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트래커 = 김상년 기자
코오롱 오너 일가 4세로, 오래 전부터 경영권수업을 받고 있지만 지주사를 비롯, 계열사 지분이 한 주도 없던 이규호(41) 코오롱 부회장이 계열사 지분을 처음으로 장내에서 매수했다. 하지만 경영권승계에 중요한 지주사 지분은 이번에도 한 주도 확보하지 못했다.
30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이 부회장은 지난달 28일 상장 계열사 코오롱글로벌 지분 10518주(지분율 0.05%)를 주당 9508원에 장내매수했다. 투입한 자금은 1억원으로, 모두 근로소득으로 조성한 자기자금이라고 공시했다.
또 다른 상장 계열사 코오롱인더스트리 지분도 같은 날 장내매수했다. 모두 2441주(0.01%)를 주당 40975원, 1억원에 매수했다. 역시 근로소득 자기자금이라고 밝혔다.
이규호 부회장의 코오롱글로벌 지분 장내매수 공시
이규호 부회장은 2018년 경영은퇴를 선언하며 그룹 회장직에서 물러난 아버지 이웅열(69) 명예회장을 대신해 현재 지주사 코오롱의 공동 대표이사 부회장, 코오롱글로벌 사내이사 상근 부회장, 코오롱인더스트리 사내이사, 코오롱모빌리티그룹 사내이사 부회장 등을 맡고 있다.
오랜 기간 주력 계열사들을 두루 거치며 경영수업을 받았고, 이제는 지주사 대표이사 부회장 자리에도 올랐다. 하지만 이들 지주사와 주력 계열사들 지분은 단 한 주도 지금까지 없었다. 일부 해외 계열사 지분만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지난달 28일 2개사 지분 매수는 첫 국내 계열사 지분 매입인 셈이다.
현재 지주사 코오롱은 이웅열 명예회장이 지분율 49.74%(지난 9월 말 기준)로, 최대주주다. 코오롱글로벌 최대주주는 지주사 코오롱(75.23%)이며 이웅열 명예회장도 0.38%를 갖고 있다.
코오롱인더스트리 최대주주도 코오롱(31.88%)이며, 이웅열 명예회장이 5.79%로 2대주주다. 또 다른 상장사 코오롱모빌리티도 코오롱이 최대주주다. 수입차업체인 이 회사는 현재 상장폐지 후 코오롱의 100% 자회사로 편입하는 작업을 추진 중이다.
재계 관계자들은 이 부회장이 기왕 자기자금으로 첫 지분 매입에 들어간다면 경영권 승계에 중요한 지주사 코오롱 지분을 매입할 것이지 왜 경영권 승계와 무관한 계열 자회사 지분부터 매입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표시하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마음만 먹는다면 이번에 장내매수한 2억원으로, 지주사 코오롱 지분부터 장내매수할 수도 있었을텐데, 그러지 않은 것을 보면 다른 이유들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지주사 지분의 증여나 장내매수에는 이 명예회장이 설정해놓은 어떤 원칙같은게 있는게 아닌가 추정될 뿐”이라고 덧붙였다.
지주사 코오롱의 지난 9월말기준 최대주주및 특수관계인 현황
이웅열 명예회장은 지난 2018년 회장직에서 물러나면서 “능력을 입증하지 못하면 주식을 단 한 주도 물려주지 않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실제 그 이후 보유지분을 이 부회장을 비롯, 어떤 자녀에게도 증여하지 않았다.
유일한 아들인 이 부회장에게 두루 계열사 경영을 맡겨보고 이제는 지주사 부회장까지 승진시켰지만 아직은 지분을 증여할 정도의 실적은 못내고 있다는 판단이 아니냐는 추정이다. 이 명예회장의 나이(69세)도 아직 여유가 있는 만큼 아들의 경영능력 입증을 좀더 지켜보겠다는 입장이 아니냐는 추정이다.
실제 코오롱을 비롯한 코오롱그룹 주력 계열사들의 올해 실적은 썩 좋은 편이 아니다. 자회사들 실적이 포함된 코오롱의 올 1~9월 당기손익은 972억원 적자로, 적자잔환했다. 코오롱글로벌도 영업손익은 흑자전환했지만 당기손익은 여전히 적자다.
한때 그룹 캐시카우였던 코오롱모빌리티는 수입차 사업이 최근 몇년간 부진을 면치 못하자 올들어 상장폐지하고 지주사 100% 자회사로 편입하는 작업까지 서두르고 있다. 신사업 진출이나 사업다각화도 그동안 이 부회장 주도로 꾸준히 많은 시도를 했지만 두드러진 성과는 아직 거의 없는 편이다.
재계의 다른 관계자도 “아버지 지분 상당수가 주식담보대출 담보로 묶여 있어 아들에게로의 증여나 매각이 여의치 않다면 이 부회장이 이번에 투입한 2억원으로 지주사 지분을 장내에서 매수하면 될텐데, 어딘가 수긍이 잘 가지 않는 이번 장내매수”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