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홈페이지의 김문수 후보 선출 사진


더트래커 = 이태희 기자

국민의힘 대선 전선이 계속 크게 삐걱거리고 있다. 당이 후보 단일화에 소극적이라며 공식 선출된 당 대선후보를 공격하는 일이 연일 계속 벌어지고 있다. 서로 간의 감정싸움이 가열돼 후보 단일화 자체가 이미 물 건너갔다는 관측도 적지 않다.

국민의힘 당 지도부와 김문수 대선 후보는 8일 무소속 한덕수 대선 예비 후보와의 단일화 문제를 놓고 전날에 이어 계속 정면 충돌했다.

김 후보는 이날 오전 긴급 기자회견에서 당 지도부를 향해 "강제 후보 단일화라는 미명으로 정당한 대통령 후보를 끌어내리려는 작업에서 손 떼라"고 밝혔다.

이어 "지금 진행되는 강제 단일화는 강제적 후보 교체이자 김문수를 끌어내리려는 작업이기 때문에 법적 분쟁으로 갈 수 있다"며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 자격으로 당헌 제74조의 당무우선권을 발동한다. 현시점부터 당 지도부의 강압적 단일화 요구를 중단하라. 그리고 이재명의 민주당과 싸움의 전선으로 나가자"라고 했다.

국민의힘 당헌 74조에 따르면 '대통령 후보자는 선출된 날로부터 대통령 선거일까지 선거 업무의 효율적 추진을 위해 필요한 범위 내에서 당무 전반에 관한 모든 권한을 우선해 가진다'고 명시돼 있다.

전날 지도부가 제안한 한 예비후보와의 양자 토론회에 대해서는 "후보의 동의를 받지 않고 당이 일방적으로 정한 토론회는 불참하겠다. 그리고 응분의 조치를 취하겠다"고 했다.

그는 이어 열린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선 "정당한 절차와 정당한 경선을 거쳐 선출된 후보를 당의 몇몇 지도부가 끌어내리려는 해당 행위를 하고 있다"며 "지금 진행되는 일련의 과정이 후보 단일화인가, 후보 교체인가"라고 묻기도 했다.

김 후보는 "이런 식의 강압적 단일화는 아무런 감동도 서사도 없다"며 앞으로 일주일 동안 두 후보가 각자 선거 운동을 한 뒤 오는 14일 방송 토론, 15∼16일 여론조사를 통해 단일화를 하자고 제안했다.

당 지도부와 한 예비후보 측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미 주장한대로 후보 등록 마감일인 오는 10~11일 전에 단일화 문제를 매듭지어야 한다는 것이다.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오후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고 "김 후보님의 제안은 당으로써 도저히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가 추진하는 후보 단일화는 후보를 무작정 교체하자는 게 아니다"라며 "단 0.1%라도 더 경쟁력 있는 후보를 찾아 힘을 모아 이재명 독재를 막아내자는 것"이라고 했다.

권 비대위원장은 "11일 대통령 선거 후보 등록 이전에 반드시 단일화를 이뤄 이재명 세력을 이겨낼 수 있는 후보를 기호 2번 국힘 대통령 후보로 세워야한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 김 후보 기자회견 직후 국회에서 진행된 비상대책위원회에서 권위원장은 "오늘부터 당 주도의 단일화 과정을 시작한다"며 "오늘 오후 TV토론과 양자 여론조사를 두 후보에게 제안했고, 토론이 성사되지 못한다고 해도 여론조사는 예정대로 실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이 결정에 대한 책임은 비대위원장인 제가 지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권 위원장은 "국민의힘과 전신 정당은 대통령과 대통령 주변의 잘못된 결정으로 인해 많은 어려움 겪었다"며 "이제 우리는 거기서 교훈을 얻어야 하고 대통령 후보의 잘못된 결정이 있을 때 반드시 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김 후보가 '11일까지 단일화'에 끝내 응하지 않을 경우에 대비해 잡아놓은 전국위원회(11일)와 전당대회 절차를 밟아 '후보 교체'도 강행할 수 있음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김 후보를 더 노골적으로 공격했다.

김 후보에 대해 "알량한 대통령 후보 자리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며 “저분이 우리가 지금까지 생각했던 민주화 투사인지, 세 번의 국회의원과 두 번의 경기지사 그리고 노동부 장관을 역임한 우리 당의 중견 정치인인지 의심이 들었다. 정말 한심한 모습이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한덕수 후보도 이날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를 방문한 후 기자들과 만나 "단일화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국가와 대한민국의 미래, 경제, 민생을 걱정하는 분께 큰 실례와 결례, 또는 정말 못할 일을 하는 것"이라며 당 지도부와 비슷한 입장을 내놨다.

그는 "(어제 담판에서) 김 후보는 아무런 대안도 가지고 오지 않았다"며 "'왜 한덕수 후보가 대통령 후보로 나왔는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정말 기본적인 예의도 없는 것"이라고 김 후보를 겨냥했다.

국민의힘 로고(홈페이지)


대통령을 여러 명 낸 거대 보수정당의 대선 후보와 당 지도부가 이처럼 정면 충돌하는 것은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초유의 사태다.

전날 김 후보 지지 원외 당협위원장들이 전국위원회·전당대회 개최 중단을 요구하는 가처분 신청을 낸 데 이어, 이날 김 후보 지지 단체들은 당 지도부를 사기·배임·횡령·직무유기죄 등으로 고발하겠다고 밝히는 등 양측 갈등은 법적 분쟁으로 비화할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당 일각에서는 김 후보에 대한 예우와 충분한 사전협의 없이 당 지도부가 단일화 절차를 강행하는 것에 대해 이날도 우려하는 목소리들이 적지 않게 터져 나왔다.

윤상현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당 지도부의 강제적 단일화는 절차의 정당성 원칙과 당내 민주주의를 무너뜨릴 수 있다"며 "이렇게 가면 당이 끊임없는 법적 공방의 나락으로 떨어져 당의 존립 자체가 위태로워질 것이다. 한마디로 이기는 단일화가 아니라 지는 단일화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나경원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당 지도부가 당헌·당규를 자의적으로 적용한다면 법적 분쟁에 휘말려 국민의힘이 대선 후보 없이 선거를 치러야 하는 최악의 경우까지 상정해야 할지 모른다"며 "후보 강제 교체, 강제 단일화는 이제라도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김문수 후보는 8일 한덕수 대선 예비후보에게 이날 오후 4시 30분 국회 사랑재 커피숍에서 단일화 2차 회동을 하자고 제안했다.

이에 한 후보 캠프 이정현 대변인은 "4시도 좋고, 4시 30분도, 자정도, 꼭두새벽도 좋다. 사랑재도 좋고 사랑재 아닌 곳도 좋다"고 응답했다.

이 대변인은 "김 후보자는 한 후보자 및 한 후보자 캠프의 그 누구에게도 연락 없이 이날 오전 관훈토론회 직후 '오후 4시 30분에 한 후보자와 만나겠다'고 공개적으로 발언했다"고 설명했다.

오전까지의 분위기로 볼 때 이날 오후 2차 회동도 큰 합의는 이루어내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이같은 국민의힘 내부 상황을 보고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간담회를 열고 "조순 전 의원이 (과거 대선) 후보 등록을 못 했는데 한 후보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며 "후보 등록을 하더라도 어차피 주저앉을 가능성이 더 높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 최고위원은 "저쪽은 단일화로 승리하는 데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며 "어차피 질 건데 누가 당권 먹느냐에만 관심이 있다. 그 논의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