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트래커 = 박지훈 기자

2025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경주에서 개막한 가운데, 한·미 간 고율관세 협상이 전격 타결됐다. 의장국인 한국은 전통문화 자산을 외교 자산으로 적극 활용하며, 문화외교 전략이 실질적 외교성과로 연결되는 구조를 처음으로 공식화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 협상에서 한국은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약속하고, 이 가운데 2,000억 달러를 10년에 걸쳐 연간 200억 달러씩 분할 투자하기로 했다. 미국은 한국산 자동차에 부과하던 25% 관세를 15%로 인하했다. 반도체 분야도 대만과 유사한 수준으로 조정됐으며, 대미 수출 경쟁력 유지에 의미가 있다는 평가다. 다만 철강 부문(50% 관세)은 협상에서 제외돼 향후 추가 조율이 필요한 상태다.

이번 타결은 당초 협상 전망이 비관적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이라는 분석이다. 특히 미국 측이 강경한 입장을 견지했던 데 반해, 한국은 고유 전통문화 콘텐츠를 중심으로 협상 분위기를 유연하게 전환시키는 전략을 구사했다. 이 과정에서 신라 금관, 달항아리 등 한국 고대 유물이 외교 도구로 동원됐다.

APEC에 선보인 달항아리, 노영재作. 사진=포토그래퍼 양희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대통령실로부터 신라 금관을 본뜬 금속 모형을 선물 받았다. 금을 선호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취향을 고려한 의전으로, 지난해 한미 정상회담 당시 전달한 금빛 거북선 모형과 유사한 접근이다. 추가로 전통 한복, 조선백자대호(달항아리) 등도 전달될 예정으로 알려졌다.

외교라인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선물에 매우 긍정적 반응을 보인 것으로 파악된다”며 “상징적 자산이 협상의 유연성을 확보하는 데 기여했다”고 말했다.

APEC과 병행해 진행된 현대미술 기획전도 주목을 받았다. 갤러리 달멍은 현대 조형미술의 거장 미강 노영재 작가의 ‘달항아리 2025 컬렉션’을 공개했다. 노 작가는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5호 호산 안동오 사기장의 조선백자 계승자로, 전통백자의 미학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 김수자, 하종현, 이수경 등 현대미술 작가 10인이 참여한 특별전 ‘판타스틱 오디너리(Fantastic Ordinary)’도 개막했다. 전시는 회화·설치·사진 등을 통해 ‘일상’에 대한 미학적 해석을 제시했다.

통상분야에서 ‘문화’를 협상 자산으로 활용한 이번 APEC은 외교전략의 다변화를 보여준 사례다. 고유 유산을 현대 외교에 적용한 시도라는 점에서, 이후 K컬처 기반 소프트파워 정책 모델로 확장될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