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트래커 = 김상년 기자
60여년 대한민국 영화계의 중심을 지켜온 ‘국민배우’ 안성기가 5일 별세했다.
고 안성기 배우 장례위원회는 이날 오전 9시쯤 안성기가 서울 용산구 순천향대병원 중환자실에서 치료받던 중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7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안성기는 2020년 혈액암 진단을 받고 투병 중에도 연기와 자선 활동을 이어왔으나 지난달 31일 자택에서 음식물이 목에 걸린 채 쓰러져 중환자실에서 의식불명 상태로 입원한지 6일만에 끝내 회복하지 못했다.
안성기는 2020년 완치 판정을 받았지만, 다시 검진받는 과정에서 암 재발이 확인됐다. 2020년 10월 입원한 사실이 알려지며 건강 이상설이 불거졌고 2022년 언론 인터뷰를 통해 혈액암 투병 사실을 밝혔다.
‘한국영화의 페르소나’로 불리던 안성기는 화려한 스타이기 이전에 남다른 인품으로 존경받아온 국민배우였다. 뛰어난 연기력은 물론 바른 품행으로 존경과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1951년 대구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란 안성기는 여섯살 때 김기영 감독의 영화 ‘황혼열차’(1957) 아역으로 처음 영화에 출연했다. 부친 안화영씨가 김 감독과 친구였던 인연이 그를 영화로 끌었다.
이후 약 70편에서 주로 개구쟁이 역할을 하다가 중학교 3학년 때 찍은 ‘젊은 느티나무’(1968)를 끝으로 10년 정도 활동을 멈췄다. 1976년 제대하고 취업 원서를 낸 기업마다 고배를 마시다가 영화 기획 일을 하던 부친의 영향으로 계몽영화 ‘병사와 아가씨’(1977) 조연을 맡으며 다시 배우가 됐다.
본격적인 배우의 길은 이장호 감독의 재기작 ’바람 불어 좋은날’(1980)’의 중국집 배달부 덕배 역으로 시작됐다. 1950년대에 출발해 2020년대를 아우르는 그의 출연작은 170여편을 헤아린다. 원본이 유실된 작품까지 합하면 약 200편으로 추정된다.
한국영상자료원은 2017년 그의 데뷔 60주년 특별전을 ‘한국영화의 페르소나, 안성기전’으로 명명했다. 그의 필모그래피에 한국영화사가 그대로 담겼다는 뜻이었다.
주조연을 가리지 않은 그의 연기는 폭넓고 변화무쌍했다. ‘거지(‘고래사냥’)에서부터 대통령(‘피아노 치는 대통령’, ‘한반도’)까지 두루 연기했다. 임권택 감독은 “안성기는 누구도 할 수 없는 역할이 생겨났을 때 그걸 해낼 수 있는 배우”라고 했다.
‘고래사냥’(1984), ‘깊고 푸른 밤’(1985), ‘칠수와 만수’(1988)’, ‘개그맨’(1988), ‘하얀 전쟁’(1992), ‘투캅스’(1993), ‘태백산맥’(1994), 최초의 천만영화인 ‘실미도’(2003), ‘라디오 스타’(2006) 등이 그의 대표작들이다.
오랜 기간 정상에 있었으나 성실하고 절제된 자세로 흔한 스캔들조차 한 번 없었다. 신의와 예의를 금과옥조로 여겼다. 1997년 15대 대선 후보였던 김대중·이회창·이인제 후보가 공히 가장 좋아하는 배우로 꼽았다.
김대중 정부 때는 문화관광부(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직을 제의받았으나 고사했고, 수차례 국회 비례의원직도 제안받았으나 한사코 거절했다. “현장에서 제가 얼마까지 갈 수 있는가에 인생을 걸고 있다”며 오직 배우를 고집했다.
국내 3대 영화 시상식인 청룡영화상·백상예술대상·대종상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모두 받았다.
2020년 10월 열흘 넘게 입원하며 건강 이상설이 불거졌으나 2021년 5월 개봉한 영화 ‘아들의 이름으로’에서 주인공을 맡으며 복귀했다.
2022년에도 알츠하이머 딸을 돌보는 아버지 역의 ‘카시오페아’, 한산 앞바다의 물길을 꿰고 있는 장수 어영담으로 출연한 ‘한산: 용의 출현’에서 잇따라 관객을 만났다. 약을 먹어가며 ‘한산’ 촬영장으로 향했다는 사실도 뒤늦게 알려졌다.
2013년에는 대중문화예술 분야 최고 영예인 은관문화훈장을 받았고, 2024년에는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으로 선출됐다. 한국영화배우협회 이사장, 스크린쿼터 비상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 등을 지내며 영화계 권익 보호에도 앞장섰으며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친선대사,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장 등으로서 사회적 활동도 펼쳤다.
병마의 위기를 넘기고 나서는 “환자들이 친구처럼 다가왔다”며 치료 중이던 강남성모병원에 1억원을 기부했다. 유족은 아내 오소영씨, 아들 안다빈·필립씨가 있다.고인의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31호실에 마련된다.
장례는 신영균예술문화재단과 한국영화배우협회 주관으로 영화인장으로 치러진다. 원로배우 신영균이 명예위원장, 이갑성 한국영화배우협회 이사장·배창호 감독·신언식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직무대행·양윤호 한국영화인협회 이사장이 위원장을 맡는 장례위원회를 구성해 국민 배우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한다.
운구는 배우 이병헌·이정재·정우성·박철민 등이 맡고, 조사는 배창호 감독과 정우성이 낭독한다. 발인은 9일 오전 6시, 장지는 양평 별그리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