너지솔루션도 배터리 공급 계약이 최근 잇따라 해지됐다. 미국 배터리팩 제조사 FBPS와 지난해 4월 맺은 3조9000억원 규모의 전기차 배터리 모듈 공급 계약과 작년 10월 포드와 맺은 9조6000억원 규모 계약이 최근 보름 새 잇따라 없던 일이 되었다. SK온도 미국 포드와 만든 배터리 합작 법인을 지난 11일 해체했다고 공시했다.

이런 악몽의 진원지는 미국이다. K배터리의 주력 시장인 미국에서 전기차 시장이 급속도로 냉각될 조짐이 나타나면서 국내 배터리 업계가 연쇄적으로 충격을 받고 있는 것이다.

2022~2023년에만 해도 연 50% 안팎씩 성장했던 미국 전기차 시장은 이미 지난해부터 꺾이기 시작했다. 미국 아르곤국립연구소에 따르면 올 1~11월 미국의 전기차 판매량은 113만5552대로 전년 대비 2% 늘어나는 데 그쳤다.

작년부터의 경기하강은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후퇴)의 영향이라고 볼 수 있지만 특히 10월부터 시장이 더 급냉된 것은 트럼프정부가 전기차를 살 때 지원하던 세액공재(보조금)을 페지한 것이 결정타가 되었다.

미국시장에서 지난 1~9월에는 매달 평균 전기차가 11만대씩 팔렸는데, 10월과 11월은 2개월 연속 판매량이 7만대를 밑돌았다. 자동차 업계는 10~11월의 전기차 판매 흐름이 고스란히 내년에 그대로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포스코퓨처엠 캐나다 합작공장


보조금 중단 전 후 완성차 기업들은 급속히 전기차 비중을 줄이고 있다. 지난 7월 혼다는 2027년부터 선보이기로 한 대형 전기 SUV 개발을 중단하고, 2031년까지 전기차·소프트웨어(SW) 개발에 투입할 자금을 10조엔(약 92조원)에서 7조엔으로 30% 줄였다. 현대차도 올 초 미국 조지아 메타플랜트에서 전기차 생산을 줄이고 하이브리드차 생산을 늘리기로 결정했다.

포드는 간판 차종인 전기 픽업 ‘F-150 라이트닝’ 생산을 중단하고, 내연기관차와 하이브리드차에 집중하는 쪽으로 사업 계획을 재편하기로 했다. 이같은 시장 분위기가 완성차 업체를 거쳐 배터리 업계로 본격 전이되고 있는 셈이다.

미국 자동차 시장이 내년부터 하이브리드차 중심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국내 배터리 기업들은 AI(인공지능) 전환에 발맞춰 수요가 늘어난 ESS(에너지 저장 장치) 사업 쪽으로 일단 일단 대거 눈길을 돌리고 있다.

하지만 주요 배터리 기업 모두가 이 분야에 뛰어들고 있어 경쟁이 점점 더 치열해지고 있는 게 또 문제다. 포드의 경우 심지어 중국 CATL과 협력해 ESS의 미국 내 생산을 추진하고 있다. SK온과의 배터리 합작 법인을 해체하면서 100% 인수한 미 켄터키주 공장이 생산지로 낙점됐다.

이제 미국 ESS 시장도 마냥 안도할 수 없게 된 셈이다. 이미 2023년 하반기부터 전기차 캐즘 등으로 혹독한 침체기를 겪어온 K배터리 업계에 2026년은 더 엄혹한 한 해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