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트래커 = 김상년 기자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5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조희대 대법원장은 직에서 물러나야한다”고 밝혔다.
정 대표는 이날 지난 6월 대선을 앞두고 서울중앙지법 판사가 법원 내부망에 올린 글을 인용해 “조희대 대법원장은 반이재명 정치투쟁의 선봉장이 됐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정 대표는 “이것은 저의 주장이 아니다”라면서 “지난 대선에서 소위 조희대의 난, 조희대의 사법 쿠데타로 전 국민의 분노가 들끓을 때 서울중앙지법 김주옥 판사가 올린 조희대 사퇴권고문 중 일부 내용이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에 대해 민주당이 압박한다고요? 재판 독립을 해친다고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법원 내부에서 신뢰를 잃었고, 대법원장직을 수행할 수 없을 만큼 편향적이라는 법원 내부의 평가가 그때 있었다”고 했다.
정 대표는 "재판 독립, 법원의 정치적 중립은 조희대 본인 스스로 어긴 것 아니냐"며 "내란 수괴 혐의자 윤석열을 날짜가 아닌 시간으로 계산해 탈옥·석방한 지귀연 판사가 잘한 것이냐"고 반문했다.
그는 “대법원장의 정치 신념에 사법부 전체가 볼모로 동원돼서는 안 된다. 사법부는 대법원장의 사조직이 아니다”라며 “조희대 대법원장은 사과하고 사퇴해야 한다”고 했다. 또 "대법원장이 그리도 대단하냐, 대통령 위에 있느냐, 국민의 탄핵 대상이 아닌가. 대법원장이 뭐라고"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대법원장의 개인적·정치적 일탈이 사법부 전체의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국민적 불신을 초래하고 구성원 전체의 지위를 위협하게 된 현 상황을 타개하는 방법은 내부에서 잘못을 바로잡는 길밖에 없다"며 "전국법관대표회의는 대법원장에 대한 사퇴 권고를 포함해 국민적 신뢰를 회복할 방안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김병주 최고위원 역시 "조 대법원장은 사퇴해야 한다"며 "시속 100km 주행 고속도로에서 20km를 고집하며 태업을 일삼으면 운전자를 바꿔야 한다"고 촉구했다.
서영교 의원도 이날 YTN 라디오에서 "조 대법원장이 스스로 거취를 표명하는 것이 사법부가 살아나는 길"이라며 개인 의견을 전제로 "조 대법원장은 법률과 헌법을 위반했다고 판단하고, 탄핵의 대상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민주당 지도부를 포함해 당 주요 의원들이 조희대 대법원장을 정조준해 사퇴 압박전을 펴고 있는 셈이다. 앞서 추미애 국회 법사위원장도 14일 페이스북에서 “조 대법원장은 헌법 수호를 핑계로 ‘사법 독립’을 외치지만 속으로는 내란범을 재판 지연으로 보호하고 있다”며 사퇴를 요구했다.
민주당은 내란전담재판부를 설치해야 한다는 주장도 이어갔다. 민주당은 지난달 한덕수 전 국무총리의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내란특별재판부 설치법을 추진하고 있다. 법안은 내란 사건의 1·2심 재판을 각각 서울중앙지법과 서울고법에 설치하는 특별재판부가 심리하는 내용을 핵심으로 담고 있다.
특별재판부의 법관 구성은 국회, 법원(판사회의), 대한변호사협회가 각 3명씩 추천해 총 9명으로 구성한 후보추천위원회가 진행한다. 이 위원회가 일반 개인·단체로부터 추천받아 2배수의 후보자를 추천하면 대법원장이 임명하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민주당은 사법부가 입법 처리 이전에 자발적으로 ‘내란전담재판부’를 서울중앙지법에 설치하는 안을 논의해야한다고 최근 주장하고 있다.
정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서울중앙지법에 내란전담재판부를 설치하고 말고는 입법사항"이라며 "입법 사항이 위헌이냐"고 되물었다.
그는 "내란전담재판부는 조희대의 정치적 편향성, 지 판사의 침대 축구가 불러온 자업자득임을 명심하시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문진석 원내운영수석부대표는 페이스북에서 "내란전담재판부 구성을 위헌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은 내란을 하찮게 여기거나 내란을 옹호하는 자들"이라며 "사법부도 오해받기 싫으면 대법원의 이재명 후보 죽이기 등 부끄러운 일에 사과하고 자정 노력에 집중하라"고 말했다.
황희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민주당이 제안하는 내란전담재판부 관련, 제헌의회에서도 사례가 있다"며 "해방 이후 친일 청산과 불법 계엄·내란으로 인한 국가 반란, 국민 반역의 청산은 그 무게가 다르지 않다"고 강조했다.
다만, 민주당은 내란전담재판부의 당론화에는 일단 선을 그었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위헌 논란을 피해 법원의 자정 노력을 우선 지켜보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SBS 라디오에서 내란전담재판부가 당론이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지금 그런 단계까지 와 있는 것은 아니고, 저희는 그냥 하던 속도대로 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야권은 이날 더불어민주당의 조희대 대법원장 사퇴 요구에 대통령실까지 보조를 맞추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심각한 삼권분립 훼손이라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은 이날 정청래 민주당 대표와 민주당 소속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인 추미애 의원이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퇴를 요구하고, 대통령실이 이에 대해 ‘원칙적으로 공감한다’는 입장을 밝힌 데 대해 “이재명 대통령을 어떻게든 무죄로 만들기 위해 조 대법원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이날 부산 현장 최고위원회의에서 “대통령실까지 이런 입장을 밝히는 이유는 지금 (이 대통령의) 5개 재판이 중단돼 있는데, 내란특별재판부를 밀어붙이면서 혹시나 이 재판이 재개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는 것”이라며 “이미 유죄로 판결 났기 때문에 대법원에 가서 유무죄가 바뀔 가능성은 0%”라고 말했다.
장 대표는 이어 “10년 미만 양형에 대해서는 상고 이유도 대지 않기 때문에 항소심에서 당선무효형이 선고된다면 그것은 곧바로 대법원의 확정판결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라며 “그것이 두렵기 때문에 지금 공범들의 판결을 어떻게든 무죄로 만들기 위해 조 대법원장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법사위 소속 주진우 의원은 “OECD 국가 중 대통령과 여당이 사법부 숙청에 나선 적 있는 나라는 없다. 이재명 대통령까지 나서 임기가 남은 대법원장 사퇴를 압박하는 것은 국제 망신”이라며 “헌법 제도를 정치 보복으로 오염시키는, 터키 에르도안 대통령의 사법부 숙청을 연상시키는 일”이라고 했다.
한동훈 전 대표 역시 추미애 법사위원장이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퇴를 요구하고, 대통령실이 이에 ‘원칙적으로 공감한다’는 입장을 밝힌 데 대해 “탄핵 사유”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한 전 대표는 “할 테면 해보라”라며 “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이 자기 범죄 재판 막으려고 대법원장 내쫓는 게 가능할 것 같냐”고 비판했다. 이어 “대통령이 자기 범죄 재판 막기 위해 대법원장 쫓아내는 것은 중대한 헌법 위반이고 탄핵 사유”라고 했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이날 오전 브리핑에서 추미애 국회 법사위원장이 조 대법원장 사퇴를 공개 요구한 데 대한 입장을 묻자 "특별한 입장은 없다"면서도 "시대적·국민적 요구가 있다면 '임명된 권한'으로서 그 요구의 개연성과 이유에 대해 돌이켜봐야 할 필요가 있지 않느냐는 점에 대해 아주 원칙적으로 공감한다"고 답했다.
야권의 비판이 잇따르자 강 대변인은 재차 브리핑을 열어 "삼권분립 및 선출 권력에 대한 존중감에 대해 '원칙적 공감'이라고 표현한 것"이라며 "이 사안(조 대법원장 사퇴 요구)에 대해 원칙적으로 공감한다는 것은 오독이고 오보"라고 설명했다.
한편 법원 내부와 법조계에선 여권의 이같은 움직임에 대해 내부적으로는 강한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아직 공개적인 반발이나 반대 움직임은 아직 없다.
언론들의 인터뷰 요청에 익명을 전제로, “독재 정권도 대법원장 사퇴를 공개 요구한 적은 없다”거나 “삼권분립과 국가 시스템을 무너뜨리는 위험한 발언”이라는 식으로 지적하고 있다.
대법원도 지난 주말부터 이어진 민주당 강경파 의원들의 조 대법원장 사퇴 요구 속에도 특별한 입장을 보이지 않고 있다. 공식 반응을 비롯해 언급 자체를 극도로 자제하는 분위기다.
조 대법원장은 지난 12일 출근길에 '사법개혁' 입법 추진과 관련해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힌 것과 달리, 이날 오전에는 취재진에 별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대법원도 공식적인 입장 표명을 비롯해 언급 자체를 극도로 자제하는 분위기다.