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24일 한미관세협상 타결 전 미 상무부 회의실에서 처음 만난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왼쪽)과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더트래커 = 김상년 기자

대통령실은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이 한미 관세·무역 협상과 관련해 "유연함은 없다"며 압박성 발언을 한 것과 관련해 "정부는 국익을 최우선으로 협상해 나가되 합리성이나 공정성을 벗어난 협상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12일 밝혔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날 "이재명 대통령이 어제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밝혔듯이 합리성이나 공정성을 벗어난 협상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이같이 말했다.

이 대통령은 전날 기자회견에서 한미 협상과 관련해 "합리성과 공정성을 벗어난 어떤 이면 협상도 하지 않는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 대통령은 관세 협상 결과를 명문화하지 않았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미국의 관세 증액에 우리가 최대한 방어를 하러 간 것"이라며 "방어하면 됐지 뭐 사인을 하나. 우리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 사인을 왜 하느냐. 사인 못했다고 비난하지 마시라"라고 말하기도 했다.

러트닉 장관은 지난 11일(현지시간) 한 언론 인터뷰를 통해 "한국은 미국과의 협상이 타결됐다고 발표했지만, 실제로는 합의문에 서명하지 않았다"며 우리 정부가 공식 서명을 하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앞서 일본이 대미 관세협상 문서에 서명한 것과 비교하며 "유연함은 없다. 한국은 그 협정을 수용하거나 (인하 합의 이전 수준의) 관세를 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그러면서 일본의 5500억 달러 규모 대미 투자금은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송유관 건설 같은 인프라 확충 등 미국이 원하는 대로 쓰일 것이며, 일본이 낸 5500억 달러를 회수할 때까지 수익을 50대 50으로 배분하되 이후에는 수익의 90%를 미국이 가져가는 미일 협정을 구체적으로 소개했다.

러트닉 장관의 발언은 한미간 협정도 일본과 비슷하게 마무리되어야 하며, 3500억 달러 대미 투자 패키지의 구성과 방식, 투자 수익 배분 등을 미국의 요구대로 수용해 무역헙정에 최종 서명하지 않으면, 한국에 대한 국가별 관세(상호관세)를 25%로 되돌리겠다는 위협으로 보인다.

양국은 지난 8일 미국에서 산업통상자원부와 기획재정부 합동 실무대표단과 미 상무부 및 무역대표부(USTR) 관계자들이 협정 최종 타결을 위한 실무협의를 벌였지만, 합의를 도출하지 못했다.

11일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갑자기 미국을 방문한 것도 이 문제 때문으로 보인다. 러트닉 장관은 이날 뉴욕 '그라운드 제로'에서 열린 9·11 테러참사 24주기 추모식에 참석하는 등 현재 뉴욕에 머물고 있어 김 장관은 워싱턴이 아닌 뉴욕으로 간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한미 간 협상의 세부 조율을 매듭짓고 협정 문안에 서명하는 일은 앞으로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이 대통령이 11일 기자회견에서 무역협정 최종 서명에 대해 "좋으면 사인해야 하는데, 이익되지 않는 사인을 왜 하나"라며 미국 측의 현재 요구를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