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트래커 = 임백향 기자

호반그룹이 한진칼 지분을 18.46%까지 늘리며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의 경영권을 정조준하고 있다. 공시상으로는 ‘단순 투자’로 명시했지만, 자본시장 안팎에선 이번 지분 확보 행보가 단순한 재무적 투자 차원을 넘어선 사실상 경영권 분쟁 서막이라는 해석에 무게가 실린다. 현재 조 회장 측 우호지분과 호반 측 지분의 격차는 불과 1.5% 수준으로, 치열한 주주권력의 충돌이 예고되고 있다.

26일 기준 호반그룹은 총 12,321,774주(18.46%)의 한진칼 지분을 확보하고 있다. 호반건설이 11.5%(767만6827주), 호반호텔앤리조트가 6.81%(454만5947주), 지주사 호반이 0.15%(9만9000주),를 각각 보유 중이다. 보유 지분 가치는 현재 약 1조3900억 원으로 평가된다. 이는 지금까지 투입한 누적 자금 8662억 원 대비 약 60% 이상 수익이 발생한 수준이다.

호반그룹이 본격적으로 한진칼 지분 확보에 나선 시점은 2022년 3월이다. 당시 KCGI가 보유하던 지분을 1주당 6만 원 안팎에 인수하며 경영권 레이스에 뛰어들었다. 이후에도 주당 평균단가 5만~8만 원선에서 장외 및 장내매수를 이어갔으며, 2023년 10월에는 팬오션으로부터 390만3973주를 프리미엄을 얹어 장외 인수하는 등 공격적인 행보를 지속했다.

주목할 점은 올해 들어 매입 속도가 다시 가팔라졌다는 점이다. 1월부터 4월까지 넉 달간에만 총 288억 원어치를 추가 매입했다. 세부적으로는 1월 117억 원(1주당 7만8454원), 2월 37억 원(1주당 8만592원), 3월 30억 원(1주당 7만9076원), 4월 104억 원(1주당 7만8801원)을 사들였다. 이 같은 흐름은 사실상 한진그룹을 향한 경영권 도전 의지를 공고히 하는 신호로 풀이된다.

(좌측)김상열 호반그룹 회장과 (우측)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그래픽=더트래커/배건율 기자

호반그룹 측은 여전히 ‘단순 투자’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지만, 호반그룹 특유의 ‘치고 빠지는’ 식의 M&A 전력이 이번에도 반복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김상열 호반그룹 회장은 과거 금호그룹 경영권 분쟁, 대한전선 인수 등을 통해 이미 M&A 시장의 강자로 자리매김한 인물이다. 특히 건설업 외 금융·전력·통신 등 다양한 산업군에 대한 투자와 인수로 외형을 키워왔다는 점에서, 대한항공을 정점으로 한 항공·물류 분야로의 진출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점쳐진다.

재계 한 관계자는 “호반이 한진칼 지분을 장기간에 걸쳐 꾸준히 사들인 것은 명백한 시그널”이라며 “경영권 확보에 실패하더라도, 지분 가치 상승만으로도 상당한 투자수익을 거둘 수 있는 구조여서 분쟁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15일 호반의 대규모 매집 사실이 알려지자 한진칼 주가는 연중 최고가를 기록했으며, 당시 기준 보유지분 가치는 1조9776억 원에 달했다.

현재 상황에서 조 회장 측은 제한된 우호 지분 내에서 최대한 결집력을 높여야 하는 반면, 호반그룹은 지분 추가 매입 여지와 함께 외부 세력과의 연대 가능성까지 점쳐지고 있다. 다가오는 주총 시즌을 기점으로 두 진영 간 ‘캐스팅보트’ 확보전이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조 회장 체제가 출범한 이후 비교적 안정세를 보여온 한진그룹 경영권은 다시 한 번 격랑에 휩싸일 가능성이 커졌다. 경영 정상화를 외치는 조 회장과, 이익 실현과 사업 다각화를 노리는 호반그룹 간의 정면 충돌은 이제 시간 문제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