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대 대법원장과 대법관들(대법원 홈페이지)
더트래커 = 이태희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이 대법원에서 이례적으로 빠른 진행 속도를 보이자 대선 정국에 또 한차례 파란이 일고 있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벌써부터 서로에게 유리하게 대법 판결을 전망하면서 치열한 논전도 벌이기 시작했다.
민주당은 23일 이재명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재판에 대한 대법원의 전원합의체 회부 결정에 "이례적으로 빠르다"며 "공정한 재판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황정아 대변인은 이날 취재진과 만나 "이번 사건은 선례 없는 이례적인 절차와 아주 빠른 속도로 진행되어 주심 배정, 전원합의체 회부, 심리가 하루 동안 진행됐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황 대변인은 "대법원의 공정한 재판을 촉구한다"며 "상고심에서 법과 원칙에 따라 기각 결론을 내릴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강조했다.
국회 법사위원장인 정청래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대통령은 국민이 투표로 뽑는다"라며 "대법이 국민 참정권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면 국민이 용서치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대법은 헌법 정신을 지켜라. 순천자는 흥하고 역천자는 망한다"라고도 말했다.
대법원은 이 후보 상고심과 관련, 24일 전원합의체 속행기일을 연다고 밝혔다. 지난 22일엔 이 전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대법원 2부에 배당하고 주심을 박영재 대법관으로 지정한 뒤 곧바로 전원합의체에 회부했다.
통상 소부에서 재판관들이 합의에 이르지 못한 주요 사건들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해왔다는 점을 감안할 때 소부 배당, 전원합의체 회부 결정, 합의기일 진행이 하루 만에 이뤄지고, 바로 이틀 후 심리가 속행되는 점은 이례적으로 평가된다. 유례없이 빠른 재판 진행 속도다.
이 전 대표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항소심에서 1심 징역형 집행유예 선고를 뒤집고 무죄를 받은 바 있다.
대법원의 예상외 '빠른 속도전'에 대해 이 후보 캠프는 "대선 전 최종심 결과가 나오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입장이지만 당 일각에서는 대법원 판단을 예단할 수 없는 만큼 마냥 안심할 수 없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전현희 최고위원은 전날 MBC 라디오 '권순표의 뉴스 하이킥'에서 "신속하게 그것도 대법원장이 직접 지시해 회부한 건 굉장히 이례적이기에 청신호냐 적신호냐를 정확히 판단하기 어렵다"면서도 "너무 이례적이어서 만에 하나 혹시 안 좋은 결과가 나올까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23일 "대법원이 대선 전에 이 사건을 처리하겠다는 의지를 사실상 드러낸 것"이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신동욱 수석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이 후보 사법 시계가 빠르게 돌아가고 있다. 전원합의체 판결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가를 분수령이 될 것이며 사법적 중립성과 공정성 차원에서도 늦었지만 최선을 다해 빨리 판결을 내려주기를 촉구한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신 대변인은 이어 "이 후보 역시 법꾸라지 행보를 멈추고 성실히 재판에 임하라. 아무리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어도 8개 사건·12개 혐의로 5개 재판을 동시에 받는 이 전 대표는 법원과 유세 현장을 수시로 오가야 하는 처지"라고 밝혔다.
국민의힘 법률자문위원장인 주진우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민주당이 전원합의체 회부에 매우 이례적이라며 사법부 겁박에 시동을 건다"며 "반협박이다. 사법부는 법과 원칙에 따라 처리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도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대법원이 파기자판(대법원이 원심을 파기하면서 사건을 돌려보내지 않고 직접 판결하는 것)까지는 몰라도 파기환송은 대선 전에 할 수도 있게 된 것"이라고 해석했다.
박 의원은 "파기자판까지 나오면 금상첨화지만 유죄취지 파기환송만 나와도 유권자들이 합리적 선택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법원의 이같은 움직임을 놓고 판결 전망도 크게 엇갈리고 있다.
우선 예상보다 신속한 결론이 대선(6월3일) 전후에 나올 것이란 관측이 적지 않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3개월 내에 대법 심리 결론을 내겠다는 의중이 여기에 실려 있는게 아니냐는 관측이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특히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에 대해 신속 재판을 강조해왔다. 법원행정처는 지난해 9월 22대 총선 관련 선거범죄의 공소시효 만료를 앞두고 선거법 강행 규정을 지켜달라는 취지의 권고문을 일선 법원에 보내기도 했다.
당시 1심 재판이 진행 중이었던 이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지적한 것이라는 견해도 있었다. 실제 이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1심은 2022년 9월 기소된 이후 2년 2개월 만인 지난해 11월 결론이 나왔다.
법원은 1심 결론이 늦어졌다는 비판이 이어지자 2심 재판부에 새로운 사건을 배당하지 않는 방식으로 집중 심리 여건을 만들어 주기도 했다. 2심은 4개월 만인 지난달 결론을 냈다.
1심과 2심 결과를 두고 우리 사회 전체에서 갈등이 크게 생긴 것도 이같은 ‘속도전’의 배경이라는 분석도 있다.
상고심 심리 중 이재명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재판이 중단돼야 하는 지를 두고 논란이 일 수 있다. 대법원이 이 같은 논란을 정리하기 위해 대선 전 결론을 내려고 속도를 내고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모든 재판관이 심리에 관여해 사건 기록을 검토하는 전원합의체는 진행 속도가 느릴 수 밖에 없다는 점이 또 문제다. 재촉을 해도 대선 전에 결론을 내기는 만만치 않다. 그렇다고 이 중대한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하지 않는것도 큰 논란거리가 될 수 있다.
결국 이 모든 점을 종합 고려해 재판 속도는 내지만 심리도 최대한 신중히 하겠다는게 대법원의 기본 입장이 아니냐는 게 많은 정치권 관계자들의 관측이다.
대법원의 예상 가능한 판결 시나리오는 크게 3가지가 거론된다.
대선 전에 선고할 경우 상고 기각(무죄 확정), 파기환송(유죄 취지) 등 두가지가 있을 수 있다. 또 대선 전까지 선고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절차 진행에 관한 결정 형태로 '재판 정지'를 선언하는 방안이 제3의 방안으로 거론된다.
다만 법조계에서는 전원합의체 기일이 추가 지정되며 심리가 빠르게 진행되는 점으로 볼 때 대선 전에 결론을 내릴 가능성이 커 보인다는 관측이 보다 우세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