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등 검찰단지


더트래커 = 김상년 기자

검찰의 대장동 개발 비리사건 항소 포기에 대한 논란이 거세지는 가운데 검찰의 일선 검사장과 지청장들이 항소를 하지 말라고 지시한 노만석 검찰총장 권한대행에게 경위와 이유에 대한 상세 설명을 요구하는 입장문을 냈다.

노 대행과 연수원 동기인 박재억 수원지검장은 10일 일선 지검장 등 18명 명의로 검찰 내부망(이프로스)에 ‘검찰총장 권한대행께 설명 요청’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고 입장을 밝혔다.

박 지검장은 “성남시 대장동 개발 비리 의혹 사건의 1심 일부 무죄 판결에 대한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항소포기 지시를 두고 검찰 내부뿐만 아니라 온 나라가 큰 논란에 휩싸였다”면서 “사의를 표명한 서울중앙지검장은 명백히 항소 의견이었으나,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지시를 존중해 최종적으로 수사팀에 항소포기를 지시했고 항소 의견을 관철하지 못한 책임을 지고 사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했다.

이어 “반면 권한대행이 어제 배포한 입장문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의 항소 의견을 보고받고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후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권한대행 책임 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항소포기를 지시했다는 것”이라고 했다.

박 지검장은 “권한대행이 밝힌 입장은 항소포기의 구체적인 경위와 법리적 이유가 전혀 포함되지 않아 납득이 되지 않다”면서 “일선 검찰청의 공소유지 업무를 책임지고 있는 검사장들은 권한대행께 항소포기 지시에 이른 경위와 법리적 근거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다시 한번 요청한다”고 했다.

해당 글에는 박 지검장 외에 박현준 서울북부지검장, 박영민 인천지검장, 박현철 광주지검장, 임승철 서울서부지검장, 김창진 부산지검장, 서정민 대전지검장, 이만흠 의정부지검장, 유도윤 울산지검장, 김향연 청주지검장, 문현철 창원지검장, 신대경 전주지검장, 박혁수 대구지검장, 이응철 춘천지검장, 정수진 제주지검장, 민경호 대전고검 차장(검사장), 이준범 수원고검 차장(검사장), 박규형 대구고검 차장(검사장) 등이 이름을 올렸다.

임은정 서울동부지검장, 김태훈 서울남부지검장은 성명 명단에 없었다. 대검 수뇌부를 향한 이례적인 집단 성명이다.

8개 대형 지청을 이끄는 지청장들도 집단 성명을 내고 노 대행에게 항소 포기 경위와 관련한 보다 구체적인 설명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들은 차치지청(차장검사를 둔 지청)을 지휘하는 지청장들로, 청장 바로 아래에 부장검사를 둔 지청(부치지청)보다 규모가 큰 중요 지청을 이끄는 고참 지청장들이다.

하담미 안양지청장, 임일수 성남지청장, 이동균 안산지청장, 김윤선 천안지청장, 신동원 대구서부지청장, 최행관 부산동부지청장, 손찬오 부산서부지청장, 용성진 순천지청장 8명이 이름을 올렸다.

이들은 이날 이프로스에 올린 입장문에서 "이번 대장동 사건 항소포기 지시는 그 결정에 이른 경위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면 검찰이 지켜야할 가치, 검찰의 존재 이유에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간 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입장문, 법무부 장관의 설명만으로는 항소를 포기한 구체적 경위가 설명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수년에 걸쳐 국민적 관심 속에 진행돼온 중대 부패범죄 사건에서, 직접 공소유지를 담당해온 수사·공판팀의 만장일치 항소 의견이 합리적 설명 없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그 경위에 대해 책임있는 자리에 있는 분들의 납득할만한 설명과 지위에 걸맞은 자세를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대검찰청 소속 연구관들은 항소 포기에 대한 책임을 물어 노 대행에게 사퇴를 건의하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연구관들은 이날 입장문을 작성해 노 대행에게 전달할 예정이다. 법무연수원에서 신임 검사를 교육하는 교수들도 이날 “노만석 검찰총장 권한대행은 대장동 사건의 항소를 포기한 이유를 추가 설명하라”며 성명을 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


한편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지난 7일 검찰이 대장동 개발 비리 민간업자 사건에 대한 항소를 포기한 데 대해 “구형보다 높은 형이 선고돼 항소를 하지 않아도 문제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면서 “대검찰청이 항소할 필요성이 있다고 보고했을 때 ‘신중하게 판단하면 좋겠다’고 했다”고 했다.

정 장관은 10일 정부과천청사 출근길 도어스테핑(약식 문답)에서 취재진에 “핵심 피고인인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본부장에 대해 검찰은 징역 7년을 구형했지만 1심 재판부는 8년을 선고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또 “나머지 피고인에 대해서도 검찰의 구형량보다 절반 이상 선고됐다”면서 “양형이 충분했기 때문에 이 사건을 계속 (검찰이) 가져간다고 하는 게 도움이 될까, 저 나름대로 그런 판단이 있었다”고 했다. 그는 또 "원론적으로 성공한 수사, 성공한 재판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법무부가 대검찰청에 지시를 하거나 지침을 제시했는지와 관련해선 "다양한 보고를 받지만, 지침을 준 바는 없다"며 "여러가지를 고려해 합리적으로 판단하라는 정도의 의사표현을 했다"고 말했다.

또 "통상적으로 중요 사건은 검찰을 통해 법무부 보고가 이뤄지는데, 선고 결과를 보고받은 뒤 처음에는 항소 여부를 신중히 알아서 판단하라고 얘기했다"며 "이후 두 번째로 대검 보고가 왔을 때 검찰 구형보다 높은 형량이 선고된 게 있기 때문에 법리적으로 문제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고 덧붙였다.

당시 노만석 검찰총장 직무대행에게 의견을 전달했느냐는 질문에는 “장관 취임 이래 노 대행과 직접 통화한 적이 없다”면서 “법무부 차관 및 국·과장 등이 당시 국회에 보고하러 왔을 때 얘기한 것”이라고 했다.

정 장관은 “이런 정치적인 사건 때문에 검찰이 매달려 있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했다”면서도 “법무 장관에 취임한 이래 구체적인 사건에 대해 이래라저래라 지시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고 말했다.

다만 정 장관은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 뇌물 혐의 등 무죄 판단이 나온 법리적 쟁점에 관해서는 항소 불필요 사유 등에 대해 추가로 구체적 언급을 하지 않았다.

정 장관은 "최종적으로 지난주 금요일(7일) 항소 마감 당일에 대검이 일선 부서에서 항소하려고 한다고 했을 때 종합적으로 잘 판단해달라고 했다"며 "그날 오후 (민간업자) 남욱 씨가 '검사가 배를 가른다'고 했다는 상당히 충격적인 증언을 했는데 사건이 계속되면 오히려 더 정치적인 문제가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정 장관은 수사팀을 이끈 강백신 대구고검 검사가 법무부 장관과 차관이 항소를 반대했다고 들었다고 주장한 것과 관련해선 "저의가 의심스럽다"고 반박했다. 정진우 서울중앙지검장의 사의 표명에 대해서도 "중앙지검장 위치가 그냥 가벼운 위치는 아니다"라며 아쉬움을 표했다.

정 장관은 이번 대장동 본류 사건의 항소 포기와 이재명 대통령 재판과의 관련성을 묻는 질문에는 "이 사건이 이 대통령하고 무슨 관계가 있나. 이 대통령은 별개로 기소돼서 재판 진행 중이다가 지금 중단돼 있다"고 선을 그었다. 이어 "이 재판과 관련해서도 법원에서 분명히 대통령과 관련해 어떤 판결 이유에도 설시된 바가 없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