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크래커 = 박지훈 기자
SK그룹 배터리 밸류체인을 구성하는 SK온·SK아이이테크놀로지·SK넥실리스가 3년 연속 마이너스 잉여현금흐름에 허덕이며 구조적 재무위기에 빠져들고 있다. 수십조 원의 투자로 미래 먹거리 확보에 나섰지만, 글로벌 전기차 시장의 예상 밖 침체가 실적 회복의 발목을 잡고 있다. 국내외 규제 불확실성과 중국발 경쟁 심화까지 겹치며, 세 회사의 차입금 중심 성장이한계에 직면했다.
30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SK온의 올해 1분기 말 연결 기준 순차입금은 23조4659억원으로, 지난해 말(20조2726억원) 대비 15.8%, 2023년 말(12조9511억원) 대비 81.9%나 급증했다.
전기차 배터리 셀을 제조사인 SK온은 지난 2021년 10월 SK이노베이션에서 분사한 회사다. 독립 이후 올해 1분기까지 누적 잉여현금흐름 마이너스(-)30조8455억원을 기록 중이다. 현금이 빠져나가는 속도가 지나치게 가팔라, 외형 성장에도 불구하고 유동성에 빨간불이 켜진 상태다.
분리막을 담당하는 SK아이이테크놀로지와 전지박 생산사 SK넥실리스 역시 예외는 아니다. SK아이이테크놀로지는 2021년부터 올해 1분기 사이 2조원 넘는 잉여현금 유출을 기록했고, SK넥실리스도 2021년부터 2024년까지 2조3000억원에 달하는 마이너스 현금흐름을 나타냈다. 3사 모두 영업 손익이 적자를 지속하고 있어 자체적인 현금 창출력 회복은 요원한 상황이다.
올해 1분기 SK온의 영업손실은 1633억원(IRA 세액공제 혜택 포함 기준) SK아이이테크놀로지는 696억원, SK넥실리스는 388억원의 영업손실로 기록했다.
SK온의 각형 배터리 실물 모형. 사진=SK온
문제는 이같은 현금흐름 악화가 일시적이지 않다는데 있다. SK온의 경우 올해 1분기 연결 기준 전체 자산의 절반에 가까운 46.5%(순차입금/자산)가 순차입금으로 구성돼 있다. 1분기 자산총계 50조원 중 약 32조원이 배터리 설비에 투입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자산 대부분이 외부 차입에 기대고 있는 셈이다. SK아이이테크놀로지(올해 1분기 말 기준 34.7%), SK넥실리스(지난해 말 기준 39.2%)도 마찬가지다.
순차입금비율(순차입금/자본) 또한 심각하다. SK온의 비율은 올 1분기 말 연결 기준 163.7%로 자기자본을 훨씬 초과한다. SK아이이테크놀로지는 61.3%(올해 1분기 말 기준), SK넥실리스는 85.3%(지난해 말 기준)다. 동종업계인 LG에너지솔루션(올해 1분기 말 기준 44.4%), 삼성SDI(올해 1분기 말 기준 48.2%)에 비해 월등히 높다. 삼성SDI는 조단위 유상증자를 검토하는 등 동종업계 회사들이 재무안정화에 집중하는 분위기와 대비된다.
SK의 공격적 투자에 따른 레버리지 확대 방식은 전기차 시장의 성장이 지속될 경우 감내 가능한 전략이었다. 그러나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세제 혜택 불확실성과 트럼프 재집권, 중국 CATL의 글로벌 확장 등 외생변수가 예기치 않게 겹치면서 그림이 바뀌고 있다.
특히 업계의 일명 ‘메기’로 불리는 CATL은 63조원이 넘는 현금성자산(올해 1분기 기준)을 앞세워 글로벌 진출 속도를 높이고 있다. 같은 기간 4조5896억원을 보유한 SK온과 격차가 크다.
IPO를 남겨둔 SK온이 자금 조달 창구를 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남아있지만, 프리IPO 투자자들의 엑시트 부담, 상장 후에도 지속되는 재무부담, 실적 턴어라운드의 불확실성 등 현실적인 장벽이 높다. 단순히 상장을 통해 현금 유입만을 기대하기엔 여전히 시장 신뢰 회복이 더 중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시장 관계자는 “현 시점에서 국내 배터리 3사는 ‘계획된 적자’의 유효기간이 끝나가고 있다”면서 “산업적 전략 수정 없이 재무적 구조만으로 위기를 넘기기엔 시장이 너무 빨리 식고, 경쟁자는 너무 강해지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