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대통령실에서 열린 한미관세협상 후속 민관합동회의(대통령실)


더트래커 = 김상년 기자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6일 한·미 관세협상 후속 대책 논의차 주요 기업 총수들을 만난 자리에서 나 “한미 통상 안보 협상 과정에서 가장 많이 애를 쓴 건 기업인들”이라며 “대미 투자가 너무 강화돼 국내 투자가 줄어들 거란 걱정들을 하는데, 그런 걱정이 없도록 여러분이 잘 조치해주실 것을 믿는다”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또 "친기업, 반기업 이런 소리를 하는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말하기도 했다.

미국과 3500억달러(약 509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에 합의한 것 때문에 내수 투자나 경기가 악화하지 않도록 기업들이 적극 나서 달라는 뜻이다. 이에 재계는 국내 투자와 고용도 확대하겠다고 화답했다.

대통령실 발표 자료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16일 오후 2시부터 2시간 넘게 서울 용산 대통령실 회의실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여승주 한화그룹 부회장, 정기선 HD현대 수석부회장,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 등 경제인들과 산업부 장관 그리고 안보실장, 정책실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관세협상 후속 민관 합동회의」를 주재했다.

이날 회의는 한미 관세협상이 마무리되면서 기업들의 국내 투자 확대, 수출 다변화, 중소기업과의 상생 협력 및 한미 투자 패키지를 활용한 대미 시장 진출과 양국 경제 협력 방안 등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됐다.

지난 16일 회의서 발언하는 이재명 대통령(대통령실)


이 자리에서 이 대통령은 우선 “지금까지 정부와 기업이 이렇게 합이 잘 맞아서 공동 대응을 한 사례가 없었던 것 같다”면서 “전적으로 우리 기업인 여러분들의 헌신과 노력 덕분”이라고 했다.

이어 “앞으로가 더욱 중요하다”면서 “경제 문제 해결의 첨병인 기업들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게 정부가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더불어 “대미 투자가 강화되면서 국내 투자가 줄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없도록 국내 투자에 마음을 써 달라면서, 특히 지방 산업 활성화에 기업인들이 더 많은 관심을 가져 달라”고 당부했다.

이 대통령은 “비슷한 조건이라면 가급적이면 국내 투자에 지금보다는 좀 더 마음 써달라”면서 “특히 그중에서도 대한민국의 균형 발전 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에 지역, 지방, 지방의 산업 활성화를 위해서 좀 더 많은 관심을 가져 주도록 다시 한번 부탁 드린다”라고 했다. 또 “정부는 우리 기업인들이 기업 활동을 하는 데 장애가 최소화되도록 정말 총력을 다할 생각”이라고 했다.

국내 투자를 요청하는 대신, 기업에 대한 ‘규제 철폐’를 약속했다. 이 대통령은 “제가 세금 깎아 달라는 얘기는 별로 안 좋아한다. 세금 깎아가면서 사업해야 할 정도면 국제 경쟁력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고, 국내 재정 수요도 감당해야 한다”면서 “그런 것보다는 여러분께 정말 필요한 것이 규제 같다. 규제 완화 또는 해제, 철폐 중 가능한 것을 구체적으로 지적해주시면 제가 신속하게 정리해 나가겠다”라고 했다.

규제 완화 및 해제 외에 정부의 ‘후순위 채권 인수’도 거론했다. 기업의 과감한 투자와 기술 경쟁력 제고를 돕기 위해 연구개발(R&D)을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뭐든지 할 수 있는 건 다 할 테고, 어떤 재정 투자도 마찬가지”라면서 “R&D 개발 또는 위험 영역에 투자해서 후순위 채권을 발행하는 걸 우리가 인수한다든지, 손실을 우선순위로 감수한다든지 이런 새로운 방식들도 저는 얼마든지 도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했다.

이 대통령은 또 “노동없이 기업하기 어렵고 기업 없이 노동이 존립할 수 없다”면서 “고용 유연성과 사회안전망 강화에 대한 사회적 대토론과 대타협도 언젠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참석한 기업인들은 미국 시장의 불확실성이 완화된 만큼 이를 바탕으로 미국 시장 확대를 가속화하고 수출시장도 다변화하는 한편, 국내 시장도 차질 없이 진행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재계 총수들은 국내 투자와 일자리 창출로 내수 경기를 지원하겠다고 답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국내 산업 투자 축소를 걱정하는 일이 없도록, 삼성은 국내 투자 확대와 청년 일자리 창출, 중소·벤처기업과의 상생에도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난 9월 발표한 ‘향후 5년간 6만 명 국내 고용’ 및 ‘연구개발(R&D) 포함 국내 시설 투자’ 계획을 차질 없이 추진하겠다고 했다.

특히 AI 데이터 센터는 ‘수도권 이외 지역’ 건설을 원칙으로 하겠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이달 초 인수 완료한 유럽 최대 공조기기 업체 플랙트그룹의 생산 라인을 광주광역시에 건립하는 방안도 검토한다.

삼성전자의 경우 올해부터 2029년까지 신규 반도체 라인인 평택 5공장(P5)을 건설하는 것을 포함해 국내에 450조원을 투자한다. 차세대 반도체 공장인 평택 5공장은 골조 공사가 최근 임시 경영위원회에서 승인됐고, 조만간 2028년 가동을 목표로 공사에 들어간다.

최태원 SK 회장


SK는 최대 600조 원, 현대자동차는 125조 원, LG는 100조 원 규모의 국내 투자 계획을 밝혔다. 최태원 SK 회장은 “고용은 매년 8000명 이상을 꾸준히 유지해 왔지만, 반도체 공장 팹이 하나씩 일부 오픈할 때마다 2000명 이상 계속 추가되고 있다”면서 팹 건설 속도에 따라 2029년까지 최소 연간 1만4000명~2만명 규모가 될 것이라고 했다.

최태원 회장은 또 “SK그룹은 2028년까지 128조원의 국내 투자가 예정돼 있다”며 “정확한 추산은 어렵지만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만 약 600조원 규모의 투자가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정의선 회장은 이날 "미국 관세의 15%로 인한 수출 감소 및 국내 생산 위축에 대한 우려를 저희는 잘 알고 있다"며 "수출 지역 다변화를 추진하고, 국내 공장의 완성차 수출을 확대하고, 특히 국내 전기차 전용 공장 신설을 통해서 자동차 차량 수출을 2030년까지 현재 대비해서 2배 이상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 회장은 또 “금년에 7200명을 채용했고, 내년에는 1만명을 목표로 하겠다”면서 “주로 SDV(소프트웨어중심차량)와 모빌리티 중심이 될 것”이라고 했다. 현대차그룹은 내년부터 2030년까지 5년간 국내에 125조2000억원을 투자한다. 직전 5년(2021~2025년) 대비 연평균 국내 투자액이 40% 늘어난 규모다.

AI, SDV(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 로봇, 수소 등 미래 신사업 분야에 50조5000억원을 투입한다. 고전력 AI 데이터센터와 로봇 공장 건설도 추진한다. 신제품과 핵심 분야 기술 개발 확보를 위한 R&D(연구·개발) 투자에 38조5000억원이 책정됐다.

현대차그룹은 1차 협력사가 올해 부담하는 대미 관세도 전액 지원하기로 했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한국을 미래 모빌리티 혁신 허브로 도약시켜 국가 경제 활력을 높이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했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향후 5년간 예정된 100조원 국내 투자의 60%를 소재·부품·장비 기술 개발과 확장에 투입해 이 분야 협력사들과 함께 경쟁력을 높이며 성장할 것”이라고 했다. 마스가 프로젝트의 주축인 HD현대와 한화그룹도 향후 5년간 국내에 각각 15조원과 11조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셀트리온은 현재 5000억원인 스타트업 투자 펀드를 1조원까지 키우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