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서울 신수동 한국출판콘텐츠센터에서 열린 ‘종횡무진 포럼’에서 조용주 법무법인 안다 대표 변호사가 강연 중이다. ⓒ사진=더트래커/박지훈 기자


더크래커 박지훈 기자

서울 신수동의 한국출판콘텐츠센터. 지난 14일 열린 ‘종횡무진 포럼’ 강연장에 모인 회원들의 표정은 진지했다. 강단에 선 이는 판사 출신 조용주 법무법인 안다 대표 변호사. 책 제목 그대로 ‘상속·증여 솔루션(도서출판 가디언)’을 들고 등장한 그는, 차분하면서도 유쾌한 입담으로 청중의 시선을 끌었다. 그는 “우리는 모두 죽는다. 문제는 어떻게 마무리하느냐다”라며 강연의 포문을 열었다.

조 변호사는 상속과 증여라는 주제를 단순한 세금 기술이 아니라 ‘삶의 마지막 설계’로 다뤘다. 그에게 이 주제는 단지 업무 범위를 넘어 인생의 후반부를 준비하는 과제다. 이번 강연은 그가 출간한 두 번째 책을 기념해 진행됐다.

14일 서울 신수동 한국출판콘텐츠센터에서 열린 ‘종횡무진 포럼’에서 조용주 법무법인 안다 대표 변호사가 강연 중이다. ⓒ사진=더트래커/박지훈 기자

“상속세를 줄이자는 게 아닙니다. 분쟁을 피하면서 마무리를 잘하자는 겁니다.” 그는 단호했다. 상속은 언젠가 반드시 맞닥뜨리게 되는 사건이지만, 유언장을 남기는 문화가 거의 없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꼬집는다.

“형제끼리 다정하게 자라 추억도 많은데, 상속 분쟁 한 번에 남처럼 돌아서더라고요.” 그는 판사 시절 실제 상속 사건에서 겪은 갈등의 민낯을 소개하며, ‘아름다운 상속’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했다.

실제로 상속을 둘러싼 분쟁은 꾸준히 증가세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3년 사망자는 37만 명. 조 변호사는 “2030년이면 연간 40만 명, 2050년에는 62만 명이 사망할 것”이라며 “상속 사건도 두 배 가까이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14일 서울 신수동 한국출판콘텐츠센터에서 열린 ‘종횡무진 포럼’에서 조용주 법무법인 안다 대표 변호사가 강연 중이다. ⓒ사진=더트래커/박지훈 기자

이처럼 ‘죽음의 시대’에 들어선 한국 사회는 상속 문제도 질적으로 바뀌고 있다. 과거처럼 “논 있으면 네가 가져라”는 말은 통하지 않는다.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면서, 시골 땅 한 필지도 쉽게 억 단위를 넘긴다. 그러다 보니 소송은 늘고, 감정의 골도 깊어진다.

조 변호사는 “현행 유언제도는 시대에 한참 뒤처졌다”고 강조했다. 우리 민법상 유언은 자필증서(자필유언), 녹음(녹음유언), 공정증서(공증유언), 비밀증서(비밀유언), 구수증서(구두유언) 등 5가지 방식만을 인정한다. 하지만 영상으로 유언을 남긴다 해도 법적 효력이 없고, 주소 하나 빠지면 전체가 무효가 된다.

“이게 다 50년 넘은 제도입니다. 101동 501호인데 501호 안 쓰면 무효예요. 상속 분쟁을 예방하려는 의지가 법 자체에 없어요.” 그는 최근 떠오르는 ‘유언신탁’ 제도가 민법에 제대로 편입되지 않은 점, 신탁법 안에 간략히만 언급된 상태인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유언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비판을 받아온 ‘유류분 제도’도 작년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로 변화의 기로에 섰다.

“불효한 자식도, 부모 살해범도 유류분 청구를 할 수 있습니다. 이게 과연 정의입니까?” 상속세 제도에 대한 비판도 날카로웠다. 그는 28년째 과표를 고치지 않은 채, 물가와 부동산 가치가 치솟으면서 실질적 ‘증세’가 이뤄졌다고 꼬집었다. 현재 상속세는 유산 전체에 부과하는 ‘유산세’ 방식인데, 정부는 이를 상속인별로 나누는 ‘유산취득세’ 방식으로 바꾸려 하고 있다. 조 변호사는 “이론상으로는 타당하지만, 정치권은 선거를 앞두고 표심을 의식해 제도 개편을 주저한다”고 분석했다.

그는 유언장을 문화적으로, 제도적으로 장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언장을 쓰면 세액 공제라도 해줘야 합니다. 천만 원이라도 아끼게 하면 사람들은 움직입니다.”

14일 서울 신수동 한국출판콘텐츠센터에서 열린 ‘종횡무진 포럼’에서 조용주 법무법인 안다 대표 변호사가 강연 중이다. ⓒ사진=더트래커/박지훈 기자

조 변호사의 궁극적인 관심은 더 큰 사회적 담론으로 향한다. 바로 ‘존엄사 제도’다. 그는 “우리는 잘 사는 것만 강조해왔지만, 이제는 ‘잘 죽는’ 법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세계 20개국이 시행 중인 존엄사법은 영국에서도 최근 통과됐다. 반면, 한국은 아직도 관련 논의가 미비한 수준이다.

“의사협회, 가톨릭 교회만 반대합니다. 국민 여론은 80% 이상이 찬성입니다. 말기 암 환자들처럼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는 이들에게 선택권이 있어야 합니다.” 그는 올해 11월 1일 ‘세계 죽음의 날’을 맞아 존엄사 캠페인을 서울 시내에서 계획 중이다. 죽음을 터부시하는 문화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절실함에서 비롯된 행동이다.

14일 서울 신수동 한국출판콘텐츠센터에서 열린 ‘종횡무진 포럼’에서 조용주 법무법인 안다 대표 변호사가 강연 중이다. ⓒ사진=더트래커/박지훈 기자

“존엄사든 상속이든, 결국 우리가 고민해야 할 건 딱 하나입니다. ‘나는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진짜 어른 아닐까요.”

그는 덧붙였다. “지금 아시아 국가 중엔 아직 단 한 곳도 존엄사 제도를 도입한 나라가 없습니다. 우리가 먼저 시작한다면 아시아 최초가 되는 겁니다. 이런 제도를 만드는 나라야말로 저는 진짜 문명국가라고 생각해요.” 이처럼 제도의 빈틈을 메우고, 문화의 전환을 이끌어내는 일에 그는 익숙하다. 실제로 그는 6년간 인천고등법원 유치를 주도하며 법·정책 입법 운동에도 직접 뛰어든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