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롤드 로저스 쿠팡 임시대표


더트래커 = 김상년 기자

해롤드 로저스 쿠팡 임시 대표는 31일 국회 연석 청문회에서 쿠팡이 발표한 조사결과와 관련, 국정원 지시로 유출자의 노트북 포렌식을 실시했는지에 관해 신뢰성있는 자료를 제출하라는 요구에 대해 "민간기업과 정부기관의 성공적인 협력 사례"라며 '셀프조사' 논란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전날 쿠팡에 조사를 지시한 정부기관으로 지목된 국가정보원이 "명백한 허위"라고 밝혔음에도 로저스 대표는 이날 유출자를 상대로 한 진술 청취와 기기 회수 등이 정부 기관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며 기존의 주장에서 더 나아가 이같이 주장했다.

국정원은 국회에 로저스 대표를 위증 혐의로 고발해달라고 요청하는 등 강력 대응하고 있으나, 로저스 대표는 한발도 물러서지 않았다. 로저스 대표는 영문 사과문에 쓰인 'false(사실이 아닌)' 표현을 누가 작성했느냐는 질의에도 해당 답변 대신 "한국 정부는 성공적인 공동 노력에 대해 왜 이야기하지 않는지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쿠팡은 지난 29일(현지 시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후속 조사 결과와 고객 보상 프로그램을 공개한 바 있다. 해당 공시에서 쿠팡은 이번 쿠팡의 조사가 '자체 조사'가 아니었으며 유출자와의 접촉을 비롯한 조사 과정 전반이 정부 요청과 지시 하에 이뤄졌다고 했다.

최민희 위원장을 비롯한 청문 위원들은 "위증"이라며 로저스 대표의 발언을 비판하는 데도 그는 반복적으로 "왜 쿠팡과 한국 정부 공동 노력의 성공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나. 이것은 성공의 좋은 사례다. 왜 이를 한국 국민에게 알리지 않나"라고 물었다.

로저스 대표는 그러면서 "정부는 모든 데이터를 가지고 있다. 한 달 이상 일부 데이터 로그를 보유하고 있고, 기기는 2주 이상 보유하고 있다. 그 결과를 보고 싶다"며 정부를 압박하기도 했다.

전날 목소리를 높이고 책상을 두드리는 등 격앙된 모습에서 다소 차분한 톤으로 바뀌긴 했으나 질의 내용과 관계없이 정부와 협력했다는 내용만을 반복해 여러 차례 제지를 받았다.

최 위원장은 로저스 대표를 향해 "간 크게 대한민국 국정원을 끌어들여서 진실게임을 하는 로저스씨와는 도저히 소통이 안 된다"며 조사 관련 질의를 이재걸 쿠팡 법무담당 부사장을 대상으로 진행하기도 했다.

이 부사장은 "12월 2일 국정원으로부터 처음 공문을 보내왔고 국정원은 국가 안보에 관한 사안이기 때문에 요청하는 것으로, 쿠팡은 따라야 할 법적 의무가 있다고 했다. 12월 초에는 '이제 용의자에게 문자를 보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요청했다"고 구체적으로 답변했다.

쿠팡이 중국에서 정보 유출자와 접촉한 일과 관련해 '국정원이 용의자 접촉을 지시했느냐'는 질문에 이재걸 부사장은 "저희는 그렇게 이해하고 있다"고 답했다. '국정원이 자체적으로 회수한 물품에 대해 포렌식 하라고 지시했느냐'는 질의에는 "허용한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했다.

포렌식 비용과 국정원 직원의 입회 여부에 대해서는 쿠팡 측이 비용을 지불했으며 포렌식 과정에 국정원 직원은 입회하지 않았다고 했다.

국정원이 명확하게 포렌식을 하라고 지시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알아서 하라고 해 허용하는 취지로 이해했다"고 했고, "보고서는 자체적으로 만든 것"이라고 답했다. 또 국정원이 쿠팡 측에 조사내용 발표를 지시했는지에 대한 질의에 이 부사장은 "발표를 요청한 것은 없다"고 했다.


이날 로저스 임시대표는 심야 택배 업무를 같이 해보자는 여당 국회의원의 제안에 대해 “함께 배송하도록 하겠다”고 답하기도 했다.

염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택배 야간 근무 어려움을 알기 위해 물류센터에서 같이 일해 보자”고 말하자, 로저스 대표는 “몇 번 그런 경험이 있다. 염 의원도 같이 해주기를 바란다”며 이같이 답했다.

지난 30일 청문회에 출석한 로저스 임시 대표는 의원들의 집요한 질의 공세에 “정상적이지 않다. 이의를 제기하고 싶다.” “그만합시다(Enough)!” 등 사과 보다는 고성으로 맞서기도 했다.

그는 “쿠팡에서 정보 유출자와 접촉한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에 “정부가 우리에게 지시했다”는 답변만 반복하며, “왜 이 사실을 감추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국회는 로저스 대표의 통역사가 지난 청문회에서 발언을 윤색해 통역한 점을 문제 삼아 동시통역기를 준비했지만 로저스 대표는 개인 통역사를 고집했다. 최민희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이 거절하자 그는 “정상적이지 않다. 이의를 제기하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동문서답으로 일관하는 그에게 의원들이 단답형 답변을 요구하자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리며 “그만하자”고 말했다. ‘1인당 5만원 이용권’이 사실상 판촉 행위에 불과하다는 질타에 로저스 대표는 “전례가 없는 보상안이라고 생각한다”며 추가 보상 가능성을 일축했다.

최대 쟁점은 쿠팡이 유출 용의자를 직접 만난 경위였다. 로저스 대표는 “여러 차례에 걸쳐 국정원이 피의자와 연락하기를 요청했다”며 “국정원의 지시·명령이 있었으며 구체적인 직원의 이름도 의원실에 밝히겠다”고 했다.

반면 배경훈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국정원은 노트북·데스크톱 등 증거물을 국내로 반입하는 과정에서 이송을 도왔을 뿐”이라며 쿠팡에 단독 조사를 지시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최 위원장은 “국정원이 로저스 대표에 대한 위증죄 고발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정보 유출자가 약 3000개 계정의 고객 정보만 실제 저장했고, 이를 모두 삭제했다’는 쿠팡 측 주장에 대해서도 배 부총리는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3300만건 이상의 이름, 이메일이 유출됐고 개인정보보호위원회, 경찰청, 민관 합동 조사단에서 이 사실을 확인했다”고 못 박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