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등 검찰청사단지


더트래커 = 김상년 기자

지난 12일 사의를 표명한 노만석 검찰총장 직무대행은 "전 정권이 기소해놨던 게 전부 다 현 정권 문제가 돼버리고, 현 검찰청에서는 저쪽(현 정권)에서 요구사항을 받아주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저쪽에서 지우려고 하고 우리(검찰)는 지울 수 없는 상황"이라며 "수시로 많이 부대껴왔다. 조율하는 것도 쉽지는 않았다"고도 말했다.

4개월간 검찰 수장으로 있으면서 현 정권의 요구와 압박에 시달려왔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지우려는 쪽은 현 정권, 지우려고 하는 것은 이재명 대통령이 기소된 사건들을 언급한 것으로 추정된다.

노 대행은 이날 저녁 9시 30분쯤 자택에서 기자들을 만나 약 25분간 사의를 표명한 소회를 밝히면서 이같이 말했다. 노 대행은 “옛날에는 정권하고 (검찰이) 방향이 같았는데 지금은 정권하고 (검찰이) 방향이 솔직히 좀 다르다”면서 “그쪽에 가는 것도 솔직히 쉽지는 않았다. 그래서 홀가분해 시원섭섭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4개월 동안 (대검)차장을 했던 것이 20년 동안 검사생활한 것보다 더 길었고 4일 동안 있었던 일이 4개월보다 더 길었다", "어제는 천번 만번 생각이 바뀌었다"고도 고백했다.

노 대행은 또 “사실 제가 한 일이 비굴한 것도 아니고 저 나름대로 우리 검찰을 지키기 위한 행동”이라며 “이 시점에서는 내가 잘못한 게 없다고 부득부득 우겨갖고 조직이 득 될 거 없다 싶어서 이 정도에서 빠져주자 이렇게 결정했다”고 말했다.

노 대행은 지난 7일 ‘대장동 사건’ 항소 기한 막바지에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의 항소 의견을 불허하고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 이에 검찰 내부에선 평검사부터 검사장까지 사퇴 요구가 빗발치는 등 검란(檢亂) 사태를 불렀다.

대검찰청은 이날 오후 5시 40분쯤 “금일 노 대행이 사의를 표명했다”며 “노 대행의 자세한 입장은 퇴임식 때 말씀드리겠다”고 밝혔다. 퇴임식 일정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이날 대통령실은 “법무부 장관으로부터 노 대행의 면직안이 제청되면 이를 수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노 대행의 퇴진은 지난 7월 심우정 당시 검찰총장의 자진 사퇴로 검찰총장 직무대행을 맡은 지 4개월여 만이다.

사표가 수리되면 노 대행은 2012년 중앙수사부 폐지에 대한 조직 내 반발로 물러난 한상대 검찰총장에 이어 13년 만에 조직 내 불협화음 와중에 불명예 퇴진하는 검찰 수장이 된다. 노 대행의 사표는 법무부와 대통령실을 거쳐 대통령 재가를 받아야 한다.

검찰개혁을 속도감 있게 추진해야 할 정부·여당 입장에선 수뇌부를 마냥 공석으로 비워두긴 어려운 만큼 법무부가 이른 시점에 후속 인사에 나설 것이란 전망이 많다.

정성호 법무부장관


지난 7일 노 대행이 ‘대장동 사건’의 항소를 포기하면서 촉발된 검찰 내부의 집단 반발 사태는 새 국면을 맞게 됐다. 이에 따라 법무부가 ‘항소 포기’를 시키려고 노 대행을 압박했다는 의혹에 대해선 정성호 법무장관과 이진수 법무차관이 실제 노 대행에게 외압을 행사했는지에 관심이 집중된다.

정 장관은 지난달 31일 ‘대장동 사건’의 1심 선고가 나온 뒤 대검으로부터 세 차례 보고를 받고 “신중하게 검토하라”는 의견을 전달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 장관은 12일 국회 예결위 전체회의에 출석해서도 ‘항소 포기를 지시했느냐’는 야당 의원들 질의에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를 반대한 적이 없고, 항소 포기를 지시한 사실이 없다”며 “지휘를 하려 했다면 서면으로 했을 것”이라고 의혹을 부인했다.

이와 관련 정 장관은 이날 ‘신중히 판단하라는 의견’도 외압으로 비칠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 “그게 무슨 외압이 있겠나, 일상적으로 하는 얘기”라고 했다. 정 장관은 또 “사건과 관련해 대통령실과 논의 자체를 하지 않는다”며 “법무부 직원도 항소 여부에 대해 대통령실과 의논한 바는 전혀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정 장관은 12일 사의를 표명한 노 직무대행에 대해 “사실 이해할 수가 없다”고 했다. 정 장관은 이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대행직에서 물러날) 그런 정도 의지가 있었다면 장관의 지휘를 서면으로 요구하든지 그래야 하는 것 아니겠나”라며 말했다. 수사지휘로 받아들였다면 정식 절차를 요구했어야 한다는 취지다.

정 장관은 대장동 사건을 수사한 검사들과 항소 포기를 비판한 일선 검사들에 대한 조치 가능성도 시사했다. 정 장관은 “(대장동) 수사는 어떤 면에서는 성공한 수사였지만, 인권 침해라든가 위법·부당한 행위가 있었다는 주장도 있다”며 “별도로 저희가 조사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또 “경위야 어쨌든 간에 일선 검사장들이 집단적으로 의견을 표명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본다”라며 “사안을 엄중히 보고 있다”고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